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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만리장성 최서쪽 관문 ‘자위관’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 ·前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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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만 남아 있는 만리장성 망루. 작가 제공

 

우리는 간쑤성 하서회랑 황토고원 길을 달렸다. 약 2천200년 전 한나라가 서쪽 변방에 만들었던 ‘하서(河西) 4진’의 도시를 통과했다. 우리가 지나가는 고속도로 옆에 600년 전 만든 만리장성 흔적이 나타났다 없어졌다를 반복한다. 근세 총기류의 발달로 성벽의 용도가 사라져 오랜 세월 방치했기 때문에 흔적만 남아있다.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서역 오아시스의 도시들은 전쟁의 역사를 겹겹이 가졌다. 전쟁의 유산인 만리장성, 봉화대 등은 유명한 관광자원으로 후손들이 돈을 벌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전쟁과 싸움’의 유전자가 정말 있는지 20세기 초반 서구의 진화인류학자들이 오지에 살고 있는 원시 종족을 대상으로 장기간 전쟁 실태를 관찰했다. 문명의 혜택이 가장 적은 뉴기니아 오지 산악지대의 종족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미개한 종족의 전쟁을 조사하는 것이다. 결과는 2, 3년 간격으로 보복 전쟁이 계속 발생함을 기록하고 있다. 식량 부족, 신부 약탈, 부족원 살해 등에 의한 보복과 약육강식 본성이 전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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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하서회랑을 지나는 7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고 푸르렀다. 250여㎞를 달려 낮 12시경 만리장성 최서쪽 관문 자위관(嘉峪關)에 도착했다.

 

관광객을 많이 받기 위해 입장은 2부제로 하고 있다. 주간 입장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30분, 야간 입장은 오후 7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두 종류의 입장권을 팔고 있다. 자위관 입장료는 110위안(2만원)이다.

 

중국 문화유적 입장 절차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주차장이 수㎞ 멀리 외곽에 설치돼 있다. 주차장에서 전동카트, 버스 등를 타고 입구에 도착한다.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한동안 걸어가야 정문이 나온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는 중간에 많은 노점상이 장사를 한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입장권을 끊는 데 30분 이상 걸렸다. 입구에서 5분 이상 카트를 타고 이동한 다음 카트에서 내려 걸어가면 ‘천하제일웅관’ 자위관 현판이 나타난다. 청나라 이후 자위관은 오랫동안 폐허였는데 1987년 중국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재건축한 모습이 오늘의 자위관이다. 성벽 위 폭은 말 다섯 마리가 동시에 다닐 수 있다. 사막에서 유목 기마병이 쳐들어오는 고비사막 서쪽을 향해 총안(銃眼)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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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쪽에 설치한 자위관 기념비. 작가 제공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하이관(山海關)’으로 산둥반도 보하이만 바닷가에 접하고 있다.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의 자위관까지 길이는 3천700㎞, 5천㎞ 등 자료마다 달라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최근 중국 자료는 모든 지선, 심지어 고구려의 요동성 등 포함 2만1천㎞라고 발표했다.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 유적은 전체의 20% 미만이고 50% 이상은 흔적도 없다.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지구의 건축물이 만리장성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고 중국 정부도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한나라 시대부터 만리장성은 한(漢)족과 이(夷)민족의 경계선, 실크로드 상인들의 출입 허가 국경, 죄를 지은 사람을 변방으로 추방하는 경계선이다. 자위관 망루에 서서 멀리 사막에서 말 타고 달려오는 유목민 기마병, 안도의 한숨을 쉬는 실크로드 상인, 구법승 등을 상상해 본다. 자위관 서문 밖은 자갈이 많고 딱딱하고 메마른 사막이 서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현재는 많은 낙타꾼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있다.

 

우리는 만리장성의 자위관을 둘러보고 동쪽과 서쪽의 초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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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장성 제1초소 천연 협곡. 작가 제공

 

자위의 서쪽 끝에 있는 제1초소는 어떻게 생겼는지 의문이 있었는데 궁금증이 풀렸다. 자위관에서 7㎞ 서쪽으로 가면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 ‘제1돈’(제1 초소)이 있다. 1초소 옆에 협곡이 있고 협곡의 깊이는 30여m, 폭은 80m 이상으로 천연의 방어벽이다. 사막에서 말 타고 침략한 기마병들이 협곡을 건너는 장비가 없다면 건너기 어려워 보인다. 이곳 제1초소가 사실상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다.

자위관 동쪽에 ‘헌벽산성’이 설치된 석산이 있다. 최근에 새로 보수한 성벽이 헌벽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 중턱 망루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가파른 성벽을 올라가면서 38도 무더운 날씨와 맞물려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숙소는 자위관 근처에 있는 주취안(酒泉) 시내 호텔이다. 주취안은 한무제가 만든 하서 4진의 하나다. 술샘의 뜻, 주취안 지명의 유래는 2천200년 전 한무제가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곽거병 장군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술을 보낸 것에서 시작한다. 명장 곽거병은 황제의 하사주(下賜酒)를 받고 전투를 함께한 병사 전체와 먹기 위해 고민했다.

 

곽거병은 황제의 하사주를 근처 샘에 부은 다음 모든 장병에게 샘물을 나눠 마시도록 했다. 술 몇 병으로 전체 장병의 사기를 높였다는 고사에서 ‘술샘’, 주취안 지명이 유래했다. 현재도 주취안의 술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저녁에 반주로 ‘酒泉’ 상표의 술을 마셨다. 향이 좋은 술은 아마 치롄산맥의 빙하 녹은 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곽거병 못지않게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광’ 장군이 있다. 이광 장군의 ‘중석몰촉(中石沒鏃)’ 고사성어가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돼 있다. 이광은 활을 잘 쏘는 장군이다. 이광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숲속에 누워 있는 호랑이를 보고 활을 쏴서 맞혔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바위에 화살이 박혀 있다. 이광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화살을 쏘아 보니 화살이 바위에 튕겨나간다. 바위에 화살이 꽂혔다는 중석몰촉은 정신을 집중하면 어려운 일도 이룰 수 있다는 고사성어다. 전쟁이 만들어 낸 술샘과 중석몰촉의 고사를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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