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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남양주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정치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남양주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푸르른 북한강변에 ‘커피향’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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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남양주 조안면에 설립된 왈츠와닥터만 커피박물관은 박종만 관장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나고 연구한 커피에 대한 지식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북한강까지 열 걸음이나 될까? 아름다운 강변길 옆에 담쟁이넝쿨이 가득한 유럽풍의 붉은 벽돌건물이 우람하다. 네 개의 붉은 깃발은 아래로 드리워져 있고 한 개의 붉은 깃발은 우뚝 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관장 박정우)은 2006년에 개관한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 전문박물관이다. 건물 못지않게 이름에 담긴 사연도 궁금하다. 박물관은 2층과 3층에 있다. 커피향이 배인 아늑한 전시실은 볶은 커피처럼 따스한 갈색이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은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인 커피를 체험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커피 컬렉션 전시는 물론 커피 묘목에서 시음까지 일련의 커피 제조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문화체험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또한 생활 속 친근한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커피와 관련한 세계 각국의 독특한 역사와 정보를 소개하고 잘못 알려진 커피에 대한 상식과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해설이 함께 하는 박물관 투어를 기획하였으며 이를 통해 커피 문화의 다양성을 알리고자 합니다”

■ 유물로 만나는 한국 커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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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로스팅하는 시간, 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5단계로 로스팅된 커피 원두. 윤원규기자

2층 상설전시관은 커피의 역사, 커피의 일생, 커피문화, 미디어 자료실로 구성되어 있다. 벽면에 걸린 세계 지도는 커피의 전파경로를 알려주고 있다. 커피나무 사진과 붉게 익은 열매, 열매를 따는 농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바닥에도 커피를 볶는 철판, 열매를 빻았던 절구, 주전자 같은 낡은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동사람들이 유럽인 못지않게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시다. 볶은 커피열매를 분쇄하는 그라인더들의 형태가 참으로 다양하다. 유럽인들이 사용한 손때 묻은 절구가 눈길을 끈다. 동서양에서 한동안 원두를 절구에 넣어 빻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18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사용했던 목재 그라인더는 한약방에서 사용했던 약기와 흡사하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그라인더가 사용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라인더는 어느 나라 제품이든 바닥이 모두 넓고 네모져 있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푸조’라는 수십 년 커피밀을 생산해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생산해 낸 회사다. 그라인더 하나에 당대 과학기술과 예술적 욕구가 집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커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무엇일까? 부친 박종만 설립자를 이어 올해부터 관장을 맡고 있는 박정우 씨가 들려준다. “1888년 왕실의 초청으로 조선에 머물렀던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이 지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란 책과 고종황제가 사용한 커피스푼입니다. 로웰의 책에 ‘우리는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시기 위해 별장에 다시 올랐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책을 발견하면서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지요. 스푼을 보면 손잡이 끝에 조선 이왕가를 상징하는 배꽃문양이 보이지요? 이 유물은 고종의 증손자인 이혜원 선생이 기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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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더치커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식해보고 있다. 윤원규기자

■ 한국인이 주역인 커피의 신역사

조선인 최초의 커피 관련 기록은 ‘한성순보’ 1884년 2월 17일에 실려 있다. 운수와 유통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기사이다. 11년이 지난 1895년에 펴낸 유길준의 ‘서유견문’에도 커피를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다. “서양 사람들의 음식물은 빵 버터 생선 고기류가 주식이고 차와 커피는 우리나라에서 숭늉 마시듯 마신다” 전시실에는 300년 전 아라비아 사막에서 사용하던 커피 추출기도 있다. 이 또한 설립자 박종만 전 관장이 발품 팔아 모은 유물이다.

