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우리는 모두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사실 차별 속에서 일상을 경험한다. 여성이어서, 장애인이어서, 성소수자여서, 민족이 달라서, 노동자여서, 키가 커서, 작아서, 살이 쪄서, 너무 말라서…. 모두 다른 조건 때문에 차별받지만 우리는 이른바 ‘정상’이 아니어서 차별받는다. 이 모든 부당한 차별을 모두가 견디고 살고 어쩌면 익숙해진다.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 속에서 일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광장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평등수칙의 이름으로 든든한 성벽을 제공하는 안전하고 평등한, 하지만 닫힌 공간이었다. 광장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었다. 광장에서 본 세상은 금방이라도 모두가 해방될 듯한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우린 자유로웠고,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고, 모든 게 다 잘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탄핵 이후 광장이 쪼그라들고 그 밖에서 다시 마주한 세상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광장의 결과로 탄생한 대통령은 광장의 요구보다는 자본의 요구와 ‘협치’를 중요시 여기며 중도보수 대통령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런 대통령이 대표하는 사회의 일터와 학교에서, 그리고 더 많은 세상과 부딪치는 공간은 마치 광장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거기서 뼈가 시리도록 느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한 게 아니었다. 평등을 겪고 나서는 더욱 확실해졌다. 우리는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평등수칙이라는 일상에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던 것이다.
평등수칙이라는 너무도 달콤하고 꿈같은 일상에서 벗어난 우리는 또다시 비일상의 억압 속에 내던져졌다. 윤석열이 1년 전 계엄령을 내리기 전에도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계엄 상태였던 것이다. 민주당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외쳤지만 애초에 차별받고 혐오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일상이란 없었다.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건 절벽에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 일상은 우리가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연대와 투쟁의 무기로 낡은 세상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일상을 쟁취해야 한다. 복귀할 일상을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가 돌아갈 일상은 차별금지법이 있는 일상, 동성혼이 법제화된 일상, 혐오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일상, 비동의강간죄가 있는 일상, 법적 성별 자기 기입제가 있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 ‘일상’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차별철폐대행진이란 결국 이 세상을 철폐하기 위한 행진이 돼야 한다. 우린 차별을 넘기 위해 이 세상을 넘어야 한다. 광장에서 넘쳐 흐른 평등의 파도로 세상을 뒤덮어 지우기 위해, 혐오의 먹물로 점철된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해. 이재명이 만든 개혁의 허상을 지워내고, 이준석이 만든 새로운 혐오를 쫓아내고, 윤석열이 만들어낸 노골적인 억압의 반동으로 우리의 권리를 찾아 나가며.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차별을 철폐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행진이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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