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가득한 여든 한 살의 시인 김훈동 “세상에 노인은 없죠” [저자와의 만남]

자연과 이웃, 정겨운 시어 넘쳐나는 시집 ‘아람깨’로 2025 경기도문학상 대상 수상
“아직 익어가는 중, 아람깨가 톡 하고 열릴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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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문학인의집’에서 만난 김훈동 작가가 자신의 신작 시집 ‘아람깨’를 들고 서 있다. 이나경기자

 

“이 세상에 ‘노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인’이냐, ‘청춘’이냐는 결국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익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누구에게서라도 배울 점을 찾고 늘 호기심을 갖고 젊은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니 저도 아람깨처럼 어느 순간 ‘톡’ 하고 벌어졌더라고요.”

 

여든 한 살의 시인 김훈동은 자신의 다섯 번째 시집 ‘아람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마지막 시집일지 모른다”고 덧붙였지만,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 단단했고 표정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가 등단 60주년을 맞은 해에 펴낸 이 시집은 최근 제34회 경기도문학상 대상(시 부문)의 영예를 안았다.

 

김 작가는 수원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생을 지역 예술·문화와 함께 해 온 지역 문화계의 ‘산 증인’이다. 농촌 현실을 바꾸고자 서울대 농대를 택했고, 농협 개혁의 중심에서 뛰어들고 농협대 교수, 경기농협본부장을 역임한 후 대한적십자가경기도지사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원로로 활동했다. 동시에 수원문인협회장, 12년간의 수원예총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수필문학작가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자랑스러운 경기인대상’ 등을 받았다. 현재는 수원문화재단 이사로 여전히 지역사회에 헌신한다. 그의 말처럼 “이 지역에서 빚만큼이라도 갚고 싶어 살아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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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문학인의집’에서 만난 김훈동 작가가 자신의 신작 시집 ‘아람깨’를 들고 서 있다. 이나경기자

 

김훈동이 처음 등단한 건 1965년, 대학생 시절이다. 이후 수필과 아동문학으로도 등단하며 장르를 넘나들었지만, 50년이 지나 다시 시로 재등단한 것은 “삶이 나를 원래 자리로 데려온 일”이라고 그는 표현한다.

 

“괴로울 때는 시가 위로가 돼요. 힘들 땐 시를 읽고, 때로는 시를 쓰고… 결국 시가 나의 반려자였죠.”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작품 ‘아람깨’에도 이러한 생각이 녹아나 있다. ‘묵언으로 서 있다 우수수 바람에 꼬투리 열고/저 자잘한 씨 쏟아내고 마는 까만음자리표/…/ 털리기 전에 미련 없이 스스로 토해 낸다/ 아등바등하지 않는 비움의 미덕이다’(‘아람깨’ 中)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로 된 상태. 시인은 “아람이 스스로 벌어지는 순간”에서 왔다며 “나는 이제서야 조금 익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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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문학인의집’ 인근의 한 카페에서 김훈동 작가가 경기일보와 인터뷰에 나섰다. 이나경기자

 

김훈동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과 농경의 이미지, 그리고 ‘향토성’이 깊게 배어 있다. 그 뿌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있다. 한국이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시절, 그는 “한 끼가 무서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생의 결은 자연스레 그의 시가 되고 작품의 기둥이 됐다. 자연을 관찰하며 배운 인내, 농민의 손을 보며 느낀 존엄, 지역 향토성에 대한 자부심 이 모든 것이 김훈동의 시어를 만들었다. ‘아람깨’ 속 ‘이웃과 등지지 말고 살자’는 시에서, 담장 너머 주고받는 대봉과 모과, 오래된 어머니의 말이 따뜻하게 흐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훈동은 스스로를 “수원 토박이 원로”라고 말한다. 그에게 수원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문학적 토양이며 평생의 과제였다. 예총 회장 시절 아이파크미술관(현 수원시립미술관) 건립을 주도하고, 지역 예술단체의 기반을 세우는 데 앞장선 것도 “수원이 수원다운 예술을 꽃피워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지역의 냄새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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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문학인의집’ 인근의 한 카페에서 김훈동 작가가 자신의 신작 ‘아람깨’의 작품 일부를 낭송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그는 지금도 매일 바쁘다. 전국의 잡지 창간호를 모아 수원박물관에 기증했고, 세계 곳곳의 병따개를 수집해 전시했다. 새로 지은 경기도서관이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달려가 책 시스템을 점검하고, 반납일을 맞춰 일부러 다시 찾아간다.

 

최근엔 수원의 지명·공간·사람들을 짧은 시로 풀어내는 ‘수원을 노래하는 연작’을 시작했다. 스타필드, 팔달사, 나혜석의 흔적, 오래된 골목 등이 그가 사랑한 도시, 수원을 시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람이 태어난 자리, 살아온 자리가 결국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산수를 넘긴 시인은 스스로 마지막 시집이라 말하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익어가는 중이다. 그 젊음의 방식으로 지역 예술계에 마지막까지 씨앗을 뿌리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익어가는 중입니다. 아람깨가 톡 하고 열릴 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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