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수요자 주도형 ‘AI 진흥 정책’의 필요성

분야별 전문가 인프라 중점 전략과
수요자 맞춤 ‘AI 정책 균형’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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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 사회 전반을 바꾸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각국이 국가 전략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정부 역시 데이터센터 구축과 초거대 AI 모델 개발 등 인프라와 기반 기술 확충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크게 만들었는가’보다 ‘AI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하는가’에 정책의 무게를 둬야 한다.

 

인터넷의 성장 과정을 떠올리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광케이블을 깔고 서버를 늘린 덕분만은 아니었다. 네이버 지식인 같은 정보 서비스, 다나와 같은 가격 비교 이커머스, 싸이월드 같은 소셜 커뮤니티가 생활 속 필요를 충족시켰기에 국민들이 인터넷을 일상에서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이다. 서비스가 수요를 만들었고 그 수요가 인프라 확충을 이끌어냈다. AI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광케이블 설치를 오늘날의 AI 서버 증설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광케이블은 한 번 설치하면 오랫동안 활용 가능한 인프라였지만 AI 서버는 매년 성능이 개선되는 슈퍼컴퓨터에 가깝다. 오늘의 투자가 곧바로 내일의 구형 장비로 전환될 수 있기에 단순한 물리적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프라 정책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응용 정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법률 분야에서는 리걸테크가 변호사,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의 실제 업무 흐름에 맞게 발전할 필요가 있다. 단순 판례 검색을 넘어 계약서 검토, 소송 전략 수립, 디스커버리 지원 등 전문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면 그 가치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의료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 AI가 환자 맞춤형 치료, 수술 계획 지원, 의무기록 관리 등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문제를 해결할 때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이 개발과 검증 단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허리를 지탱하는 중소기업 제조업도 빼놓을 수 없다. 공정 최적화, 품질 관리, 재고 예측처럼 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영역에 AI가 접목되면 생산성과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숙련 기술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AI가 학습해 활용한다면 AI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정책의 균형이다. 지금까지의 인프라 중심 전략은 기반을 닦는 데 의미가 크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전문가와 숙련 기술자가 AI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확장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리걸테크는 변호사가, 의료 AI는 의사가, 제조업 AI는 현장 기술자가 주도할 때 AI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 속 혁신이 된다.

 

AI 경쟁은 단순히 서버의 크기나 데이터의 양으로만 판가름 나지 않는다. 누가 더 현명하게 활용하고, 현장의 수요에 맞게 응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과거 인터넷 성공이 생활 속 서비스에서 출발했듯 AI도 현장의 수요가 이끌어야 한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급자 중심의 정책에 수요자 중심의 응용 전략을 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AI 혁신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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