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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오디세이] 유능한 사람과 위대한 사람

김정념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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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사람과 위대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유능한 사람을 ‘맡은 일을 잘해내는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반면 위대한 사람은 능력은 다소 부족할지라도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의 사제는 어떠해야 할까. 두말할 것 없이 위대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이 엄중한 부름 앞에 서 계신 분이 바로 김대건 신부다. 그는 한국 최초의 방인(邦人) 사제로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사람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사제의 권위를 내세워 신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6개월의 사목활동 동안 안타깝게 체포돼 옥중에 있으면서도 신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격려했다.

 

또 혹독한 문초 가운데서도 신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질문에는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25년이라는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희생과 헌신으로 한국 교회의 주춧돌이자 사제들의 수호자가 됐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후 2025년 현재, 한국 교회에는 7천명이 넘는 사제가 탄생했다. 필자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제 중 과연 몇이나 ‘위대한 사제’일까. 다른 이들에게 묻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유능한 사제가 되고 싶은가, 위대한 사제가 되고 싶은가.’

 

사제로서 15년 남짓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 입술로는 사랑과 희생을 말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님의 시선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했다. 칭찬과 인정이 사제로서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 착각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마주한다.

 

유능함이 존재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능력이라는 조건으로 공허한 자존감을 채우려 했음을 고백한다. 초라하고 가난한 필자의 빈 마음 속에 김대건 신부의 옥중 서한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진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마음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희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主祐)를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혼 대사(大事)를 경영하라. ...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 하노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한국교회사연구소·1996·384-386)

 

필자를 포함한 이 시대의 사제들은 유능함이 아니라 위대함,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신자들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과 헌신의 삶임을 위대한 목자의 진심 앞에서 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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