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⑨-권민경]
권민경 시의 중핵을 이루는 고통은 대개 내상(內傷)과 관련된다. 첫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문학동네, 2018)에 반복되는 ‘물혹’, ‘종양’, ‘난소암’, ‘갑상선’ 등의 시어는 우리의 몸이 노화와 병듦의 생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적출과 봉합이라는 인공적 변화에 노출된 대상임을 암시한다. 고통 앞에 무력한 몸, 그 절대적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중의 고통은 생명이라면 필연적으로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집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민음사, 2022)에서 권민경은 “내가 읽은 것들에 대해 기록하면 나를 따라 질질 발을 끄는 검은 자음, 모음, 하나하나 나였고 신파였으며 잘린 가지, 뺏긴 목소리, 잘린 갑상선, 난소, 그리고 기타 등등”(‘겨울나무’)이라 말한다. 자신의 고통을 ‘신파’로 지칭한다는 것.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누구나 한 번쯤 겪을법한 고통이 깊은 슬픔으로 내부를 베어내는 상실. 이 공동(共同/空同)의 감각 안에서 고환을 가진 아버지와 난소를 가진 ‘나’, 질과 자궁을 공유하는 개와 ‘나’, 그리고 모든 이종(異種)들은 함께 아플 수 있다.
권민경이 형상화하는 몸의 찢김과 통증은 언뜻 치유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망가지고 배제되어 있는 내부로부터 온다. 그러한 점에서 세 번째 시집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문학동네, 2024)의 ‘자연’ 연작에 등장하는 ‘신도시’는 파괴와 재건이 순환하는 몸을 닮아있다. 이 시집의 ‘신도시’, 즉 고양과 일산은 시인의 실제 삶과 기억이 고스란히 누적된 장소다. 하지만 “무덤을 뭉개고 세월 위에 아파트를 짓는”(‘자연―백마’) 개발은 이곳에 뿌리내린 생명들을 “신도시를 만들 때 부록처럼 조경당”(‘자연―나무의 무쓸모’)하는 고통에 몰아넣는다.
다른 시 ‘종일’에는 일산신도시 건설계획 추진과 맞물려 1990년 9월 고양 일대에 발생한 초유의 홍수 사태가 언급된다. 시인은 당시 홍수로 인해 “영원히 아홉 살에 멈춰 있는” 친구 ‘종일’의 죽음을 기억하며 “나는 없는 종일을 영원히 있게 하려/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번듯해진 신도시,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실의 아픔을 증언하고자 시인은 허물어짐을 감내하면서도 말을 빚는다.
현재는 ‘만성적 상실’의 시대다. 기존의 것이 사라졌음을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새로운 것이 공백을 채우는 세계, 무언가를 잘라냄으로써 살아가는 방식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권민경의 언어는 현재 우리가 ‘치유’라고 부르는 삶의 방식에 물음을 제기한다. 잘려나간 줄기 위에 싹을 틔우는 “식물성 힘”(‘자연―복수’)의 강인함을 믿으며, 시인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임상을 섬세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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