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찬 새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자연에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나무는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계절에 따라 맺는 열매가 다르다. 그래서 제철에 맺는 열매가 가장 맛있다. 봄에는 딸기가 맛있고 요즘은 문경 사과와 제부도 포도가 제맛이다. 시간을 계절로 나누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헬라어는 시간을 ‘크로노스’ 와 ‘카이로스’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으로 순차적, 연속적인 의미로 시계나 달력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쉽게 우리의 일상과 관계된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혹은 기회의 시간을 의미한다. 크로노스가 양적인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다.
며칠 전 4년 전에 결혼한 둘째 아들이 첫딸을 얻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한 아들에게 병원에서 전화가 와 조퇴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 엄마를 반씩 빼닮은 아기 사진을 보내왔다. 며느리는 지난 열 달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심한 입덧과 잠을 설치고 손발이 붓는 고통스럽게 보낸 열 달이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열 달 동안 음식을 가려먹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아이의 출산을 위해 기도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태교하고 무거워지는 몸을 버티며 보낸 결과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우리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아기의 아빠를 분만실에 들어오라고 해 탯줄을 끊게 한다고 한다. 아들에게 아기의 탯줄을 끊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생각이 없었단다. 갑자기 물어 서둘러 대답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첫아이의 탯줄을 자르면서 왜 특별하지 않았겠는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열 달 동안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통해 생명을 공급받다가 이제부턴 아빠가 너의 생명의 보호자가 돼 네가 살아갈 이 세상의 필요를 책임져 줄게. 내가 아빠야.” 그 의미가 아니었을까 했더니 아들이 ‘맞다’고 했다. 이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과정은 열 달의 크로노스의 시간을 거쳐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고 위험하다. 생명이 엄마의 몸에서 분리돼 이 땅에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완성되는 이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순간은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삶의 자리가 흔들릴 때도 그 순간을 기억하며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 기회는 당연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통과 수고가 수반된다. 그 과정을 통해 생명이 탄생하고 인류가 보전된다.
근래 우리나라 젊은이의 사망 원인 최고가 자살이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힘들지 않았던 시대가 어디 있었겠는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다만 그 힘든 삶의 무게를 받아 주고 보듬어 줄 사람이 없으면 크로노스에 혼자 머물다 카이로스에 이르지 못해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음을 명심하라.
성경의 인물 다윗은 아버지가 맡겨준 양치기에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의 양을 지키기 위해 물맷돌을 던져 사자와 곰을 물리쳤다. 또 한가로운 시간에는 수금을 연주하며 음악적 재능을 배양했다.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는 훗날 왕이 돼 어린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물맷돌을 던지던 그 실력은 나중에 적군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키는 능력자가 됐고 그의 음악 실력은 사울왕이 악령에 시달릴 때 찬양을 통해 악령을 물리쳐 줬다. 다윗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게으름과 원망으로 보냈다면 그는 결코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못했고 유대의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을 성실과 인내로 미래를 준비했다가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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