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에도 없는 곳… 14년째 방치된 ‘탄약고’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③]

인근 탄약고 통폐합 후 지금까지 폐허, 서바이벌장 의견에 군청은 ‘묵묵부답’
연천, 도내 가장 많은 軍 유휴지 보유... 주민 희생만 있을 뿐, 관심은 저멀리
郡 “정부에 개발 요청해도 진전 없어”

군 떠난 자리, 버려진 땅 도심 속 잠든 軍 유휴지

③연천 탄약고 부지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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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부의 군부대 이전 부지 중 새로운 공간으로 개발을 완성한 곳과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유휴지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14년째 방치되고 있는 연천군 장탄리 탄약고(왼쪽 사진)와 미군 공여부지를 문화관광시설로 개발한 동두천시 탑동동 ‘니지모리 스튜디오’ 모습. 윤원규기자

 

“관광지로 개발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텐데, 몇 년째 달라진 게 없고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요.”

 

버려진 군(軍) 유휴지 한 곳을 찾았다. 찢어진 천 조각을 엉성하게 둘러놓은 철문 뒤로 높게 자란 수풀만이 자리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감시초소는 앞뒤로 뻥 뚫려 있었는데, 내벽에는 한때 이곳이 활발히 이용됐던 듯 지도와 안내문이 보였다. 그 너머로 보이는 내부에는 건장한 성인 남성 세 명을 합쳐놓은 크기의 탄약 하나가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이곳은 연천군 장탄리 467번지 일대에 있는 탄약고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아 물어물어 겨우 찾은 입구는 인적 없는 논밭 한 가운데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는 듯 출입문에 채워놓은 자물쇠는 새것이었지만, 이외 모든 것은 낡거나 녹슨 모습이었다.

 

‘장탄리 탄약고 METEX’로 불렸던 이곳은 2010년까지 활발히 운영됐다. 하지만 탄약고가 인근 청산면에 있는 탄약고와 통폐합되면서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버려져 있기만 하다. 폭발 사고 위험성이 높아 오염정화작업도 절실하지만, 당장 시작해도 2~3년은 걸릴 정화 작업이 첫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출입제한구역’으로 묶여만 있었다.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을 만나 이곳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예전에는 그쪽이 꽤 시끄러웠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소리 소문 없이 부대가 철수했던 것”이라며 “보다시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저 자리에 서바이벌장을 만들면 사람들도 많이 오고 장사도 할 수 있을 텐데, 군청에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답이 없다”며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탄약고로 갔다. 찢어진 넝마 조각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별다른 ‘설치’ 없이 충분히 서바이벌장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 면적은 네 번째로 크지만, 인구는 5만명도 되지 않는 ‘크고 작은’ 도시 연천군은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군 유휴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쓰임이 있는 곳은 드물다. 70여 년간 접경지역에서 총포 소리, 오발탄 등 전쟁을 실감하며 살았을 주민들의 희생만 있을 뿐 이곳에 주어지는 관심도, 보상도 잊히다시피 했다.

 

지자체에서도 군 유휴지가 ‘노는 땅’에 머물지 않도록 끊임없이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수년간 묵묵부답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이곳들을 관광지로 개발해달라는 주민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고 우리도 원하는 바”라면서도 “국방부에서 심정적인 공감만 표하고 실질적인 소통은 없어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보호 구역’에서 ‘보는 구역’으로… 문화예술 잠재력 깨워야

김포시 월곶면의 한 군 유휴지. 김포시에 있는 군 유휴지들은 대부분 도심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고 ‘수익성’이 없는 곳으로 분류돼 몇 년째 방치된 상태다. 박채령기자
김포시 월곶면의 한 군 유휴지. 김포시에 있는 군 유휴지들은 대부분 도심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고 ‘수익성’이 없는 곳으로 분류돼 몇 년째 방치된 상태다. 박채령기자

 

폐허가 된 군사기지를 영화관으로 탈바꿈한다면, 버려진 탄약고를 오케스트라 연습장으로 활용한다면 각각의 공간마다 생기가 맴돌지 않을까.

