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은 가능한가? ‘머티리얼리스트’ [영화와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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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티리얼리스트’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첫 장편 ‘패스트 라이브즈’(2023년)로 세간의 이목을 이끈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신작 ‘머티리얼리스트’가 8일 국내 극장가를 찾았다. 자전적인 소재에서 출발해 보편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섬세하고 유연한 감성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현실 관객들이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스크린에 풀어냈다. 바로 ‘사랑’과 ‘결혼’이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완성될 수 없다. 관객들이 내놓는 반응까지 머금을 때 영화가 품은 화두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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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티리얼리스트’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사랑과 결혼

영화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조건과 숫자로 가득한 현대인의 사랑에서 벗어나 원시사회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형태의 사랑을 꿈꿔 봐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건 영화 속 특정 장면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동시대 뉴욕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영화에서, 오프닝과 종반부 엔딩 직전 두 구간의 시공간 배경이 급작스럽게 선사시대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오프닝을 떠올려 보자. 바깥에서 볼 일을 마친 한 원시인 남성이 오는 길에 들꽃을 한 다발 꺾어 온다. 주거지인 동굴에 있던 한 여자는 그가 오는 인기척을 듣고 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두 사람은 마주 앉고, 여자는 꽃향기를 맡는다. 남자는 꺾어 온 들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여자의 약지 손가락에 끼워준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관객들은 이 장면이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의 꿈속이라는 걸 넌지시 짐작하게 된다. 루시는 독백을 통해 “처음으로 결혼했던 사람들에 대한 꿈을 꿔. 두 명의 원시인이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난 꿈속에서 계속 자문해. 무엇이 그들을 완벽한 짝으로 만들었을까. 비슷한 경제적 배경? 같은 정치 성향? 서로 어울리는 외모? 비슷한 성장 환경?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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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티리얼리스트’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현대와 대비되는 시공간 배치를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원시인들은 체크리스트 속 조건 같은 거 따지지 않고 그냥 사랑하면 결혼했다고 봐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이런 반문도 가능하지 않겠나. 원시 부족 사회에선 출산을 통해 대를 이어가야 종족이 유지되고 번성할 수 있으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성립되기 이전에 그런 목적이 전제되는 거라면 그들이 과연 제대로된 사랑을 했겠느냐고 말이다. 즉, 결혼과 사랑은 분명 다르게 취급돼야 하고 그에 관한 논의 역시 구분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 두 가지의 개념을 때로는 동일시하고 때로는 분리하면서 관객을 가끔씩 혼돈으로 이끈다는 한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 깃든 한계 자체가 곧 관객들이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증표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인에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으로만 존재할 수 없고, 결혼 역시 결혼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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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티리얼리스트’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공감은 가능, 설득에는 실패할 수밖에

그렇기에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다소 과장될 수 있는 설정을 도입했다. 누군가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건 이 영화가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조건을 봐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숫자에 집중해야만 한다. 키, 연봉, 학력, 직업, 집안 배경, 종교, 정치 성향…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결혼정보회사(매칭 회사)에서 커플 매니저로 재직 중인 루시는 상사가 믿는 유능한 직원이다. 실적도 동료들보다 뛰어나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도 가득 차 있다. 루시는 사랑을 조건으로만 둘러싸인 숫자놀음으로만 이해하고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영화는 그런 루시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따라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를 위한 설정과 장치는 밀도 있게 배치됐고 또 그런 의도 역시 납득이 간다. 루시의 전 애인 배우 지망생 존(크리스 에번스)은 결혼식 출장뷔페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변변찮은 집도 없이 룸메이트들과 공유하는 월세방에 산다. 그런가 하면 루시와 새롭게 사귀게 되는 남자친구 해리(페드로 파스칼)는 연 수입이 최소 수억원에 이르는 사모펀드 매니저로 애초부터 부유한 집안인 데다 소유한 펜트하우스도 16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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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티리얼리스트’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이렇게 세팅된 영화의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뭔지모를 불편함, 그리고 심연에서 솟아나는 공감과 수긍의 감정들이 느껴진다는 건 확실하다. 루시와 존, 해리 사이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우리네 현실 속에서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을 법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감과 설득은 다르다. 이 영화는 공감대를 자아내긴 해도 끝내 설득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조건만 따지던 루시가 갑자기 돌변해 가난한 존을 택해 결혼까지 골인한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었을까. 존의 말처럼 “원래 사랑은 그런 거야” 한마디면 온갖 이유와 핑계 없이 그렇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들을 집요하게 설득하는 작업은 은근슬쩍 포기해 버린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마지막 순간 인물들을 가까이에서 붙잡지 않고 먼 발치에 떨어져 응시만 할 수밖에 없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등장하는 공간은 뉴욕 시청 혼인 신고소다. 결혼을 막 했거나 혹은 그럴 준비를 하고 있는 수많은 커플들이 혼인 신고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크레딧의 막바지에도 군중 틈에서 존과 루시가 등장해 서류를 들고 키스를 하면서 유유히 프레임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이들이 어디에서 움직이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찾기 힘들다. 어떤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들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들의 선택에 코멘트를 덧붙이고 싶었다면 이들의 대화를 추가하고 더욱 서정적이고 극적인 배경음을 통해 해당 구간에 의미를 부여했으면 될 일이었지만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즉,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선 것처럼 보이는 루시와 존의 행보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만 보는 선택을 내린 셈이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이 선택을 과연 비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현실이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든 건 아닐까. 이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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