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식통

[손택수의 문학관 편지] 가을 들판의 연금술

반복되는 일상 속 미묘한 차이들
서서히 금빛으로 차오르는 들녘
시련을 승화시킨 생명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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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노작홍사용 문학관장

영화 ‘패터슨’(짐 자무시 감독)과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의 공통점은 일상이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어떻게 차이를 살아낼 것인가. ‘패터슨’의 버스 기사는 틈틈이 시를 쓰며 일상의 반복을 견디고 ‘퍼펙트 데이즈’의 화장실 청소부는 일과 후의 독서와 점심때면 만나는 공원의 나무를 필름 카메라에 담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취향의 발현을 통해 하루하루의 작은 차이들을 발견한다. 이들 영화는 내 기억 속에선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까지 이어진다. 폴 오스터의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담배 가게 주인 오기는 14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매일 오전 8시에 사진을 찍는다. 소설가 폴이 동일한 사진을 반복해서 찍는 이유를 묻자 오기는 똑같은 장면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라며 찬찬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심드렁하게 앨범을 넘기던 폴은 어느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행인들로 가득 찬 거리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 얼굴은 바로 얼마 전 사망한 그의 아내였다.

 

세 편의 독립영화 중 가장 최근에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크레딧은 ‘코모레비(木漏れ日)’의 뜻이 등장한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 그 햇살은 반복되지만 동일한 것이 아닌 저마다의 차이들로 눈부시다. 최근 내가 만난 ‘코모레비’는 ‘벼’다. 양평으로 귀촌한 이산하 시인이 카톡으로 보내 오는 들판 사진. 8월24일부터 보냈으니 받아본 지 달포 가깝다. 역시 언뜻 보면 변화가 없는 같은 풍경인데 조금씩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그 차이는 피사체와의 간격 그리고 찍는 각도, 대기의 흐름뿐만 아니라 대상을 하염없이 골똘하게 바라보는 지극한 마음에서 온다. 마치 모네의 ‘수련’이나 세잔의 ‘성빅트와르산’ 연작처럼 그야말로 월인천강의 경이들이 들판을 생동케 한다. 9월 들면서 초록이 무성하던 논에 물가자미 알 같은 노란빛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사진을 찍는 시인의 그림자가 먹빛을 풀어내며 어른거리기도 하다가 9월18일 자에는 풍우에 무참하게 쓰러져 누운 들판이 나타났다. 저 벼들을 누가 다 일으켜 세우나. 쓰러진 벼는 주인이 일으키면 약값이 더 들고 인부 쓰면 인건비 부담이 더 커 그냥 내버려 둔다니 신자유주의 농사에 착잡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

 

안타까워하던 며칠 사이 시인은 고 김민기 선생과의 일화를 보내왔다. ‘한라산’ 필화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출소한 뒤 10년의 절필은 배신과 환멸과 악몽의 시간 그 자체였다. 그때 포장마차에서 자주 만나 그저 말없이 술만 따라주던 선배가 김민기다. 어느 날 가객은 특유의 그 저음으로 침묵을 깨며 말한다. ‘그 사람들 너무 미워하지 마. 너무 미워하면 그 사람들같이 돼.’ 이산하의 시 ‘김민기’(인문교양 월간지 ‘유레카’ 10월호)처럼 벼들은 짓밟고 지나간 바람과 싸우는 대신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며 쓰러져 누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쓰러진 채 알곡을 채우고 있다. 고통과 눈물을 통과한 생명의 신비는 참으로 장관이다. 9월 말부터는 너그러운 들판의 온기가 여물어가는 알곡들의 풍요와 함께하고 있다. 원경으로 찍은 사진의 색감이 완연하게 노란색의 밀도를 더해 가더니 근접 촬영한 사진 속에선 금싸라기의 광휘를 찬란하게 뿜어낸다. 시월에 접어들자 들판은 시련과 비애마저 승화시킨 생명의 연금술로 가득 찼다. 한때는 백색 테러로 목발을 짚고 다니기도 했던 그였다. 금서라도 전달하듯 막 번역한 프리모 레비의 시를 사주경계를 하며 건네주던 그였다. 그 많은 곡절 끝에 다다른 풍경이 바로 가을 들녘이다. 그 속에 어제와 다른 바람이, 언뜻 보면 평이하고 지루한 풍경을 매일같이 바꾸고 있는 중이다. 거문고를 부숴 버리는 대신 줄을 고쳐 매는 경장(更張)의 참뜻이 이런 것이 아닐까.

 

문학제며 단풍축제며 방방곡곡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반복되지만 차이를 실현하는 축제는 그냥 반복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도록 한다. 이 가을을 어떻게 지상에 처음 당도한 계절처럼 살아볼 것인가. 가을장마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금빛으로 출렁이는 들판에 연금술의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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