 

군 유휴지의 활용 방안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는 ‘관광·체험’ 및 ‘문화·예술’이다. 군 유휴지 상당수가 경기북부에 집중돼 있고, 이 지역이 군사보호구역과 수도권 규제 등으로 제약을 받아온 만큼 지속가능한 ‘먹거리 마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경기α팀은 군 유휴지나 미군 공여부지처럼 군사시설이 떠나고 남은 공간을 관광·문화 자원으로 뒤바꾼 사례들을 살펴봤다. 이때 기준점은 ‘인구 15만명 미만’, ‘초고령 사회 진입(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접경지대 인근’ 등으로 잡았다. 그 결과 동두천시, 가평군 등지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두천시는 2005년 반환받은 미군 공여부지 ‘짐볼스훈련장’을 개발해 수목원, 푸른숲한류관광타운 등 관광지로 조성했다. 사진은 푸른숲한류관광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2021년 조성된 일본마을 ‘니지모리스튜디오’. 윤원규기자
동두천시는 2005년 반환받은 미군 공여부지 ‘짐볼스훈련장’을 개발해 수목원, 푸른숲한류관광타운 등 관광지로 조성했다. 사진은 푸른숲한류관광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2021년 조성된 일본마을 ‘니지모리스튜디오’. 윤원규기자

 

■ ‘관광지’ 된 군인마을…한국 속 작은 일본으로

 

동두천시 탑동동에 위치한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미군 공여부지를 문화관광시설로 개발해 관광객을 끌어모은 대표 사례로, 군 유휴지 개발의 ‘롤모델’로 참고하기 유용하다.

 

인구가 9만명이 채 안 되는 동두천은 지역 면적의 절반가량(42%)이 미군 공여부지고, 나머지는 개발이 제한되는 ‘미군 공여부지 주변지역’으로 묶여있어 각종 개발에 난항이 많다. 지자체로선 어떻게든 이 땅들을 활용해 지역민의 경제 활동에 보탬이 돼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관광 상품’이었다.

 

앞서 미군의 산악 훈련장이었던 ‘짐볼스훈련장’은 2005년 국방부에 반환된 바 있다. 당시 시는 국방부에 ‘미군공여구역 발전종합계획’을 제출하고 이 땅에 민간자본을 들여 수목원, 산림복지타운, 푸른숲한류관광타운 등 문화관광시설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 성공적으로 민간자본 유치 및 관광지 조성까지 이뤄진 곳이 ‘니지모리 스튜디오’다. 이곳은 일본 에도시대 마을을 재현한 테마파크형 스튜디오로 2021년 개장한 뒤 ‘한국 속 작은 일본’으로 불리고 있다.

 

미군이 떠나고 남은 부지에 관광지가 들어서면서 지자체로서도, 지역민으로서도 관련 ‘수입’을 얻게 된 긍정적 케이스로, 군 유휴지 또한 이처럼 문화관광시설로 개발할 수 있도록 선례로 삼을 만하다.

 

가평군은 1939년 대곡리에 개통한 가평역이 2010년 달전리로 이전하면서 해당 부지가 버려지게 되자 ‘가평 음악역1939’이라는 음악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발해 재개장했다. 경기일보DB
가평군은 1939년 대곡리에 개통한 가평역이 2010년 달전리로 이전하면서 해당 부지가 버려지게 되자 ‘가평 음악역1939’이라는 음악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발해 재개장했다. 경기일보DB

 

■ “문화시설 옆 문화시설”…가평군, 음악역1939 앞 군부지 매입·개발 시도

 

군 유휴지를 통해 ‘지역 특색을 담은 문화도시’로서의 미래를 그리고자 하는 케이스도 있다. 가평군이 대표적이다.

