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식통

[강성곤의 말글풍경] ‘님’ 대신에 다른 걸 생각하자

‘님’의 사용, 소통 어렵고 부정적 효과↑
직장 동료는 이름+접사 ‘이’로 부르기

image
강성곤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외래교수

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가 있다. 기업에서 직급을 파괴하는 조치로 ‘님’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 자유롭고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를 위해 호칭에 대한 혁신을 꾀했다는 설명이 붙는다. 반면 ‘님’을 도입했다가 포기한 경우도 속출한다. 왜일까. 이유는 동기 부여 저하, 평가⸱보상 시스템의 혼란, 소통의 역설적 어려움 등으로 요약된다.

 

‘님’의 실패 사례는 진즉 예정돼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름 다음에 ‘님’ 붙이기는 축약과 함축의 묘미는 전혀 살리지 못하고 사용자에게 부담만 늘게 하기 때문이다. 성(姓)과 이름을 포함한 상태에서 ‘님’을 또 보태면 이름을 세 글자라고 했을 때 대개 4음절이 되기에 우선 길이가 늘어난다. 비경제적이다. 여기에 ‘님’ 앞에서 벌어지는 발음과 관련된 각종 문법이 적용돼 혼란을 초래한다. 음운동화⸱음운첨가⸱연음법칙⸱절음법칙 현상 등 각종 복잡성이 동반하는 것이다. 언어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지 못하는 비전문가의 시행착오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기회비용의 낭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성을 빼도 문제는 남는다. 어찌 보면 더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사람은 자기 이름을 수시로 불리는 환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 법정, 주민센터 등과 그 밖의 공공기관 등을 상상해보라. 대부분 친밀한 환경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고 딱딱하며 타자화되는 장소와 분위기다. 더구나 요즘은 대면 활동이 생략되거나 상대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축소되는, 건조하고 각박한 환경이다. 이럴진대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다시 ‘님’을 붙이는 수고는 다분히 억지춘향격이다.

 

‘김 국장님, 이 부장님, 박 차장님’은 이름을 일일이 기억 못 해도 성(姓)과 직급만 알면 통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기다 속내야 어떻든 공대(恭待)와 존경(尊敬)을 덤으로 구사하는 셈이 된다.‘님’을 받아들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유다. 면밀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문자언어적 사고에 갇혀 정작 그것을 활용하는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을 간과한 탓이다. 달리 말하면 말하기의 마당인 음성언어적 환경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던 탓으로 귀결된다.

 

호칭 파괴를 진정으로 원했다면 ‘님’의 의존명사로서의 겉옷을 과감히 걷어차고 어문규정을 파기한 채 아예 ‘님’ 하나만을 인칭대명사로 썼어야 할 일이다. 누구나 아무나, 회장이건 사장이건 대리건 과장이건 평사원이건 노조위원장이건 ‘님’이었어야 한다. 모두가 ‘님’이 되는 세상 말이다. 그럴 정도의 무모한 자신감과 새뜻한 창발성을 탑재하지 못하면 ‘님’의 보편화는 아득히 머나먼 길이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제안 차원으로 여기면 좋겠다. 직장에서의 사무 공간 구성원을 중심으로 서로를 부를 때 성 없이 이름에 접사 ‘이’를 붙여보면 어떨까. 한국인의 이름 끝 글자의 받침은 순우리말 이름 ‘김별빛’, ‘이꽃잎’ 등속을 제외하고는 거의 ‘ㄱ ㄴ ㄹ ㅁ ㅂ ㅇ’, 이 여섯 자음, 닿소리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까 여기다 ‘이’를 덧대면 ‘기 니 디 리 미 비 이’로 끝나게 된다. 결과는 ‘혀기←혁, 미니←민, 여리←열, 라미←람, 여비←엽, 경이←경’ 등 신선하고 다채로운 조합이 가능해진다.

 

더구나 우리에겐 끝 글자에 받침이 있는 이름은 특히 입말에서 접사 ‘이’를 각종 격조사에 붙여 활용하는 습속(習俗)이 배어 있다. “춘향이가 울며 말하길”, “이때 심청이가 돌아서더니” 등이 그 예다. 받침이 없다면 ‘기~히’까지 취향에 따라 더 많은 변환이 가능하다. ‘호→호니, 아→아티, 지→지디, 유→유키, 혜→혜피’ 등. 사실 이름 끝에 ‘이(i)’ 붙이기는 글로벌적인 것이기도 하다. 마이클→미키, 제임스→지미, 엘리자베스→베티, 제시카→제시, 아만다→맨디 등은 비근한 예다. 처음엔 생경하고 겸연쩍을 수 있으나 이내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이유와 명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찾고 싶다. ‘노는 사람’, 즉 유희의 인간을 뜻하는 용어다. 언어유희야말로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물로 놀이의 원형일 터. 일상어의 재미를 동반한 변환은 폭력성⸱선정성⸱저급성만 없다면 환영할 일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