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식통

[삶, 오디세이] 업에서 법으로

법장스님 불암사 교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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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인간의 삶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업’이다. ‘업’의 원어인 ‘Karma’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에 있던 통념이다. 일반적으로 ‘행위(行爲)’라고 번역한다. 즉, 업은 우리의 행위(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인도에서는 업이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의 집안, 성별, 이름 등에 의해 모든 것이 이미 결정돼 있다고 여겼다. 이렇게 업을 차별적이고 부정적으로 사용해 만든 것이 ‘카스트’라는 신분제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카스트 제도는 한 사람의 ‘태어남(출생신분)’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지고 그 태어남은 전생의 업의 결과이기에 이번 생에도 그 업대로 이어진 삶을 살아야 하고 결국 다음 생에도 이번 생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여긴 차별적 신분제도다. 지금 사람들이 이런 카스트에 대해 들으면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불평등한 제도라고 여길 것이다. 그럼 인도인은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우리보다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다. 바로 카스트의 불평등이 불평등인지 느낄 수 없고 사회 전반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고 여기게 해서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지지만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점차 그 불평등한 제도 속으로 자신을 서서히 밀어넣어 끝내 그 제도의 일원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2천600년 전 태어난 태자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청년은 그렇게 고정돼 있고 결정된 삶과 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출가해 수행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맨 처음 한 것이 바로 사람은 ‘태어남’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에 의해 삶이 만들어진다고 설하였고 그 가르침이 훗날 불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고정적이고 정해진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모든 것은 변하고 노쇠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삶과 힘을 갈구하지만 그런 고민의 순간에도 결국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 있는 모든 시간 우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살아감이라는 것이 무엇을 하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고 놓치는 순간이 많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한순간도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2025년과 맞이할 수밖에 없는 2026년의 사이를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한 찰나도 허투루 놓치는 시간 없이 모든 일상을 업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법으로 행위하며 이끌고 가는 시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업이라 해도 지금은 눈앞에 펼쳐진 법의 자리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내일의 삶이 나타날 것이다. 살아있기에 살아가도록 업이 아닌 법으로 지금을 행위하여 2025년 연말의 오늘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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