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체는 귀족 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와 헤어져 노예 신세가 돼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녔다. 그녀는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동족으로부터 멸시와 학대를 받으면서도 여러 부족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기회가 됐다.
코르테스가 말린체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삶의 고달픔과 인간의 악덕을 체험했을 때였다. 그 어려운 시기에 우연처럼 나타난 코르테스와의 첫 만남은 말린체에게는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 찾아왔음을 인식하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말린체는 자신의 달란트인 유창한 마야어를 무기로 코르테스의 통역사가 됐고, 곁에 머물며 조언자이자 정보원이 됐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아스테카 제국 폐망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되고, 역사적으로도 지울 수 없는 잘못 때문에 배신자, 변절자, 매춘부로 매우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출신 부족인 나우아족은 강력한 힘을 지닌 여성으로 평가하고, 귀부인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tzin’을 붙여 ‘말린친’(Malintzin)이라 부르며 상반되게 평가한다. 리엔소(lienzo)는 자신의 작품 <코르테스와 말린친>에서 우아한 옷을 입은 귀족 기혼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멕시코 노벨문학상 수상자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고독의 미로>에서 겁탈당한 말린체는 침략군의 꼬임에 넘어가 원주민의 규율을 어긴 타락한 여성의 상징인물이자 고통 받는 어머니의 표상으로 묘사하며 중립적인 평가를 한다.
디에고 리베라가 고대 원주민 문명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전 역사를 담은 대통령궁 벽화에는 당당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정복자, 신부, 전사들 사이에 까만 머리에 원주민 복장을 한 말린체는 코르테스와 사이에 낳은 최초의 메스티소 마르틴을 안고 있다. 멕시코 역사에서 그녀는 비록 충신은 아닐지라도 전환기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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