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천~2천m에 수천만년 황토고원 남한 넓이 4배 달해 편서풍 타고 국내로 하서회랑 좁은 통로에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자위관 설치해 유목민의 침략 대비
천수에서 오전 9시 간쑤(甘肅)성 성도 란저우(蘭州)를 향해 출발한다. 300여㎞ 이동 후 란저우에 일찍 도착했다.
란저우 가까이 접근하면서 황토고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발 1천~2천m인 황토고원은 40만㎢(남한의 4배)로 매우 넓다. 수천만년 동안 쌓인 황토층의 두께는 평균 50~80m다. 우리나라 봄철 황사(黃砂)의 발원지가 이곳 황토고원과 몽골의 고비사막이다. 황사는 봄철 편서풍을 타고 수천㎞ 떨어진 우리나라로 온다.
황허(黃河)강은 란저우시 중심부를 흘러간다. 황허강의 색깔은 짙은 황토색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강은 길이 약 5천400㎞로 중국인들은 ‘어머니 강’이라고 부른다. 황허강변에 어머니 강을 상징하는 ‘모자상’을 설치해 놨다.
우리는 모터보트를 타고 황허강에서 동심의 뱃놀이를 즐기고 찻집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황허강에서 오후 시간을 즐겼다. 란저우의 호텔에서 아침식사로 유명한 특산물 ‘란저우 우육면’을 주문했다. 중국은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의 특성상 지역마다 지역 이름을 붙인 면이 발달했다.
다음 목적지는 570㎞ 떨어진 장예(張掖)다. 간쑤성은 동서 1천65㎞, 남북 550㎞로 매우 큰 성이다. 간쑤성 중간에 900㎞에 이르는 ‘하서회랑(河西回廊) 또는 하서주랑(河西柱廊)’이라고 부르는 천연의 통로가 있다. 하서회랑의 왼쪽은 치롄(祁連)산맥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 있고 오른쪽은 황토고원이 길게 벽을 형성하고 있다.
하서회랑 길은 실크로드 상인, 구법승, 군인, 외교사절 등이 당나라 장안(長安)에 들어가려면 꼭 지나가야 하는 통로다. 하서회랑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이다. 이 길목을 차지하기 위해 한나라와 흉노족의 전쟁, 당나라와 티베트, 돌궐족 등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서회랑의 폭은 넓은 곳은 100여㎞, 좁은 곳은 10여㎞다. 중국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인 자위관(가욕관)을 하서회랑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 설치해 유목민의 침략에 대비했다.
하서회랑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황토고원의 풍경과 색상이 계속 바뀐다. 란저우에서 장예로 가는 중간에 고구려 포로의 후손으로 당나라에서 가장 출세한 안서절도사를 지낸 고선지 장군이 태어난 우웨이(武威)를 지나간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의해 668년 멸망 후 약 20만명이 포로로 잡혀와 변방 여섯 곳에 분산됐다. 고구려 포로의 후손들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당나라 군대에 입대해 공을 세워 장교나 장군이 되는 것이다. 고선지의 아버지는 당나라 군대의 하급 군인이다.
고선지는 아버지의 군 주둔지인 우웨이에서 태어났다. 고선지는 20세에 벌써 유격대장으로 승진하고 당나라 현종 시대인 30대에 안서절도사로 승진한다. 고선지는 안서부절도사 시절 1만명의 적은 병력으로 749년 빙하로 뒤덮인 5천m 파미르고원을 넘어 토번(티베트) 군대 기지를 급습해 점령하고 서역 35개 국가가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 이러한 공로로 30대에 군사령관인 안서절도사로 승진했다.
고선지라는 인물이 각광받게 된 것은 유럽의 군사학자들이 기원전 3세기 로마제국과 전쟁을 위해 알프스산을 넘어간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한 프랑스의 나폴레옹보다 험난한 산악 군사작전을 펼쳤다고 평가함에 기인한다.
755년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자 토벌군 부사령관으로 참전 중 누명을 쓰고 756년 30대 젊은 나이에 처형된 풍운아다. 차창 밖에서 황토고원의 다양하고 기이한 색상의 지형을 자주 만난다.
장예 근처에 오랜 세월 바람과 시간이 만든 칠채산 지질공원이 있다. 오후 늦게 도착해 칠채산 지질공원의 전망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붉은색의 황량함은 외계인 영화에 나올 법한 이색적인 경관이다.
중국의 국가 공원은 5급, 4급, 3급으로 나뉘어 있고 5등급 국가 공원이 입장료가 가장 비싸다. 칠채산은 4등급으로 입장료가 90위안(약 1만7천원)이다. 비싼 입장료임에도 모든 관광지가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하서회랑의 주요 도시는 기원전 2세기 한무제가 개척한 ‘하서4진’이 기원이다.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은 한나라 무제가 만든 하서4진이다.
칠채산을 보고 장예 숙소에 도착하니 늦은 시각이다.
다음 날은 장예에서 200여㎞ 이동해 만리장성 인접한 주취안(酒泉)에서 묵을 계획이다. 오후 일찍 도착해 만리장성의 최서쪽 관문인 자위관을 관람할 계획이다.
자위관으로 가는 고속도로 옆 황야에 무너져가는 만리장성 성벽, 초소가 있던 잔해를 자주 만난다. 명나라가 원나라를 몰아내고 14세기 만든 토성이 600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명나라는 몽골족 등 유목민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 1372년부터 성벽을 새로이 만들었다. 도로 왼쪽은 6천~7천m에 달하는 치롄산맥의 눈 덮인 산봉우리가 멀리서 보인다. 치롄산맥의 빙하 녹은 물이 이 지역의 생명수다. 중국은 치롄산맥의 계곡마다 많은 댐을 설치해 물을 모으고 오아시스 도시의 생활용수, 농업용수 등으로 공급하고 있다.
주취안으로 가는 휴게소에서 랴오닝(遼寧)성이 고향인 조선족 가족 여행객을 만났다. 한국말을 잘하는 교포를 만나니 반갑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출발해 3개월 일정의 자동차 여행 중이라고 한다. 소득 상승에 따른 중국 중산층의 여행문화를 보는 것 같다. 향후 중국의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자동차 여행객으로 가득 찬 도로를 미리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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