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젬마 예술감독의 ‘그림엄마’, 2026년 새해맞이 붉은 말 특별전 개최 내달까지 양평 두물머리서…해외 발달장애 아티스트 등 총 88명 작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의미 없이 소리를 반복하는 행동 등을 ‘상동행동’이라 일컫는다. 비장애의 세상에선 무의미하거나 이상한 행동으로 비친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느리고 더딘 속도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행위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무의미해 보이던 움직임은 유의미한 행위가 된다.
장윤경씨는 아들 양예준 작가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던 그 해를 생생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시키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지만, 예준군은 유달리 부작용이 심했다. 심각한 부작용에 약물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둘이서 ‘뭐라고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색연필을 꺼내들었다. 흔드는 행동이 잦았던 예준군의 손에 색연필을 쥐어주며 변화가 시작됐다.
예준군의 그림은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 아트페어 런던 2022’을 기념하며 개최된 학생미술 공모전에서 비장애 학생 등 1천200여명의 경쟁을 뚫고 블라인드 심사의 수상자로 선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색연필을 도구로 선택한 아이는 거의 없었다. 빠르게 그릴 수 있는 아크릴 물감과 비교해 억겁의 시간과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씨는 그때 알았다. 무한히 반복하면 낙숫물도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무의미해보이던 예준이의 행동에 가치가 생기고 의미가 생겼습니다.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예술 안에선 어떤 장애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1일부터 양평 ‘러쉬빌리지 in 두물머리’에선 예준군을 비롯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2026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해 말(馬)을 주제로 한 ‘2026년 새해맞이 붉은 말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발달장애 예술가 88명 등이 그린 총 128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또한 국립국어원, 고려대병원 등 전국 26곳 기관에 영상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고 기쁨을 전하며 나눔을 펼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엔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들의 어머니 작가 2명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의미를 더했다. 이동민 작가는 ‘사랑해, 붉은 말아’를 그려 엄마 윤신노씨에게 선물했고, 윤씨는 자녀의 작품을 한땀한땀 수놓아 ‘사랑해, 동민아’ 작품을 완성했다. 윤씨는 “늘 동민이 마음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붉은 말 전시회를 통해 저와 동민이가 서로 조금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중심엔 한젬마 예술감독이 창단한 네이버 커뮤니티 ‘그림 엄마’가 있다. ‘그림 엄마’라는 동명의 창의미술교육책을 펴내기도 한 한 감독은 2003년 청주공예비엔날레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청각 장애인이던 고 김기창 화백의 예술세계에 매료됐다. 그는 청각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와 연을 맺고, 이를 계기고 발달장애 커뮤니티와도 접촉하게 되며 장애인 창작 아트페어 대회장도 맡게 됐다. 단순한 나눔, 봉사의 시선이 아니었다. 예술적 가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의 작품에 매료돼 이를 세상에 알리던 그는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을 때, 이들이 한 데 모여 스스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그림엄마’를 만들었다. 발달장애 예술가 및 작가 지망생과 이들의 가족들이 모여 서로 품앗이를 하며 정보를 나누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림엄마’는 2022년부터 매해 그 해 띠를 주제로 전국의 발달장애 작가들과 전시를 개최하며 2023년부터는 ‘러쉬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러쉬와 인연을 맺으며 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장 씨는 “이 곳은 익명 카페이긴 하지만, 90%이상이 실명으로 활동한다”며 “‘우리, 여기에서만큼이라도 당당해집시다’라고 이야기하며 자녀인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이름과 이들의 부모들의 이름은 모두가 당당히 실명으로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예술에 편견은 없고, 장애도 없다는 말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림을 들여다보면 작품과 이를 지은 창작자의 이름만이 보이게 된다. 힘찬 생명력과 에너지, 역동성을 상징하는 작품들은 그리는 이뿐만 아니라 보는 이에게까지 새해의 시간을 남다르게 전하고 있었다. 전시는 다음 달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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