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가 다 돌봄이에요. 공부도 일도, 제 시간은 없습니다.”
인천에 사는 20대 A씨는 수년 전 부모의 이혼 이후 만성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새벽에 눈을 떠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과 청소, 빨래, 화장실 수발까지 도맡느라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하루 24시간 중 17시간을 어머니를 돌보는데 쓰고있다. A씨의 유일한 휴식 시간은 타 지역에 사는 동생이 찾아오는 주말 몇 시간 뿐이다.
A씨는 “지금은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학업은 커녕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다”며 “언제까지 이 돌봄이 이어질지,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30대 B씨는 5년 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부터 시각 장애와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 간병을 맡고있다. 최근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게 되면서 그 틈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B씨는 “경제적으로 빠듯하니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며 “돌봄과 일을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긴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아픈 가족을 대신 돌보는 가족돌봄청년이 1만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이 같은 청년들은 학업과 일상을 포기한 채 병든 가족의 간병과 생계를 홀로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인천사회서비스원이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및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통계 등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인천지역 13~34세 가족돌봄청소년 및 청년은 약 4만명(5.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아픈 가족의 주 돌봄을 맡는 청년은 약 1만680명(1.4%)이며, 주로 17~26세(74.9%)에 돌봄 비율이 집중됐다.
돌봄이 필요한 가구는 시각·청각·육체적·정신적·지적·언어적 장애나 제약이 6개월 이상 지속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다. 이 같은 이유로 가족을 돌보거나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청년을 가족돌봄청년이라 말한다.
인천사서원이 지난 4~6월 아픈 가족이 있는 13~34세 청년 1천146명을 대상으로 돌봄 상황 및 현황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돌봄 시간은 주당 평균 27시간, 돌봄 기간은 평균 64개월(5.4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 돌봄을 맡은 청년의 돌봄 시간은 주당 39.9시간으로 평균보다 10시간 더 길었다. 생계를 위해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경우에는 개인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가족돌봄청년들은 일상도 포기한 채 장기간 돌봄만 이어가면서 우울감, 수면장애,대인관계 단절 등 정서적 어려움도 심각하다. 응답자 중 ‘친한 친구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9.2%이며, 주 돌봄자의 경우 10명 중 1~2명이 사회적 관계망이 끊긴 상태다.
전문가들은 연령대별 맞춤 지원과 함께 긴급지원, 생활안정, 미래보호 등 단계별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행정복지센터, 학교, 병원 등과 연계한 발굴 및 심리·정서적 지원 역시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최혜정 인천사서원 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소년과․청년들은 돌봄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들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다 지원의 필요성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가 가족돌봄청년들이 앞을 나갈 수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