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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런던필, 우아한 손열음…18일 경기아트센터서 선보인 최상의 협연 [공연리뷰]

지휘자·피아니스트,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맞춤 연주
‘장면’이 떠오르는 오케스트라 음색…런던필의 가장 큰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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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 경기아트센터 제공

 

2011년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는 ‘한국의 날’로 불릴 정도로 한국 신예 음악가들의 수상이 줄을 이었다. 성악·바이올린 분야에서 3명의 한국인이 수상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꽃’인 피아노 부문 2위에 당시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 재학 중이던 25세 손열음이 이름을 올렸다.

 

파이널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당시 손열음은 이미 국내외 무대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정상급 피아니스트였지만 좀더 많은 연주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선 차이콥스키 수상이 절실했다. 그런 그녀의 굳은 의지와 절실함이 응집된 연주였기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실연은 지금도 ‘레전드’ 영상으로 꼽힌다.

 

18일 오후 5시 경기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손열음의 터치는 20여년 전 자신을 보듬는 듯한 완숙하고 깊어진 음색이었다. 무대 위에서 언제나 당차고 여유있는 손열음이지만 20대의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능숙하게, 그러면서도 여전히 완벽한 음색과 터치, 연주를 선보였다. 세계 무대를 향해 마지막 도움닫기를 하듯 온 몸으로 피아노 위를 뛰어다니듯한 모습도, 폭발하는 에너지에 집중하기 보단 쉼 없이 전환되는 곡의 흐름에 올라탄 수를 읽는 고수처럼 변모했다. 2021년부터 런던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에드워드 가드너와 손열음은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서로를 배려하며 음량과 템포, 음색을 조절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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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 경기아트센터 제공

 

런던필은 첫 곡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에서 보여주며 드라마틱한 시작을 알렸던 응집력과 음색은 잠시 넣어둔 채 협연자와 청중을 우선 순위에 둔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아껴둔 에너지는 마침내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 단단하고 강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차이콥스키 본인도 “이 성취는 저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작곡가 스스로 만족감을 드러낸 이 곡은 현존하는 교향곡 중 걸작으로 손꼽히며 연주회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가드너와 런던필은 자칫 너무 슬프거나 격렬해서 감정적으로 지칠 수 있는 이 곡에 비장함을 넣어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동력을 선사했다. 1부 서곡과 협주곡에서 못 다한 서사를 쏟아내듯 거침없이 그러나 섬세하게 관객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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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필하모닉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와 피아니스트 손열음. 조혜정기자

 

특히 첼로, 더블베이스 등 낮은 음역대의 현파트는 연주의 드라마틱함을 조종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탕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으니 바이올린 파트는 물론 목관·금관도 제 소리를 마음 놓고 자신 있게 뽑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엔딩 이후 수차례 이어진 커튼콜은 무대 위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느낀 그 어떤 감동에 서로 환호하는 시간이었다. 앵콜곡으로 연주한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갖는 여러 감정 중 비장함, 그 하나 만으로 열기를 잠재웠다. 런던필의 연주를 듣는 내내 어떤 장면, 그림이 떠오르는 건 그들이 ‘반지의 제왕’ ‘호빗: 뜻밖의 여정’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경음악 녹음에 참여한 단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리 자체만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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