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에 대한 인식 변화 뚜렷...가족 여행이나 개인 일정 존중 성인남녀 1천명 조사 결과, 44% "친척과 만나지 않는다" 20·30대에겐 휴식과 재충전, 휴일...18~29세 ‘여가·자기계발 기회’ 인식 많아져
“음식 준비하느라 연휴 전부터 바쁘고, 당일에는 손님 맞이하고, 먹은 것들 치우느라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잖아요. 내 딸은 편하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명절마다 스트레스 받았는데, 내 자식한테는 물려주기 싫더라고요. 며느리도 오지 말라고 합니다. 이젠 편하게 연휴를 즐기고 싶어요.” 이정숙씨(66·김포)
최근 들어 추석의 풍경과 인식이 바뀌고 있다. 변화의 배경에는 세대가 교체되는 시기와도 맞물려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이제 70대에 접어들며 그들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경우 친척 모임이나 고향에 굳이 자식들을 데려가지 않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또 베이비부머세대들도 자신이 겪었던 명절 증후군이나 힘든 가사 노동을 겪게 하지 않으려는 의식과 마음가짐도 한몫 한다. 이들은 자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각자 시간을 보내도록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MZ세대를 중심으로 관습을 거부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명절마다 양가 방문을 미리 하고, 대신 여행을 택하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흐름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속의 여론에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4%가 이번 추석에 따로 사는 친척을 만나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30대(54%)와 40대(53%)는 절반 이상이 친척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미혼 응답자의 절반(52%)도 같은 선택을 했다.
실제로 추석의 풍경은 다양하다. 과천에 거주하는 정모씨(36)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친척집을 돌며 분주했지만, 돌아가신 뒤로는 우리 가족끼리만 보낸다”며 “앞으로는 연휴에 여행을 가자고 아빠가 선언했다”고 말했다.
분당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박모씨(28)는 “부모님은 큰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오시지만, 집에 남아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쉴 계획”이라며 “부모님도 연휴 만큼은 푹 쉬라고 배려해주셨다”고 전했다.
세대별 추석 인식 차이도 뚜렷하다. 같은 조사에서 60대 이상은 여전히 추석을 ‘가족·친지와의 화합’(42%), ‘조상 추모’(30%)로 받아들이는 반면, 20·30대는 ‘휴식과 재충전’(35%),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휴일’(28%)로 응답했다. 18~29세 응답자 가운데 27%는 추석을 ‘여가·자기계발의 기회’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명절의 탈전통화’ 흐름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제사나 차례 성묘와 같은 의례 문화의 붕괴에서부터 찾았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 굳이 친척들이 모일 이유가 없어진다”며 “전통적인 가족 집단의 규모가 축소되고 명절이 단순한 휴일 개념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젊은 세대(3040세대)를 중심으로 명절에 친척을 만나지 않고 개인적인 여가 시간이나 휴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추석 설 명절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교수는 “가족 친척들이 함께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는 전통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지금 보다 더 그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석도 설날도 휴일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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