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AI 교통 시스템

송일찬 말이되는연구소 대표

image

오전 5시30분, 스마트폰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커피 향과 뒤섞인 체념의 공기 속에서 현관문을 나서는 경기도민의 발걸음은 무겁다. 이것은 단순한 출근이 아니다.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빛나야 할 ‘골든타임’을 붉은 후미등의 행렬에 저당 잡히는, 매일 아침 반복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의 현실은 통계로 증명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출퇴근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73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8분)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경기도민은 하루 평균 86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이 수치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40시간, 즉 22일 이상을 도로에서 허비한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본래의 삶에 쓰였다면 누군가에게는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배움의 기회가 됐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체념의 교향곡을 멈추게 할 지휘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 유력한 후보로 인공지능(AI)이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AI 기반 교통 시스템은 단순히 신호를 바꾸고 길을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호등, 버스, 지하철, 개인 차량, 심지어 보행자의 스마트폰까지 도시의 모든 교통 요소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살아 숨 쉬는 ‘디지털 신경망’을 구축하는 것에 가깝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실시간으로 호흡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이미 도시의 혈관인 도로망에 막힘 없는 혈류를 공급하는 ‘인공 심장’을 이식했으며 이를 통해 교통 체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거대한 비전이 경기도의 도로망 위에 펼쳐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매일 출근길이 단 15분만 단축된다면 한 달이면 10시간, 1년이면 120시간에 달한다. 경기도 전체 노동인구 약 70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절약되는 시간은 연간 8억4천만시간에 이른다. 이를 단순히 최저임금(2025년 기준 시급 1만30원)으로 환산하면 약 8조4천억원의 경제적 가치가 발생한다. 실제로 안양시가 최근 시범 운영하는 AI 기반 길 안내 키오스크는 데이터 기반 교통 서비스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더하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신경망을 가동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데이터가 될 때 그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는 먼 미래의 두려움이 아닌 세계 각국이 이미 씨름 중인 현실의 과제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확정된 ‘AI 법안(AI Act)’을 통해 도시 교통망 같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투명성 확보와 인간의 감독 의무를 법제화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지방정부 단위에서 알고리즘 영향평가(AIA)를 의무화하며 시민이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AI 교통 혁신’을 도입하기 이전에 데이터 거버넌스와 디지털 격차 방지 대책을 선행해야 한다. AI가 효율성의 가면을 쓰고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을 소외시키는 ‘디지털 차별’을 막는 것은 기술 도입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안전장치다.

 

결국 AI 교통 시스템의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철학으로 기술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경기도의 선도적 역할은 단순히 남보다 빨리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민의 삶과 안전, 존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의 올바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AI에 내려야 할 궁극적인 명령은 ‘가장 빠른 길’을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길’을 안내해달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AI를 통해 더 빠른 도시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행복한 도시를 원하는가. 경기도의 아침이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