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갑보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A는 민사소송에서 재판부에 금융거래정보 촉탁신청을 해 B회사와 B회사의 임원인 C의 계좌거래내역을 취득했다. 그 후 A는 C를 상대로 한 사기미수 형사고소 사건과 C와 벌인 다른 민사소송에서 위와 같이 취득한 B회사와 C의 계좌거래내역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였다. A의 행위는 문제가 없을까.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은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가 명의인의 서면상의 요구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그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다만 법원의 제출명령 등이 있을 경우 그 사용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거래정보 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거래정보 등을 알게 된 자는 그 거래정보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그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할 수 없다. 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위 사례에서 A는 민사소송에서 B회사와 C의 계좌거래내역을 취득하였으므로 이를 그 민사소송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A는 C를 상대로 한 형사고소 사건과 C와 벌인 다른 민사소송에서 위 계좌거래내역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따라서 A는 금융실명법을 위반하였으므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검사는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A를 기소했다.
다만 위 금융실명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범죄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위해 금융거래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행위, 고소·고발 또는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의 소명이나 방어권의 행사를 위해 금융거래정보가 포함된 증거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형법 제20조(정당행위)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 사안의 A는 이러한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원심은 A의 행위를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유죄)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2025년 9월4일 선고 2022도16512 판결)은 이와 관련해 정당행위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해당 금융거래정보의 수집·보유·제출 경위·목적, 정보를 제출한 상대방, 제출행위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제출 여부, 정보의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 가능성 및 조치 여부, 제출한 정보의 내용, 성질(민감정보 여부 등) 및 양, 침해되는 정보주체의 법익 내용, 성질 및 침해 정도, 정보를 제출할 다른 수단이나 방식의 존재 여부 등 개별 사안에서 나타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
대법원은 이러한 일반론의 바탕 위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심리한 끝에 A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무죄)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했다. 이처럼 비록 이 사건에서 A는 정당행위가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타인의 금융거래정보를 함부로 사용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매우 위험한 행위임은 반드시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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