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쓴 위로”…‘석양의 뒷모습’,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 [신간소개]

■ 석양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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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뒷모습’ (문학과사람 제공)

 

등단한 지 50여년이 된 문학계 원로 4인의 합동시집 ‘석양의 뒷모습’이 출간됐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을 시로 관통한 원로 작가들의 자세를 통해 삶의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시집엔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시인의 시 각 20여편이 게재됐다.

 

이들의 시는 오래된 백반집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삶에서 건져올린 담담한 삶의 단어가 행간행간 힘 있게 스며들어 자성과 해학이 담긴 시어로 춤을 춘다.

 

“고놈 참 기특하게도 가을을 물고 와 빈방에 가득 풀어 놓는다/…부뚜막 어둔 자리 잡아 자장가를 불러준다…”. (귀뚜라미, 조병기作), “육체를 빠져나온 상처 난 영혼을 날마다 다리고 꿰매고 수선하는 세탁소 부부는 참 부지런한 시인입니다”. (세탁소 부부, 허형만作), “들녘 곡식들 영글어가는 소리 금빛 노래/… 세월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귀가 밝아진다”. (노년의 귀, 임병호作), “…내 얼굴에는/ 나를 내려다보는 별들이 반짝거리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주름살, 정순영作)

 

조병기(85) 시인은 자연을 배경으로 정겨운 옛 정취가 묻어 나는 작품을 선보였다. 197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동신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한국시학 대상(2021) 등을 수상한 그는 ‘가슴 속에 흐르는 강’ 등의 저서가 있다. 허형만(80) 시인은 세탁소, 지팡이, 택배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목포대 명예교수이기도 한 허 시인은 1973년 ‘월간문학’(시), 1978년 ‘아동문예’(동시)로 등단했으며 제7회 한국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1965년 ‘화홍시단’으로 등단한 수원 출신의 임병호(78)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은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는가 하면 노년의 깨달음으로 얻은 귀와 눈의 밝음을 이야기힌다. 정순영(76) 시인의 작품엔 종교적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들었다. 1974년 ‘풀과 별’로 등단한 그는 ‘시는 꽃인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세종대 석좌교수, 부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임애월 한국시학 편집주간은 시집에 관해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람 냄새가 난다”며 “연필로 꼭꼭 눌러쓴 글씨 같은 순수하고 담백한 위로와 웃음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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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 (현대시학사 제공)

 

‘바람이 수평으로 행복과 어깨동무하고 옵니다/ 행복은 가무락 앞산 너머 남촌 어디서 오는지/ 실없이 부는 듯한 가벼운 농담에게 물어봅니다…’. (‘가벼운 농담’ 中)

 

단순하고 직설적인 표현, 자신의 솔직함을 토대로 작업을 하는 김어진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 처럼’(현대시학사 刊)을 펴냈다. 8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시인은 언어의 물리성에서 자유로워지는 시의 가변성을 이야기한다.

 

시 ‘담쟁이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에선 ‘…내 방황은 부정적인 생각들의 파티에서 비롯된 발걸음/ 나는 내 침으로 당신을 분해시키고 싶을 때가 있는데/ 결핍은 굶주림과 욕망을 유발하는 벽을 종교인 것처럼’이라며 삶에서 겪는 방황을 세련되고 현대적인 시적 언어로 재해석 했다.

 

작품 ‘나무에 다람쥐가 수평 굴뚝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훈장님에게 왜 수평으로 굴뚝을 만들었냐고 묻는다/ 연기를 지상으로 배설하려는 뜻은 속내가 깊단다…’(‘수평 굴뚝’ 中), ‘밭은 고집 센 발로 버티다가 뿌리째 뽑히기도 하더니만/ 서로 육즙을 내주어 섞이며 천국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동치미를 속풀이로 읽는 아침’ 中)처럼 김어진만의 시적 해학이 돋보인다.

 

작품엔 누군가를 위해 연기를 볼 수 없게 배려하는 모습이 담겨있는가 하면, 평생 동치미 국물을 만들고 들이켰을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김순진 문학평론가는 “담쟁이넝쿨은 담장에 붙어사는 식물이지만, 김어진 시인은 담쟁이넝쿨을 담장에 매어두지 않는다”며 “그리하여 자신이 서 있는 모든 위치로부터의 사물, 공간, 관념에 가변성을 염두하고 의미를 확장해나간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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