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수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오랫동안 안보와 보훈의 현장에서 교육을 해왔다. 전쟁의 그 무게와 책임을 어떻게 시민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판단으로 자신을 지키고 결국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고, 쓰고, 조용히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점점 분명해진 질문이 있다. 기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시대에 인간의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전쟁을 바라보며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의 전쟁사는 언제나 도구의 진화와 함께 잔혹해졌다. 돌과 창에서 화약으로, 다시 핵무기로 이어진 파괴의 역사는 결국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지금, 전쟁은 인공지능이라는 차가운 두뇌를 장착한 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날의 전장은 더 이상 병사들의 함성이나 포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표적을 고르고, 전기를 끊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테크노 전장’의 실험실처럼 보인다. 전쟁은 이제 물리적 충돌을 넘어 시스템과 인식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점령하고 국기를 꽂는 일이었다면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전쟁의 목표는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다. 가장 먼저 공격받는 것은 문명의 혈관인 에너지 인프라다. 인공지능은 어디를 끊어야 가장 넓은 지역이 암흑에 빠지는지, 어떤 순서로 차단해야 복구 의지를 꺾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는 전기가 끊기고 난방이 멈춘다. 도시는 서서히 얼어붙는다.
더 서늘한 장면은 인간의 정신을 향한 공격이다. 딥페이크로 조작된 지도자의 영상과 AI 봇이 퍼뜨리는 거짓 정보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시민의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는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인지 전쟁이다. 총성이 울리기 전 전선은 이미 우리의 스마트폰 화면과 생각 속으로 옮겨 왔다.
전장에서의 살상 방식 또한 점점 기계의 얼굴을 닮아간다. AI 드론은 은폐된 병사의 체온을 순식간에 포착하고 얼굴 인식 기술은 생명을 데이터로 치환한다. 이름과 사연을 가진 인간은 ‘처리해야 할 정보’로 바뀐다. 연민과 망설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확률과 연산뿐이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남는가. 알고리즘의 오판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될 때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그동안의 교육 현장에서 필자는 한 가지를 반복해 강조해 왔다. 나라를 지키는 힘은 언제나 무기보다 먼저 사람의 판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멈출지 밀어붙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전쟁의 신이 된 알고리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넘겨준 판단을 우리는 다시 되찾을 준비가 돼 있는가.
기술은 중립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은 중립일 수 없다. 이 시대의 마지막 방어선은 코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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