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슈퍼맨’, ‘개인’이 아닌 ‘관계’에 찍힌 방점 [영화와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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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맨’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국 만화 DC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 영웅의 대명사가 된 슈퍼맨은 그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면서 대중의 곁을 지켜 왔다. 그런 그가 2025년 7월 9일 또 한 번 새롭지만 익숙한 모습으로 국내 극장가를 찾았다.

 

현재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업계의 트렌드는 새로운 모험이 아니라 안전한 선택이다. 확실하게 대중에게 각인된 IP를 재소환 및 생산해 그 생명력이 다하지 않도록 반복 활용해야만 한다. 그런 시도들이 곧 수익과 직결되고 업계를 유지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맥락에서 공룡 테마파크인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쥬라기 월드’로 변주되면서 계속 대중과 소통하고 있으며 에이리언이나 터미네이터는 물론이고 디즈니(‘라이온 킹’, ‘백설공주’ 등의 실사화 프로젝트), 드림웍스(‘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픽사의 애니메이션(인사이드 아웃, 토이 스토리)을 비롯한 다채로운 세계관과 소재 등이 끝없는 속편을 통해 대중을 유혹하고 있다.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슈퍼맨’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만큼 지겹도록 소비됐던 ‘슈퍼맨’ 시리즈를 다시금 되살려내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 있어 고민이 많았을 수밖에 없다. 그 흔적이 영화 곳곳에 배어 있다. 사실 이번 ‘슈퍼맨’은 영웅이나 초인을 다루는 히어로 장르물을 마치 영웅물이 아니라 다채로운 장르를 뒤섞은 것처럼 표현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각본 단계뿐 아니라 연출의 측면까지 모두 고려해 보면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 어떤 슈퍼맨으로 대중 앞에 소환되는가

 

슈퍼맨(본명 칼 엘)에게 부여된 설정부터 시작해 보자. 외계 행성 크립톤 출신의 초인인 데다 총알도 튕겨내는 육체와 선하고 강인한 마음씨를 지녔다. 유일한 약점은 지구상에서 찾기 힘든 어떤 광물뿐이어서 적수가 없다. 그런 그가 인류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만화와 영화 속에 담겨 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바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의 고향은 사라져 버렸고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머나먼 땅 지구에서 나와 닮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존재인 사람들 틈에 뒤섞여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제임스 건이 빚어낸 이번 최신판 ‘슈퍼맨’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이번 영화는 슈퍼맨 개인에게 집중하는 대신 슈퍼맨이 주변의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형태나 속성을 무리할 정도로 폭넓게 엮어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판받고 있는 요소들도 있다. 이 영화가 슈퍼맨의 이야기인지, 단순히 슈퍼맨을 소재로 빌려온 팀업무비 내지는 군상극인지 도통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 않았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슈퍼맨’의 시도가 바람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어떻게 하면 동시대 대중에게 더 밀착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묻어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더 이상 슈퍼맨의 서사나 설정은 매혹적이지 않고 지난 20여년간 반복돼 왔던 마블과 DC 코믹스 기반 콘텐츠의 변주 속에서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피로감이 극대화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대중에게 더 이상 무적의 영웅 슈퍼맨은 필요하지 않은 존재일 수도 있다. 사전 정보를 완전히 차단당한 채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이번 영화가 슈퍼맨의 단독 영화로 취급될 확률은 낮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연약함도 보여주고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완의 존재로만 스크린을 떠돈다. 또 슈퍼맨이 극을 이끄는 대신 로이스 레인을 비롯한 조연 캐릭터들과 동료 초인들이 곳곳의 플롯을 담당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맡아 돌보는 반려동물의 비중도 상당하다. 결국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장르물인지, 동시대 미국 중심주의와 국제 정세를 빗대 풀어내는 사회 풍자 영화인지, 동물권 신장을 위한 메타포를 녹여낸 사례인지, 다채로운 캐릭터의 균형감을 중시하는 팀업 무비를 표방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방향’과 ‘선택’으로 빚어낸 관계 맺기

 

결국 슈퍼맨 개인의 서사와 성취에서 비롯되는 쾌감 대신 그가 맺는 관계에 지향점을 둔 영화의 태도 덕분에 초반부에 등장하는 인터뷰 시퀀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클라크 켄트와 로이스 레인의 인터뷰 구간이 바로 이 영화에서 다루려는 주요 테마를 압축해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인은 켄트가 아닌, 슈퍼맨으로서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켄트는 흔쾌히 이에 응했다. 레인은 연인 관계인 그를 난처하게 만들 법한 날카로운 질문을 서슴지 않고 이어갔다. 슈퍼맨은 그런 질문을 듣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표현한다. 이에 레인은 녹음기를 끄고, 인터뷰에서 그렇게 대답하면 어떻게 하냐며 다그치기도 하고, 그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슈퍼맨 역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기반해 답한 것뿐이라며 언성을 높이고 흥분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된다.

 

이 구간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있다. 바로 ‘방향’과 ‘선택’이다. ‘방향성’부터 살펴보겠다. 로이스 레인과 클라크 켄트는 인터뷰 내내 어떤 존재가 되는가. 인터뷰어는 연인이자 기자를 오가고, 인터뷰이는 슈퍼맨이자 켄트를 오간다. 그들의 질문과 답변은 어떤 존재가 되느냐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정된다. 이건 바로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나의 가치관과 신념을 내세울 때 스스로의 내면과 소통하는 데 집중할지 아니면 타인과 교류하는 데 소모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또 선택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레인의 질문에 켄트는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 답변을 이어가도 좋고 때로는 회피하거나 반박할 때도 있다. 오로지 선택은 그의 몫이다. 이처럼 인터뷰 시퀀스에서 대두된 이 방향과 선택의 키워드는 후반부 켄트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어떤 존재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작용하는 동력이 된다.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렇게 쌓아 올린 켄트의 서사가 비록 수많은 캐릭터와 크고 작은 에피소드에 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영화가 중시했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태도 덕분에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세계관이 동시대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슈퍼맨이 더는 무적의 초인이 아닌, 인간들 틈에 뒤섞여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쌓아갈지 매순간 방향과 선택을 가늠하려는 그런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인지 히어로물의 염증이 심해진 요즘, ‘슈퍼맨’이 자아낸 자그마한 감흥이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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