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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은 꿈도 못 꿔요”… 인천 지자체 ‘364일 계약직’ 수두룩
인천 인천사회

“퇴직금은 꿈도 못 꿔요”… 인천 지자체 ‘364일 계약직’ 수두룩

1년 중 하루 뺀 단기 계약 맺고... 조직에선 ‘정원외 인력’ 신분 구분
공공기관 등서 기간제 채용 남발... 고용법률 허점 이용한 꼼수 비판
市 “근로자 차별 없도록 힘쓸 것”

27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의 인천지방법원. 근로자가 시설 청소를 하고있다. 박귀빈기자

 

“1년 365일 중 1일이 모자란 364일짜리 계약직이라 퇴직금도 없어요.”

 

인천의 한 소방서에서 일하는 A씨. 소방서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A씨의 근로 계약은 올해 1월2일부터 12월31일까지다. A씨는 “남들과 똑같이 1년 내내 함께 일하는데, 신정인 1월1일 하루가 계약기간에 빠졌다고 퇴직금이 없다네요”라고 했다. 이어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면 대부분 소방서가 다 이렇다고 한다”며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허울만 좋지, 처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인천시 산하의 한 출자·출연기관에서 일하는 B씨도 마찬가지. A씨처럼 휴일인 1월1일을 제외한 364일이 계약 기간이다. 당연히 퇴직금도 없고, 조직에서는 ‘정원 외 인력’으로 신분이 나뉜다. B씨는 “정규직 전환하기 싫어 2년을 넘기지 않는 계약직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1년을 1일 넘기지 않는 이런 계약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어 “회사에서 쓰다가 버리는 ‘티슈 계약직’이란 생각이 든다”며 “퇴직금이 그렇게 아까운가 싶다”고 했다.

 

인천지역 공공기관에서 1년에서 1일이 부족한 364일짜리 계약직(기간제) 근로자들의 고용이 만연하다. 공공기관들이 1년 기간을 채우지 않기에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조직 정원도 차지하지 않기에 이 같은 9개월 이상 12개월 미만 기간제 근로자 채용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인천시를 비롯해 10개 군·구의 기간제 근로자 5천110명의 근무형태를 분석한 결과, 9개월 이상 12개월 미만의 기간제 근로자는 1천224명(23.9%)에 이른다. 기간제 근로자 5명 중 1명은 사실상 1년 내내 일을 하고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세부적으로 9개월 이상 12개월 미만 기간제 근로자는 시가 총 825명 중 164명(19.9%)이다. 군·구별로는 강화군(47.5%)과 서구(32.4%), 옹진군(31.5%) 등이 이런 형태의 근로자 비율이 많다. 이어 동구(27.7%), 미추홀구(26.2%), 남동구(25.8%), 부평구(23.6%), 중구(19.2%), 계양구(18.1%), 연수구(7.1%) 순이다. 이들 업무는 대부분 청사 환경 정비와 경비, 청소, 안내, 콜센터 업무 등 상시·지속적이다.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은 9개월 이상의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기간제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와 군·구 등은 정원과 인건비 등을 이유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해마다 12개월 미만 기간의 고용만 반복하고 있다.

 

특히 시와 군·구의 이런 형태의 근로자 1천224명 중 만 55세 이상 근로자는 645명(52.7%)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만 55세 이상은 2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반드시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역 안팎에선 올바른 기간제 근로자 고용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법의 허점을 이용한 이 같은 ‘꼼수 근로 계약’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공공에서 퇴직금, 법정 휴가 보장 등 여러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형태로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공기관들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생각은 안하고, 기간제를 줄이면 파견으로 돌리는 등 법망을 피해가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문제를 알고 있지만, 정원과 인건비 등의 문제로 한계가 있다”며 “기간제 근로자가 차별 받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또 한 구 관계자는 “예산 문제도 있고, 일부 사업에 한정해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이라며 “업무 특성 상 만 55세 이상 노령층이 많은 것 뿐, 고의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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