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10·15 부동산 대책의 딜레마

10·15 대책 ‘부동산 불로소득 시대 종언’
시장 생태계 순환 멈춘 ‘돈맥경화’ 야기
정책 불신의 병리 해소·신뢰 설계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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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찬 말이되는연구소 대표

광풍(狂風)이 지나간 자리에 혹한(酷寒)이 찾아왔다. ‘영끌’과 ‘패닉바잉’의 함성이 뒤섞이던 부동산 시장은 이제 거래가 실종된 침묵의 계곡으로 변했다. 이재명 정부가 10·15대책을 통해 선포한 ‘부동산 불로소득 시대의 종언’은 자산 불평등에 신음하는 시대가 기다려 온 정의로운 선언이었다. 지난 10년간 노동의 가치는 조롱당했고 아파트 가격은 평범한 시민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그 비정상적 열병을 끊으려는 시도, 그 방향 자체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투기적 관성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곪아 터진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에 가깝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투기 수요를 박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시장 생태계의 순환을 멈추게 했다.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혈류까지 막아 버린 셈이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저가 단지에서는 퇴로를 잃은 매도자와 진입로를 찾지 못한 매수자의 탄식이 메아리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대책 이후 약 75%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돈맥경화다.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은 9월 대비 40% 이상 급감했고 승인 거절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출이라는 마지막 사다리가 걷어차이자 청년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은 신기루가 됐다. 평범한 실수요자마저 잠재적 투기꾼으로 오인받는 이 풍경은 정책이 지향한 ‘안정’이 아니라 모든 흐름이 멈춰버린 ‘정지(停止)’에 더 가깝다.

 

규제의 강도보다 위험한 것은 ‘정책의 요동’이다 문제의 근원은 시장에 각인된 ‘학습된 불신’이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사는 ‘규제 강화→시장 냉각→규제 완화→시장 과열’의 채찍 효과(Whiplash)로 점철돼 왔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시장 참여자들은 다음 정권의 정책 변화를 예측하며 움직인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싸워야 할 적은 투기세력의 탐욕이 아니라 이처럼 깊게 내재한 ‘정책 불신의 병리’ 그 자체다.

 

정부가 제공해야 할 최고의 공공재는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가 시장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규칙의 언어는 만들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시간표’다. 정권의 임기를 뛰어넘는 ‘부동산 정책 5개년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 약속을 사회적 계약으로 지켜내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이 미래를 설계할 최소한의 좌표를 확보할 때 비로소 흩어진 신뢰가 복원될 것이다.

 

10·15대책이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섬세한 감각의 정책이다. 모든 연주자에게 똑같은 악보를 강요하는 지휘자는 불협화음만 만든다. 투기적 수요에는 단호한 잣대를 들이대되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와 장기 무주택 서민에게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숨통을 틔워주는 ‘핀셋형 안전장치’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이하, 주택가격 6억원 이하의 생애최초 구입자에게 LTV 한도를 기존보다 10~20%포인트 상향하고 정책모기지와 연계해 초기 3년간 고정금리, 전매제한을 조건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투기를 막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평범한 시민의 희망까지 막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나침반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나침반만으로는 부족하다. 속도계와 수심계를 함께 살피는 노련한 항해술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신뢰의 설계다. 정부가 시장에 제공할 최고의 공공재는 흔들리지 않는 예측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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