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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 그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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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 그리그

1843년 6월 15일 노르웨이의 베르겐 태생인 그리그에게는 스코틀랜드의 혈통이 이어져 있었다. 조상이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로 이주해 왔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웠으며, 노르웨이의 바이올린 주자 올레 불의 권유로 1858년 당시 유럽 최고의 음악 명문인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했고, 그 4년 동안에 리히터 · 리츠 · 라이네케 · 벤쨀 · 모셀레스로부터 작곡법과 피아노연주법 등의 교수를 받은 그리그였지만, 그리그는 어디까지나 스칸디나비아 기질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의 4년간의 유학은 그리그가 앞으로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로서 기틀이 다져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186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코펜하겐으로 돌아간 그리그는 후에 이탈리아에서 다시 유학을 하게 된다. 로마에서는 리스트와 절친하게 지냈다.

1879년에는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여, 피아노 연주자로서 또한 작곡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그의 부인은 소프라노 가수였으므로 그리그의 가곡은 쉽게 보급될 수 있었다.

그리그는 1885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1907년까지 20여 년간을 트롤드하우겐에서 지내며 봄에는 작곡을, 여름에는 대자연 속에서 산책을, 가을과 겨울에는 전 세계를 돌며 연주회를 하며 지냈다. 생의 마지막은 영국으로 초청 연주를 가는 길에 맞이했고, 그의 유해는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묻혔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닮은 그리그의 음악은 오늘날 노르웨이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탄 유람선에서는 당연히 그리그의 음악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끝없는 호수, 기암절벽, 만년설 등 노르웨이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은 그리그가 만든 고운 선율과 어우러져 빛나는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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