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호 정치부 차장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 납치·감금 사건은 국제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했다. 구직을 빌미로 유인된 청년들이 불법 온라인 범죄조직에 의해 갇히고 폭력과 협박 속에서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싸늘하게 죽음을 맞이한 청년의 사연은 분노를 자아냈다.
이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은 단순한 피해의 비극만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작동해야 할 국가 시스템의 본모습이었다. 국제사회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공관의 인력과 장비, 본국과의 정보 전달망에 대한 신속한 연결이 생사를 가르는 변수였다.
9월에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미 이민당국의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가 발생했다. ‘동맹국’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우리는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300여명의 우리 국민이 타국에서 수갑을 찬 채 구금시설에 억류된 상황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의 무게는 여기서 여실히 드러났다. 어느 나라에서나 완벽히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굳은 신뢰가 깨진 것이다. 우리는 국민 보호라는 외교의 본질을 얼마만큼 실천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가 3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대한민국에 모인다. APEC 정상회의 중 여러 정상회담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국제적 영향력과 외교력 증대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번영을 위한 자리인 만큼 해당 지역을 시작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제 여권의 색깔보다 그 안에 담긴 국가의 신뢰를 생각할 때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국인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외교는 더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어디서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국적’이 진짜 선진국의 자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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