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탈북했지만 여전히 낯선 대한민국...명절이지만 쓸쓸한 시간
“진정한 그리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모를 거예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앞두고 만난 북한이탈주민 최은아(가명)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경기도에 사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그가 경기도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경기도에 일자리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 가까운 거리에서 출퇴근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낀 시간을 소중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대학교로 편입하기 전 편도 2시간 30분에 달하는 통학 시간을 견디며 절실히 깨달았다”며 “다른 지역에서 살았던 당시 두 개의 일을 병행하면서 허리를 크게 다치는 등 건강을 잃었던 과거를 계기로 내 건강을 우선순위로 고려하게 됐다”고 전했다.
■ “산소라도 찾아갈 수 있는 게 부럽습니다, 우리는 평생 못 가니까요”
최씨에게 추석은 그리 달가운 명절은 아니다. 그의 기억 속 이북에서 행복하게 보냈던 추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대한민국에서도 이북에서 살던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풍요롭지 못한 추석을 보내 왔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얼굴도 이름도 편하게 드러내며 살 수 없다. 혹시 이북에 아직 남아 있는 가족이 나로 인해 피해를 보면 어쩌나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산다.
그는 “추석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가장 아프고 우울한 날 중 하나일 것”이라며 “이남 사람들이 산소라도 찾아뵐 수 있는 것이 부럽다. 우리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평생 산소조차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추석이 되면 불러주는 그의 주변 지인들을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만약 그런 초대조차 받지 못하는 날에는 혼자 자택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그는 “이러한 추석 생활은 아마 다수의 북한이탈주민분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씨는 북한 고난의 행군 당시 추석의 풍경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고난의 행군이란 지난 1995~2000년 사이 북한에서 일어난 건국 이래 최악의 기근과 경제난을 말한다.
최씨는 “당시 집집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시절이었다. 자기들의 부모님 무덤 앞에서 아이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도, 원래 밭이었던 그의 집 뒷산이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던 순간도 다 기억한다”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북한의 추석은 단 하루, 음력 8월 15일이다. 대한민국의 추석과 날짜 자체는 같다. 그러나 북한에서 추석이 가지는 의미는 크지 않다. 이북의 추석은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친척들과 같이 만든 음식을 나눠먹고 헤어지는 아주 간단한 당일치기 행사에 가깝다.
최씨는 “이북에서 추석에 항상 가족과 시골에서 조금씩 파는 햇쌀을 사서 조상님께 드리는 밥을 지었다. 그래도 잘 사는 집은 떡이나 송편도 만든다”며 “추석 때 제사를 지내는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도 제사를 지내는 걸 보고 같은 민족이 맞긴 맞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죽을 힘 다해 온 한국, 자유는 얻었지만 편견의 벽은 두꺼워
그는 ‘한국행’이라는 인생에서 정말 큰 결단을 내렸지만, 그 과정은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그 과정을 두고 “모르면 용감하게 갈 수 있지만, 알고는 다시는 못 갈 길”이라고 말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같이 산을 넘으면서, 먼저 지쳐 쓰러진 사람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6시간이 넘도록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산을 넘으면서 그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대한민국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 비로소 “이제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러 나라를 거쳐 힘겹게 대한민국에 온 그는 다른 북한이탈주민들처럼 국정원과 하나원에 입소했다. 그는 국정원에 막 입소해 태극기가 무엇인지 배웠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최씨는 “남의 나라 태국의 국기를 왜 알려준다는 건가 의아했지만, 대한민국 국기가 태극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자유를 만끽하며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찜질방’ 체험이었다. 그는 “드라마를 보면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고 계란과 식혜를 먹는 모습이 무척 재밌어 보였다. 이북에 목욕탕은 있어도 찜질방은 없는데, 여기 사람들은 참 재밌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최씨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소통의 문제가 크다고 전했다. 기업 면접에 응시하러 가면 “조선족 사람이냐”, “혹시 외국인이냐”는 질문도 종종 들어야 했고, 본인도 이북 사투리를 교정하려고 애써도 같은 북한이탈주민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 튀어나오는 사투리 때문에 속상할 때도 많았다.
최씨는 말하기 교육을 받을 때, 차라리 하나는 한국말, 다른 하나는 북한말로 말할 수 있게 머리가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북 사투리가 여기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보니, 다른 북한이탈주민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완전히 사투리를 고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며 “지금은 잘 안 하는 것 같지만 이북 사투리를 교정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대한민국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받는 차가운 시선을 의식했다. 그는 “직접 겪었던 일은 아니지만, 주변 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부모와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들도 여전히 있는 것 같다”며 “이북에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랑 나는 서로 조금 다르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돼 있던데, 그럼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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