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묻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중대재해 감축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위험의 외주화’로 지적받는 원청기업 경영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주목받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안동지원 제2형사단독 이승운 부장판사는 지난 4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영민 전 영풍 대표이사와 배상윤 전 석포제련소장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영풍 법인에는 벌금 2억원, 석포전력㈜에는 벌금 5천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들 모두의 유죄를 인정하며 “법령상 안전보건 조직을 갖추고 유해물질 점검을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6일 영풍 석포제련소 내 밀폐 설비에서 유해물질 누출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협력업체 근로자 4명이 맹독성 비소 가스에 노출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고로 60대 근로자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독 증세를 보였다. 사망한 노동자의 체내에서는 치사량(0.3ppm)의 6배가 넘는 비소(2ppm)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고 이전부터 방독마스크 미착용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는데도 방진마스크만 지급했다”며 “대표이사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과 사고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정 수준의 예방 노력을 기울인 점, 위험성을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작업이 복합된 점, 사고 이후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2008년 이후에도 근로자 비소 중독 사고가 수차례 발생한 바 있다. 검찰은 원청의 안전관리 소홀로 인명피해가 반복된다고 보고 박 전 대표와 배 전 소장을 구속기소했다.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업 대표가 구속기소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앞서 지난 9월에는 23명의 노동자가 숨진 아리셀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참사와 관련해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당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예고된 인재”라고 질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기업 책임 강화를 강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10월부터 안전 의무 위반이 적발되면 시정 명령 없이 즉시 사법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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