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할빠’의 등장…진화하는 조부모 육아 지원 프로그램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②]

그림카드 그려 스토리텔링 놀이... 퀴즈 풀며 수업 내내 ‘웃음꽃’
육아 교실 할아버지 참여 늘어... ‘돌봄·보육’ 사회적 역할 재확립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② 조부모 커뮤니티

“금쪽같은 내 새끼”… 손주 잘 키우는 법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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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열린 ‘지혜로운 조부모의 요즘 육아’ 수업에 참여한 할아버지들이 장난감과 인형을 손주 삼아 다양한 놀이를 실습하며 육아법을 배우고 있다. 조주현기자

 

“시엘아, 이게 뭐지? 그렇지, 사과야. 사과는 무슨 색일까?”

 

7월24일 찾은 고양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한 강의실. 그림카드를 든 김정백씨(65)가 손녀의 이름을 부르며 ‘짝꿍’인 조부모들에게 스토리텔링을 이어갔다. 할머니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수업이 한층 활기를 띠었다.

 

이날 진행된 ‘지혜로운 조부모의 요즘 육아’ 수업은 영유아 발달 단계 이해,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그림책 활용법 세 가지 파트로 꾸려졌다. 수업엔 총 20명이 참여했는데, 그 중 다섯 명이 ‘할아버지’였다. “손주를 잘 키워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모인 이들은 낯선 사이임에도 금세 오래된 벗처럼 서로를 손주에 빗대며 스토리텔링 놀이법을 배우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그림책 활용법을 익히기 위해 동물, 과일, 탈 것 등이 그려진 그림카드를 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꼬리 질문을 더하며 상상력을 펼쳤다. ‘깡충깡충’, ‘반짝반짝’ 같은 의성·의태어와 형용사를 덧붙여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도 배웠다.

 

각 팀은 카드를 이어 붙여 가장 긴 기차를 만들거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며낸 사람을 뽑는 미니게임을 열었고 박수와 환호가 뒤따랐다. 한 할아버지는 발표 도중 긴장한 나머지 엉뚱한 대사를 읊조렸다가 스스로 웃음을 참지 못했고, 참가자들도 덩달아 폭소를 더하며 강의실이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 한서경씨(74)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표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에 연신 웃었다. 한씨는 “여기 와서 교육 듣는 할아버지들은 엄청난 용기와 열정을 가진 분들이다. 집에 가서 남편에게 얘기하니 ‘나도 갈 걸 그랬다’며 멋쩍게 웃더라. 옛날엔 남자가 아기 보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그때 못했던 걸 할아버지가 돼서 다시 배우고 노력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2팀의 장을 맡은 ‘할아버지’ 연용호씨(67)는 “맞벌이로 바쁜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다 보니 아내와 늘 작은 갈등이 있었다”며 “이번 교육 속 퀴즈에서 아내의 답변 솜씨를 보니 ‘난 백전백패구나, 내가 아는 건 완전히 바꿔야 하는구나’ 싶더라”고 전했다. 그는 “엄마나 할머니 만큼은 못하더라도,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날 수업을 펼친 황영미 와이스토리 강사는 “조부모 육아가 나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성장을 돕고, 사회적 역할을 재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히 할아버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인상 깊다”고 말했다.

 

성진경 고양시건강가정지원센터장은 “예전엔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웠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조부모가 주 양육자가 되는 사례가 늘며 공원이나 구청 등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곳에서 오프라인 설문을 진행했고 조부모 육아에 대한 응답이 많아 정식 프로그램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이어 “할아버지들의 참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교육을 평일 낮뿐 아니라 야간·주말로 다양화할 계획”이라며 “관련 분야의 정부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지식·기술 다루는 다양한 교육, 생활 밀착 진화하는 육아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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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동수화백

 

이제는 조부모도 육아를 배운다. “우리가 너 키울 때는”으로 시작하던 옛날식 이야기가 아니라, 손주를 위해 분유 타는 법부터 응급처치까지 다시 새롭게 익힌다. 책과 영상, 지역센터 방문까지 방식도 가릴 것 없다.

 

여기에 적극적인 ‘할빠’(할아버지 아빠)들의 등장이 더해지면서 육아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는 맞벌이 부부가 늘고 핵가족화가 심화되면서 조부모의 육아 참여가 필연적이자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경기·인천지역 곳곳에서도 조부모 대상 육아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과거에는 ‘책 읽어주기’나 ‘손주와 함께하는 놀이 한마당’ 같은 일회성 강좌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영유아 발달 단계별 놀이법, 올바른 식습관 지도, 스토리텔링 기법 등 실제 돌봄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다루는 정기 과정과 심화 교육으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부모가 단순히 ‘보조자’가 아니라, 양육의 한 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교육 내용의 변화와 함께 돌봄 주체인 조부모를 위한 공간·시간적 지원 또한 다양해지는 추세다. 인천중구공동육아나눔터의 ‘배워서 아이주자’ 프로그램이나 의왕시의 ‘돌봄 참여 조부모 소통 강좌’처럼, 기존의 특정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기반 시설을 활용하거나 평일 낮 이외의 시간대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조부모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조부모의 생활 반경과 패턴을 고려한 프로그램 운영은 양육 부담 경감뿐 아니라, 이들이 능동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또 교육 참여는 조부모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육아로 인한 고립감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오고 있다.

