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감사의 계절 11월

안동찬 새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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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 놓기 전 아직은 여유를 부릴 수 있고 마지막 한 달을 준비하는 달이 11월이다. 유난히 길고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지나가고 비가 잦았던 가을도 어느새 끝자락에 서 있다.

 

집 앞의 나무는 여름의 푸른 옷을 벗고 붉은빛으로 물들었다가 이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세찬 바람에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이 겉으로는 쓸쓸해 보이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푸른 잎에 담았던 생명을 땅속 깊이 나무의 뿌리로 내려보내 추운 겨울에도 나무의 생명을 지키려는 고귀한 결단이 낙엽이다. 11월은 그렇게 ‘비움’ 속에서 새로운 ‘채움’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목회자인 필자에게 11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교회는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며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고백한다.

 

농부가 땅에 씨앗을 심고 열매를 거두기까지의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을 흘리는가, 그리고 가을 추수의 마당에서 돌아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하듯 우리의 일상과 가정, 직장 속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축복을 기억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이 추수감사절이다.

 

1621년 미국 플리머스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서 첫 수확을 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들을 도운 원주민들과 함께 축제를 열었다. 그 감사는 풍요의 열매만이 아니라 이웃의 도움과 함께 이겨낸 절망 속에서 드린 생명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감사는 형편이 좋아서 하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선택이자 태도다.

 

우리의 삶이 농경사회가 아니더라도 삶에는 여전히 ‘수확’이 있다. 직장에서의 성과, 가정의 평안, 자녀의 성장, 그리고 일상의 숨결까지 모두 우리의 노력 이상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단지 한 해의 마무리가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은혜’임을 고백하는 기회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그래서 11월의 감사는 더욱 소중하다. 감사는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관계의 거리를 좁힌다.

 

경험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감사는 행복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다.” 감사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지름길이며 행복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감사할 때 불평은 사라지고 감사할 때 마음은 따뜻해진다.

 

11월, 감사로 살아내는 시간 단풍이 지고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듯 우리도 감사로 마음을 다잡는 11월을 살았으면 좋겠다. 감사는 잎을 버림으로 뿌리를 지키는 힘이며 잃어버린 관계를 되살리는 생명의 통로다. 11월, 우리는 무엇을 거뒀고 또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감사의 계절에 마음을 낮추고 서로의 삶을 향해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나누기 바란다. 11월은 다시 감사를 시작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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