호텔 흑백사진들도 귀중한 기록이다. 최초의 호텔은 1888년 인천 중앙동에 들어선 대불호텔이다. 서양식 식사가 제공되었으니 커피가 판매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에도 팔레호텔(1899), 스테이션호텔(1901) 손탁호텔(1902)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한국인이 운영한 최초의 다방은 영화감독 이경손(1905~1977)이 1927~8년에 인사동에 문을 연 ‘카카듀’라는 사실도 박 전 관장이 밝혀낸 것이다. 6.25 직후 전주 경원동에 문을 연 삼양다방, 1955년 진해 대천동에 문을 연 흑백다방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다방으로 지역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현장이다. 왈츠와 닥터만 박물관은 이처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다방을 살리는 운동도 펼쳤다.

소설가 헤밍웨이와 이상 등 한국과 서양의 유명인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나폴레옹의 사진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하루 열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는 나폴레옹은 청년시절 프랑스의 카페 프로코프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고 커피 값이 없으면 자신의 군모를 맡기기도 하였다.” “발자크는 엄청난 양의 블랙커피를 마시며 하루 15시간 이상 집필하였고 ‘커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글을 썼다” 한국인은 이봉구, 김환기, 채만식, 박태원, 고종, 유길준, 오상순, 전혜린, 이상까지 아홉이다.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화를 이끈 천재작가 이상은 종로 1가에 ‘제비’ ‘69’등의 다방을 직접 경영하여 초기 우리나라 다방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비롯한 독일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했던 전혜린은 학림다방과 돌체, 모나리자 다방을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한 장의 흑백사진은 관람객을 1970년대로 안내한다. 거피와 관련된 희귀한 유물은 이곳에서 모두 보물이다. 한복을 차려 입은 세 여인이 마루에서 커피는 마시는 모습이다.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커피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진이다. 한국네슬레 여수대리점 선미상사의 다방 재료 요금표도 박물관의 소중한 전시물이다. 세계의 다양한 커피들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앞에 서면 커피가 얼마나 세계적인 음료인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그렇다. 커피는 원유 다음으로 많이 유통되는 물품이다.

전시실 맨 끝에서 한국 커피의 역사와 다시 만난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누렇게 바랜 신문 스크랩도 한국 커피의 문화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남대문정거장에는 1일부터 끽다점을 개설하였다더라” 1909년 11월 3일자 ‘황성신문’은 일본인이 다방을 연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겨울밤에 더욱 좋은 맛 좋은 차 끓이는 법-커피, 홍차, 코코아, 초콜레트차는 이렇게” 1933년 12월 22일자 조선중앙일보의 기사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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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전세계에서 수집된 다양한 디자인의 커피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게 판매되는 커피원두. 윤원규기자

■ 100년 후를 생각하는 커피박물관

커피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고 체험하는 것 못지않게 정성을 쏟는 일이 있다. 바로 한국의 오랜 다방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커피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3층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에서 커피나무와 마주한다. 커피를 교육하는 공간인데, 커피나무가 자라는 온실로 연결되어 있다. “커피나무를 강원도 야지에서 재배하여 한국산 커피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커피사업자는 2022년 5월 현재 8만9668명을 기록하고 있다. 커피점의 숫자가 2022년 현재 인구 575명 당 1개꼴이다. 박물관을 차분히 둘러보면 13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이 어떻게 해서 커피공화국으로 성장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시간도 재미있지만, 숙련된 바리스타의 지도를 받으며 손수 콩을 갈고 커피를 내려서 커피를 음미하는 체험시간만 할까. 뜨거운 물을 붓자 종이필터에 쌓인 커피 가루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피어오른다.

2006년 3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정통클래식음악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100석 규모의 홀이지만 3명의 청중만 예약해 연주자 4명보다 적은 수로 음악회가 열린 적도 있었단다. 금요음악회는 곧 700회를 기록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뚝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설립자 박종만 씨는 1989년 출장차 간 일본에서 ‘왈츠’라는 커피회사를 방문하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왈츠와 닥터’란 커피박물관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닥터만’은 한국 최고의 커피 박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닥터에 설립자의 이름 ‘만’을 붙인 것이다. 그런 설립자의 열망과 바람이 대를 이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은 한국의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는 역동의 공간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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