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지급정지 했다가…리딩방 사기 피해자, 가해자 둔갑 [집중취재]

주식·코인리딩방 등 투자사기 피해자, 피해 복구 신청했다가 허위신고자로 기소
대법, 보이스피싱과 동일한 보호 대상 판례 냈지만 수사 관행 달라지지 않아

AI 일러스트. 경기일보 AI 이미지
AI 일러스트. 경기일보 AI 이미지

 

#1. A씨는 공모주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수해 200%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중개사의 말에 속아 1억원을 투자했으나 상장 후 배정받은 주식은 단 1주에 불과했다. 뒤늦게 사기임을 깨닫고 지급정지를 시도했으나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해야만 가능하다는 안내를 들었다. 돈을 되찾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지급정지를 신청한 A씨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2. B씨는 유튜브 광고를 보고 코인 리딩방에 투자한 뒤 수익금을 찾으려다 계정 업그레이드와 세금 납부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추가 납부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는 수 없이 요구한 금액을 입금했으나 연락이 끊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계좌 지급정지는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급한 마음에 은행에 직접 지급정지를 신청한 B씨는 피의자가 됐다.

 

투자 사기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 복구를 위해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했다가 오히려 허위 신고자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행법상 보이스피싱 범죄에 한해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규정된 조항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투자 리딩방 사기 사건 피해자 역시 보이스피싱과 동일한 보호 대상으로 판단하는 판례를 냈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같은 판례를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를 오히려 피의자로 수사하는 실정이다.

 

최근 투자 리딩방 등 투자 사기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가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한 투자 리딩방 사기 사건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정했다. 선물 투자 리딩 범죄 조직원에게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적용된다고 인정하면서 투자 리딩방 피해자들 역시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지급정지 및 피해구제 대상이 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 취지다.

 

이후 하급심에서도 리딩방이나 가상자산 사기를 보이스피싱으로 인정해 지급정지를 신청했다가 기소된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례가 속속 나왔다.

 

그럼에도 현장 수사와 기소 관행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산경찰청은 최근까지도 주식 리딩방 피해자들이 허위 신고로 지급정지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200여명을 수사하고 있으며 경기지역 피해자도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검찰에 송치돼 약식기소로 200만~3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에 대해서도 참조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해당 판례와 100% 일치하지 않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민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는 “리딩방 사기나 가상자산 사기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은 사실에 기초한 구제 행위일 뿐 허위 신고가 아니다”라며 “대법원이 정당한 권리 행사로 판시했음에도 이들을 다시 허위 신고자로 몰아 처벌하는 것은 법의 목적에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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