 

인구 약 6만 명 규모의 소도시인 가평군은 전체 군민의 32%가 65세 이상일 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 구조 속에서 산업단지나 제조업 기반 유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가평군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자원을 활용한 관광 중심 전략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음악역1939’로 발현됐다.

 

‘음악역1939’는 매년 자라섬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의 성공에 힘입어 조성된 음악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2018년 옛 가평역 부지에 들어선 이 공간에는 공연장, 스튜디오, 영화관 등이 들어섰다. 이름에 붙은 ‘1939’는 가평역이 처음 개통된 연도를 의미한다. 음악을 통해 도시의 색깔을 입히겠다는 가평군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 많은 관광객이 ‘음악역1939’를 찾았고, 도시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며 지역 경제가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

 

가평군은 이를 토대로 지역경제 개발에 힘을 싣자고 구상했다. 구체적으로는 그 앞에 있는 군(軍) 부지까지 문화공간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해당 부지에는 공군부대가 상주 중인데, 국방부와 논의해 부대를 관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음악역1939 앞을 매입해 활용하는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제2의 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가평군 관계자는 “이 부지는 가평의 중심에 위치한 소중한 자산으로, 부대가 이전하게 되면 음악역1939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방부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며,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넓히기 위해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군 유휴지…인천·강원서 ‘즐거운 관광지’로 재탄생

 

군 유휴지가 문화관광시설로 개발돼 방문객을 유치한 사례는 경기도 바깥에도 있다.

 

군대가 철수한 후 놀던 부지를 빙상경기장으로 만들어 시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강원도 철원군의 사례가 돋보인다.

 

철원군은 지난 2021년 국방개혁으로 인한 ‘군(軍)부대 유휴부지를 활용한 민·군·관 상생협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송읍 오지리 8만7천㎡가량의 군 유휴지에 야외 빙상경기장을 조성했다. 철원군이 남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라는 점을 이용한 개발이었다.

 

빙상장은 스피드스케이트 정규 400m 트랙 규모로 조성됐다. 방문객이 사용할 수 있는 대기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들도 함께 마련했으며 스피드스케이트도 80족을 구비하고 있다.

 

철원군은 지난해 대한체육회가 진행한 국제 스케이트장 유치 공모전에도 참여했으며,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를 주최하며 매번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백명의 선수들과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인천월미공원안내도. 인천광역시 제공
인천월미공원안내도. 인천광역시 제공

 

인천광역시에서도 군부대가 이전한 후 남은 부지를 활용해 공원 및 관광시설 등으로 개발한 사례가 눈에 띈다.

 

중구 북성동 1가에 있는 월미산은 한국전쟁 때부터 국제연합군이 주둔하던 군부대 지역이었다. 이후 50년 가까이 시민의 출입이 제한됐다가, 2001년 인천시에서 국방부로부터 이곳의 부지 58만8천㎡가량을 매입한 후 1천억여원을 들여 공원으로 조성했다.

 

인천둘레길 13코스에 속한 이곳에는 곳곳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월미산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한국 전통정원과 한옥마을에서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역사 문화전시관에 들르면 우리나라 최초 이민자들의 발자취와 그 시대의 이야기를 배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도 내 군 유휴지 또한 이러한 관광 특화 시설로 개발해 문화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방치하면 황폐해질 뿐인 군 유휴지를 문화시설로 개발해 관광지를 만들면 지역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도 있고 관광객 유치도 가능해 지역 경제 진작에 도움이 된다”면서 “경기북부는 ‘접경 지역’ 테마성을 살려서 한국의 역사나 군에 대한 교육을 주제로 하는 관광지로 개발하면 지역 고유의 특색을 살린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 관련기사 :

신도시 사이 노른자땅…'軍 유휴지' 개발 깜깜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713580270

 

빈 땅만 남긴 '韓 군부대', 변화의 바람 '美 공여지' [軍 떠난 자리, 버려진 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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