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당나라 시대 구자국(현재 쿠차)은 고대 신라, 고구려 역사와 관련이 깊다. 신라 승려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에 구자국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혜초 스님은 727년 11월 쿠차에서 숙박했다.
“카슈가르(당시 소륵국)에서 한 달을 걸어가면 구자국에 이른다. 안서도호부가 있고 군대가 많다. 사찰과 승려가 많다. 소승불법과 대승불법이 공존한다. 고기, 파, 부추를 먹는다. 중국 승려는 대승불교를 믿는다”고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돼 있다.
혜초는 20세인 724년 중국 광저우를 출발, 상인들의 배를 타고 천축으로 갔다.
돌아올 때는 파미르고원을 넘어 서역북로를 통해 당나라로 입국했다. 쿠차, 투루판, 둔황, 장안을 거쳐 오대산으로 돌아왔다. 신라 후기 대학자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시험(빈공과)에 합격하고 관리를 했다. 최치원이 귀국 후 쓴 향약잡영(현재 없어짐)에 오늘날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수만리를 걸어오느라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 서역에서 들어온 놀이극을 보고 신라에서 쓴 것이다. 북청사자놀이의 원산지가 당나라 시대 구자국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를 신라인들은 본 적도 없는데 사자놀이를 서역에서 가져와 민속놀이로 즐긴 것이다.
최치원은 서역에서 오현, 피리, 횡적 등의 악기가 신라와 고구려에 전해졌다고 적고 있다. 1천300년 전 실크로드의 동쪽 끝 신라와 구자국의 문화 교류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글로벌 마인드였던 당나라는 능력만 있으면 외국인도 고위직으로 출세가 가능했다. 고구려 포로의 후손인 고선지도 절도사로 출세했으니 당시의 포용정책을 짐작할 만하다. 쿠차는 안서도호부 절도사를 지낸 고구려인 후손인 고선지 장군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고선지 장군이 쿠차에서 8세기 중반 군대를 이끌고 험하고 험한 파미르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 연안보, 길기트 등을 점령하고 서역 35개국이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 톈산산맥을 넘어가 ‘석국’(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을 점령했다. 이런 공로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군사령관인 안서절도사로 승진했다. 근세 유럽의 군사전략가들이 히말라야산맥과 파미르고원을 넘어 군사작전을 펼친 고선지 장군을 높이 평가해 고선지는 근세 이후 유명해졌다.
쿠차를 출발해 외곽에 있는 2천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에 들렀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뜸하다. 봉화대는 가로 4.5m, 세로 3.5m, 높이 12m 크기로 많은 부분이 무너져 당초 크기의 3분의 1 규모라고 하는데도 매우 크다.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를 이후 당나라가 고쳐 사용했다고 하는데 사막의 건조한 날씨에 오랫동안 잘 보존된 것이다. 봉화대 입구의 기념관에 봉홧불 연료로 사용하던 ‘갈대 다발’ 묶음을 전시하고 있다. 설명서를 읽어 보니 봉화 연기가 잘 보이도록 야생 늑대의 똥을 섞어 불을 붙였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정말 늑대 똥 연기가 멀리서 잘 보일지 궁금하다.
쿠차에서 서쪽 사막으로 70여㎞를 가면 절벽의 계곡에 키질석굴이 있다. 상인들이 쿠차로 가기 전에 하룻밤 묵었다 가는 지역이다. 아마 혜초 스님도 이곳을 거쳐 쿠차로 갔을 것이다.
키질석굴은 서기 3세기부터 9세기까지 600년에 걸쳐 조성됐고 석굴 260여개가 절벽에 있다. 키질석굴은 간다라 지방의 그리스풍 조각 양식이 많이 남아 불상 예술사의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해 큰 기대를 갖고 갔는데 완전 실망이다. 고대 그리스의 간다라 미술 양식, 고대 인도 양식의 벽화와 불상은 서구 약탈자들이 대부분 뜯어갔다. 석굴의 벽화는 거의 안 남았고 부처상도 거의 없는 텅 빈 동굴과 다름없다. 일부 남아 있는 불상도 얼굴과 눈이 크게 파괴돼 잘 보존된 둔황석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당시 ‘베를린 향토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키질석굴의 인류 유적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고 한다.
키질석굴 정면에 유명한 번역승 ‘구마라집’ 동상이 있다. 구마라집 탄생 1천950주년을 기념해 1994년 설치한 동상이다. 구마라집은 쿠차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 승려로 중국 불교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장안에 있던 전진 왕 부견이 구마라집의 명성과 천재성을 듣고 군대를 쿠차로 보내 384년 그를 납치해 왔다. 구마라집을 강제로 결혼시켜 도망을 못 가도록 협박하기도 했다. 구마라집은 중국에서 불경 번역에 평생을 바쳤다. 반야심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 많은 경전을 번역한 승려다. 우리에게 익숙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색은 공이고 공은 색이다)은 구마라집이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실재(욕계)와 비실재(공)’의 불경의 깊은 뜻을 중국어로 번역한 유명한 문장이다. 구마라집 이전에 산스크리스트어와 중국어 두 개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부처가 설법한 깊은 뜻이 중국어로 번역이 잘 안됐다. 전진 왕 부견은 불교 포교자로서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이다. 부견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에게 승려(순도)를 보내 불교를 소개한 왕이다. 고구려는 선진 문명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율령을 반포해 율령국가 체제로 변경한다. 소수림왕의 다음 왕인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전성기를 이끈 왕이다.
뜻밖에도 키질석굴 10호 굴에 ‘한학련’이라는 연변 출신 조선족 기념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흥미가 있어 한학련 기념전 사진을 찍고자 하니 여직원이 사진 촬영을 못 하게 한다.
한학련은 1946, 1947년 키질석굴의 조사와 발굴, 키질석굴 벽화를 모사해 석굴 보존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왜 이 멀리 타클라마칸사막 깊숙한 곳에 있는 키질석굴에 연변 출신 조선족이 매혹당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타클라마칸사막의 깊은 곳에 고대 신라와 고구려의 흔적이 있고 근세 인물 한학련까지 얽혀 있어 우리 역사와 실크로드의 인연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