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국어 사용 실태 어휘 조사’ 직원 호칭으로 ‘여기요’ 가장 많이 사용 ‘사흘’보다 ‘삼 일’... 음성언어 중심 경향
국립국어원이 ‘2024년 국어 사용 실태 어휘 조사(이하 조사)’를 내놓았다. 전국 만 15세 이상, 69세 이하 성인 3천명을 대상으로 국어 사용 양상을 짚었다. 한국인은 식당이나 관공서에서 직원을 어떻게 부를까. 대상이 젊을 때, 중년 이상일 때, 여성일 때, 남성일 때 등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사용된다. 그중 ‘여기요’가 가장 많이 쓰였다. 공공기관에서 20~30대로 보이는 여성 직원을 직접 어떻게 부르냐’는 질문에 ‘여기요(저기요)’가 47.9%로 ‘선생님’(27.9%), ‘아가씨’(15.5%), ‘젊은이’(2.2%), ‘젊은 양반’(1.2%)을 제쳤다. 남성 직원을 부를 때도 여기요(저기요)가 50.6%로 가장 높았다.
여기요는 식당이나 편의점 젊은 여성 직원을 부를 때도 36.7%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다만 ‘아가씨’(32.3%)와 비등하게 경쟁했다. 관공서에서 여성 직원을 ‘아가씨’라고 부르기를 주저하던 50대 이상 국민의 절반가량이 아가씨를 선호한 결과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중국은 ‘종업원(從業員·푸우유안)’ 하고 외치는 스타일. 일본은 ‘스미마셍’(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혹은 ‘아노(あの/彼の)’, ‘저...’처럼 말끝을 흐리는 게 일반적이다. 선진국은 종합하면 주인이나 종업원을 부를 때 언어적 뉘앙스가 조금 있긴 해도 ‘excuse me’의 의미성(意味性)이 보편적이다. “(당신을 부르는) 나를 용서해달라”다. 프랑스어 ‘엑스퀴제 무아(Excusez-moi)’도 그렇고 독일어 ‘엔트슐디겐 지 비테(Entschuldigen Sie bitte)’도 마찬가지. 독일을 예로 들면 가장 무례한 경우가 “Herr Ober!(헤어 오버)” 하며 직접 부르는 것. 영어로 “헤이, 웨이터”다. 구미(歐美)의 레스토랑 및 카페는 종업원이 일하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 손님이 애타게 찾아도 자기가 맡는 테이블이 아니면 안 온다. 한국인이 종종 오해하고 얼굴을 붉히는 이유다. 그다음이 할로(Hallo), 영어의 헬로다. 이게 우리의 ‘여기요’에 해당할 듯하다. 가장 교양있는 층은 엔트슐디겐 지 비테, 혹은 엔트슐디궁(Entschuldigung)을 쓴다. 바쁜 당신을 부르는 걸 용서하라는 의미다. ‘여기요’도 좋지만 내처 ‘실례합니다’를 써보면 어떨까. 주인이나 종업원은 무언가 대접받는 느낌에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5년 전 꼭 요맘때 벌어졌던 이른바 ‘사흘 사건’. 당시 정부가 8월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토요일인 15일 광복절부터 월요일인 17일까지 쉴 수 있었다. 언론은 ‘광복절 사흘간 황금연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왜 3일 쉬는데 사흘이라고 하느냐’는 댓글이 잇따랐다. ‘사’를 4로 혼동해 4일을 뜻하지 않느냐는 것. 문해력 논쟁이 불거졌고 요즘 사람들이 어휘력이 부족하고 국어 실력이 퇴보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이번 조사에서도 ‘그제, 어제, 오늘까지 휴일이면 얼마 동안 휴일인 겁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응답 결과를 보니 ‘삼일’이 58.1%, ‘사흘’이 41.8%였다. 2022년 때는 삼 일 53.8%, 사흘 46.2%였다. 사흘 대신 삼 일을 점점 더 많이 쓴다는 결과다.
삼 일, 사흘 관계와 비슷한 사례로 수량이 셋임을 나타내는 ‘세’와 ‘석’이 있다. 두 실태 조사에서 ‘회초리 맞는 횟수가 3회일 때 몇 대 맞았다고 하느냐’고 물었다. 3년 전 실태 조사 때는 ‘세 대’ 65.9%, ‘석 대’ 34.0%였다. 작년 실태 조사에서는 세 대 70.8%, 석 대 29.1%로 석 대 응답률이 30% 밑으로 떨어졌다. 석의 존재감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많이 쓴다고 해서 존재감이 우뚝한 것만은 아니다. 문자언어 중심에서 음성언어를 염두에 두는 입체적 접근이 아쉽다. 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열흘은 확실히 1, 2, 3, 4, 5, 6, 10일보다 전달력 측면에서 우위다. 또 교양과 언어감각을 드러낸다. 이레·여드레·아흐레는 과욕이라고 본다. 세/네와 석/넉의 부진도 아쉽다. 영어 the 다음에 모음이 오면 발음이 [더]에서 [디]로 바뀌는 예가 있지 않은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발음의 리듬감을 중시한 규칙이다. 영어는 철석같이 지키면서 우리말은 허투루 다루는 것 같아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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