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용기

 양휘모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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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늦은 저녁 회사 동료들과 함께 출입처 약속을 마치고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급히 차량에 타 시동을 걸었다.

 

잔고장이 많았던 차량이었지만 이날 따라 유독 말썽이었다. 1시간가량 시동이 안 걸려 손발이 얼어가며 추위에 떨다 결국 폐차를 결정, 차량 렌트를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매달 지불하는 렌트 비용이 아까워 최근 차량 구매를 위해 발품을 팔던 중 렌터카 내부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눈에 띄었다.

 

문득 “내부도 찍히나”라는 생각과 함께 1년 365일 동안 차 안에서 행한 지극히 사적인 언행들이 다 기록돼 있는, 말 그대로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이 담긴 블랙박스라고 판단되자 거부감이 들었다. 설정 확인을 해보니 내부 촬영 기능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는 렌터카 관계자에게 대단치도 않은 평범한 기자의 일상이 담겼을 수도 있는 블랙박스를 제출하는 일에도 ‘움찔’하는데 하물며 타인에게 어필하는 자신의 성향과 가치에 관한 정보는 어떨까.

 

대인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MBTI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신을 알리는 또 다른 명함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료계의 판단 등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수혈을 위해 도입된 ABO식 혈액형 분류. 이와 달리 본인이 직접 테스트를 거쳐 스스로 완성한 MBTI 검사 결과에 진심으로 자기객관화가 작동했을지 의문이 든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인정받지 못한 그날의 불쾌한 경험과 감정이 일기장에서조차 외면받는 이유는 상처받은 지금의 내가 훗날 일기장을 볼 미래의 내가 아픈 기억을 상기해 고통받길 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기록을 업으로 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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