경기일보로고
[시 읽어주는 남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문화 시 읽어주는 남자

[시 읽어주는 남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

우리는 ‘사실’과 ‘느낌’ 사이를 산다. 사실과 느낌의 경계는 생각처럼 명확하지 않다. 사실은 느낌을 토해내고, 느낌은 사실을 집어삼킨다. 장미꽃이 피었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어떤 느낌을 불러낸다. 그 느낌이 마음의 안쪽을 향할 때 ‘정념’이 생겨난다. 장미꽃을 피 맺힌 울음으로, 혹은 뜨거운 사랑으로 비유하여 바라보는 각기의 정념들은 사실과 느낌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낸 ‘틈’의 효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의 틈,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의 틈, 삶과 죽음의 틈 등등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것’과 ‘저것’의 틈을 산다. 절대적 사실이라거나 절대적 느낌이라는 것은 없다. 사실과 느낌을 반죽해 시간의 항아리에다 발효시킨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사실의 고루한 ‘뼈’에 느낌의 충만한 ‘살’을 입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살기 위해 성찰을 하고, 시를 쓰고, 변화를 추구한다.

오규원 시인의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시는 제목부터 난관(難關)이다. 사실과 느낌이 섞여서 그렇다. ‘잘못’이라는 단어 앞에서 당당할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왠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잘못’이 원죄처럼 군림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원죄처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무력해진다. ‘잘못’의 느닷없는 쇄도가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잘못’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외부적 강압, 즉 이데올로기화된 윤리 때문일 것이다. 이데올로기화된 윤리의 강제는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틈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 틈이 있기에 빛이 있고 어둠이 있다. 빛과 어둠이 섞여 다양한 농도의 명암(明暗)을 만들어내는 것이 삶의 고유함일진대 우리 사회는 그런 경계나 틈에 무척 인색하다.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래서 늘 일상이 초초하고 불안하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찬물’처럼 몸을 적시는 ‘틈’의 시공간에서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화자의 모습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 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강압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자 항의로 읽혀진다. 그렇기에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는 표현은 포기나 우격다짐을 의미한다기보다 ‘악마 같은 밤’을 이겨내려는, 속지 않으려는 성찰의 의지로 가다온다.

잘못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뻔뻔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들에게 오규원의 시가 어떻게 읽혀질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진실이란 사실과 느낌의 ‘틈’에서 ‘성찰’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신종호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