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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등
문화 시 읽어주는 남자

[시 읽어주는 남자] 등

                        -김선우

아이 업은 사람이

등 뒤에 두 손을 포개 잡듯이

등 뒤에 두 날개를 포개 얹고

죽은 새

머리와 꽁지는 벌써 돌아갔는지

검은 등만 오롯하다

왜 등만 가장 나중까지 남았을까,

묻지 못한다

안 보이는 부리를 오물거리며

흙 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 듯한

그때마다 작은 등이 움찟거리는

죽은 새의 등에

업혀 있는 것 아직 많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등의 서사는 슬픔 간주곡

영화 <조커>에 호아킨 피닉스가 웃옷을 벗고 등뼈가 돌출된 굽은 등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고독과 분노가 앙상하게 드러난 그의 야윈 등은 얼굴로 드러낼 수 없는 깊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쉽게 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이기만 하는 등의 서사(敍事)는 슬픔의 간주곡이다. 짐을 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업기도 하는 등의 시간은 기쁨보다 슬픔에 더 많이 닿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등은 고통과 죽음의 긴 통로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엄마의 등에 업혀 느꼈던 따뜻한 살 냄새와 촉각은 언젠가는 감당해야 할 이별의 온기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자각하게 되었다. 김선우 시인의 시 「등」은 그 뼈아픈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죽은 새’의 ‘등’ 이미지는 피하려 해도 기필코 엄마의 등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게 엄마의 등은 평온과 사랑의 장소이자 희생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다. 늙어 굽은 등으로 뒷짐을 지고 걷는 엄마들의 뒷모습은 아직도 자식들을 업고 있는 산처럼 보인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등 위에 두 날개를 포개” 얹은 새. 머리와 꽁지는 없고 “검은 등”만 남은 새. 시인은 그런 새를 보며 왜 등만 남았는지 묻지 못한다. 숭고함 앞에서 누가 서툰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죽어서도 흙 속의 누군가에게 안 보이는 부리로 먹이를 먹이며 등을 움찟거리는 ‘죽은 새’의 모습은 모성의 숭고함 그 자체다. 아직도 ‘죽은 새’의 등에 업혀 있는 게 많다는 시인의 진술은 인류를 지속해온 불가항력의 힘이 바로 모성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엄마들은 죽어서도 움직이는 등이다. 그 등에 쓰인 많은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이제야 겨우 삶의 날갯짓을 시도하는 노란 부리의 작은 새들일 것이다. ‘검은 등’만 오롯이 남은 엄마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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