 

2016년 인천 부평구에서 진행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조부모 대상 육아 교육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촬영한 기념사진. 당시 50여명의 할머니 사이 청일점 할아버지(세 번째 줄 오른쪽 맨 끝)가 화제를 모았다. 인천 부평구 제공
2016년 인천 부평구에서 진행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조부모 대상 육아 교육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촬영한 기념사진. 당시 50여명의 할머니 사이 청일점 할아버지(세 번째 줄 오른쪽 맨 끝)가 화제를 모았다. 인천 부평구 제공
올해 7월 고양시건강가족지원센터가 연 ‘지혜로운 조부모의 요즘 육아’ 수업 현장. 교육에 참여한 한 할아버지가 이야기 카드를 활용해 발표를 하고 있다. 금유진기자
올해 7월 고양시건강가족지원센터가 연 ‘지혜로운 조부모의 요즘 육아’ 수업 현장. 교육에 참여한 한 할아버지가 이야기 카드를 활용해 발표를 하고 있다. 금유진기자

 

육아 현장에 뛰어든 할아버지들의 참여도 점차 두드러진다. 2016년 인천 부평구에서는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조부모 교육을 시행했는데, 당시 참여했던 할머니 50여명 사이에서 ‘청일점’ 할아버지 한 분이 활약하며 초기 할아버지 육아 참여의 의미 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보도가 화제를 끈 바 있다.

 

이러한 추세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가시화됐다. 지난 7월 고양시건강가족지원센터가 연 ‘지혜로운 조부모의 요즘 육아’ 수업에 전체 참가자 20명 중 다섯 명이 할아버지였고, 이들이 조별 대표를 자처하며 수업을 주도한 사례도 그 예시다.

 

군포시육아종합지원센터가 제작한 2025 조부모양육프로그램 연간 교육 일정 안내 포스터. 군포시육아종합지원센터 제공
군포시육아종합지원센터가 제작한 2025 조부모양육프로그램 연간 교육 일정 안내 포스터. 군포시육아종합지원센터 제공

 

각 지자체들도 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있다.

 

군포시육아종합지원센터는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조부모 교육 연간 과정을 운영하며 응급처치, 연령별 놀이법, 간식 만들기, 생활원예 등 실생활에 밀착된 주제를 다룬다. 안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는 ‘아빠들의 육아데이’를 통해 남성 양육자가 서로 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열었고, 파주시와 용인시 역시 조부모 교육이나 공동육아 지원을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지자체들의 노력은 과거 단편적 강의 수준을 넘어 조부모가 실제 돌봄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흐름을 확산시키고 있다.

 

관련 조사들도 ‘배우는 조부모’의 필요성과 의미를 뒷받침한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부모 돌봄 비율은 2018년 7.4%에서 2023년 8.5%로 늘어났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조사에서도 손주가 있는 부모의 절반 이상(51.1%)이 ‘황혼 육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부모가 단순히 부수적 지원자가 아닌, 사실상 육아의 중심 역할을 떠맡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국제학술지 ‘IJFMR’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초보 조부모 경험’ 연구도 흥미롭다. 이 연구에서 할아버지들의 절반에 가까운 48.8%는 손주를 키우는 데 있어 ‘지나친 간섭보다는 곁에서 지지해 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았다. 반면 다수의 할머니들(60%)은 ‘잘 들어주고 개방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성공적인 조부모 역할 수행의 핵심으로 답했다. 즉 할머니들이 주로 경청과 대화를 통한 돌봄을 강조한다면, 할아버지들은 아이가 스스로 주도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방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곧 달라진 시대의 육아 환경 속에서 조부모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배워가며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된 육아 방식의 차이에 따라 교육과 지원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정학과 명예교수는 “할머니들이 주로 공감과 대화를 통해 돌봄에 나선다면, 할아버지들은 돌봄과 함께 공놀이, 자전거 가르치기 등 신체 활동성을 활용한 방식에 더 익숙하다”며 “이런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적 특성이므로, 교육 과정도 남성 조부모가 자신들의 강점을 살리면서 동시에 소통 능력을 보강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조부모 교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성별·세대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조부모 스스로 육아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생활전선 익숙했던 ‘아빠’⋯ 육아전선 뛰어든 ‘할빠’로 [우당탕탕 할아버지 육아일기①]

https://kyeonggi.com/article/202509015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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