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잘 만들어진 문화예술작품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들기도 한다. 주인공의 서사에 몰입하며 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고 가슴을 울리는 대사 한 줄, 눈물이 핑 도는 노래 한 곡에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공연이 던진 질문이 머릿속에서 오래 남아 내 행동이 변화하기도 한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넘어 삶을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바로 문화예술이 가진 큰 힘이다. 마음속에 오래 남는 정서적 자산이 형성된다.
한국인은 2023년 기준 약 55.3%가 연간 문화예술, 스포츠 등을 관람했고 이들의 1인당 평균 관람 횟수는 7회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연간 약 26만5천원으로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70대 이상은 약 8만8천원으로 나타나 연령이 낮을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적 높았다. 이는 접근성과 경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20~30대는 공연, 콘서트, 전시 등 경험형 소비를 선호하고 40대는 자녀들과 함께 주로 가족 단위의 관람이나 체험을 많이 한다. 60대 이상은 주로 지역 문화 행사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문화예술 분야 소비에는 경제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 사회학지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개념을 들어 경제자본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문화자본이란 개인이 가진 지식, 교양, 취향, 예술적 안목, 언어 구사력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상징적 자산을 의미하는데 이는 태생적으로 또는 교육과 환경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찾으며 해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특정 계층에 국한된다. 문화적 경험의 폭은 경제력에 기초할 수 있다. 즉, 경제력이 개인의 물적 토대라고 한다면 문화자본은 그 토대 위에 축적되는 보이지 않는 자산인 것이다.
문화예술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클래식 공연이든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전시회든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든 한 사람이 감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는다. 예술을 통해 얻는 감동과 공감은 개인적 만족을 넘어 사회적 연대감을 강화하고 사회 문제를 공유하며 성찰하게 만든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두는 것은 일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이다.
최근 뮤지컬, 콘서트, 스포츠 경기 등에서 나타나는 고가 티켓 현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부 인기 공연의 경우 20만원이 훌쩍 넘는 좌석과 해외 스타 내한공연이나 대형 뮤지컬은 30만원대가 흔하게 되면서 웬만한 가계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고가 티켓이 사회 전반의 문화자본 축적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경제력이 문화자본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문화예술이 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은 약화된다. 예술의 본질이 감동과 공감의 공유에 있지만 티켓 가격이 오를수록 공연은 특정 계층만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변한다. 고가의 티켓이 고급 문화의 상징수단으로 기능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사회는 예술을 특정 계층의 지위재가 아니라 모두의 자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국가와 제도가 문화자본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예술은 곧 국가 정체성’이라는 인식과 함께 문화자본이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투자와 정책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미술, 음악, 연극 교육을 의무화해 어릴 때부터 예술적 감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중상류층 가정에서도 미술관, 콘서트, 오페라 등 문화체험을 일상화한다. 이뿐만 아니라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는 학생, 청년에 할인제도나 무료 입장을 통해 ‘모두를 위한 문화 정책’을 현실화하며 계층별 문화 접근의 격차를 줄이려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고 있다. 기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인간을 온전히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문화예술에 있다. 문화예술이 사회적 불평등을 가르는 축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정서를 다듬고 삶을 깊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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