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서니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남기민)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는 광교호수공원과 이웃한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전시 중인 ‘2026 교육체험전-하나 쌓고, 하나 빼-기’는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작가들의 창작 방식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전상아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니 새로운 눈 하나가 더 열린 듯 시야가 환해진다.
■ 더하기와 빼기
“어린이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이 현대미술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수집과 축적의 ‘더하기’와 익숙함을 비틀어 새롭게 바라보는 ‘빼기’라는 두 가지 원리를 중심으로 구성했지요.” 8월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서 작가들은 관람객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을까.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직접 움직이고 체득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작가와 기획자는 관람객에게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더하기’에는 어떤 작가의 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단순한 공간을 미로처럼 구성한 전시관의 동선이 재미있다. 널따란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대형 작품들이 밝고 따뜻하다. 둥근 원들이 마치 나이테처럼 겹쳐 있는데 한가운데 별과 사랑을 뜻하는 하트를 그려 넣어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겹겹이 쌓인 시간 관찰과 기록을 통해 일상의 조각들을 쌓아 올린 작가들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우리 주변의 다채로운 색채와 형태를 수집해 너른 공간에 펼쳐 놓은 박미나 작가의 작품이 매력을 발한다. 빛과 색의 지각을 다루는 윈도 시트 작업 ‘GR BGRY’(2026년)는 현대미술의 화사한 색감을 선사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유리관 안에 오리와 강아지를 비롯한 작은 인형을 가득 매달아 아이들이 경험한 즐거운 놀이의 추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과 마주한다. 푸른 세모는 지붕이 되고 미색의 네모는 벽이 돼 집으로 완성된 박미나 작가의 ‘세모 네모 집’은 단순하지만 메시지가 강렬하다. “서로 다른 성질의 색으로 몸과 공간, 사물을 이루는 기본 감각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지요.”
철사를 쌓고 석고를 덧바르는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탄생한 독특한 코끼리 형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엄정순 작가는 코끼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뒤에서 봤을 때는 분명 코끼리이지만 앞으로 자리를 옮겨 보면 코도 머리도 없다. 한쪽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은유가 아닐까. 수많은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캔버스 위에 겹겹이 배치해 새로운 시각적 층위를 만들어낸 노상호 작가의 작업 방식도 신선하다.
■ 도전적인 기획전시
다음은 ‘빼기’다. 물건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여서 그런지 빼기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는다. “기존의 상식을 지우거나 사물의 중심과 주변을 뒤바꿔 낯선 감각을 일깨우는 작가들의 방식에 주목해 보세요.” 익숙한 사물의 용도를 변형하거나 배치 방식을 비틀어 일상적인 공간을 새롭게 환기한 로와정의 작업 방식이 참신하다. “평범한 사물로 중심과 주변의 자리를 뒤바꾸는 방식으로 우리가 정답처럼 여겨온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건축과 안무의 경계를 허무는 창작 집단인 뭎(Mu:p)은 더욱 용감하다. 신체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재치 있게 다룬 설치물 ‘왼발, 그다음 오른발’(2026년)은 관람객이 공간 속의 문턱과 통로를 직접 지나며 신체적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재미난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 관람을 넘어 교육과 체험이 결합된 형태이므로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수원시립 아트스페이스광교는 공간의 유동성을 반영하는 독특한 공립미술관이다. 미술관이 자리한 수원컨벤션센터는 개관 이후 국제회의와 전시 행사를 꾸준히 유치해 연평균 300여건의 행사가 열려 연간 80여만명의 참가자가 방문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수원컨벤션센터 주변에 형성된 광교테크노밸리에는 반도체와 바이오 및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기술 기업과 연구기관은 물론이고 신생 창업 기업이 밀집해 있고 백화점을 비롯해 대형 상업시설이 모여 있어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미술관이다. ‘뚜벅이 탐사단’을 꾸려 미술관과 인접한 광교호수공원의 생태 환경을 교육에 접목하고 미생물을 매개로 한 예술-과학 융합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현대미술을 관람하고 광교호수공원 생태 탐사 활동을 벌였다. 미생물의 소리를 상상하며 미생물 자화상을 제작하고 미생물 사운드 연주회까지 열었다니 그 기획력이 놀랍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계를 예술과 과학의 시선으로 탐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아트스페이스광교의 열정적인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이 생태계 속 다양한 존재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기회가 됐지요.”
지난해 5월 열린 ‘2025 아워세트: 김홍석×박길종’도 실험성이 충만하다. 다양한 소품을 활용해 전시의 주요 작품으로 분장한 뒤 실제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야호! 나도 작품이얏~’를 진행했다. 모루 철사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미니어처 가구를 제작하는 ‘핑크 세상: 이야기 가구 만들기’도 관람객들의 호응이 높았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열었던 ‘2025 생생화화: 화두’도 기억할 만한 전시였다. 시민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창작생태계를 확장하는 문화예술기관으로 책임과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경기문화재단과 진행한 사업이다.
2013년 시작한 ‘생생화화’ 시리즈는 경기문화재단 공모사업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의 성과발표 전시로 총 9명의 작가와 함께 ‘화두 話頭’를 열었다. 11월에는 예술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확장하고 감각을 회복하는 예술교육 워크숍 ‘혼자-함께’를 개최하고 창작 그룹 레벨나인(Rebel9)과 협력해 인공지능(AI)·확장현실(XR) 기반의 교육 전시 ‘괴물정원: 아츠츠 박사와 기억의 세계’를 열었다. 예술과 기술, 문학이 어우러진 융복합 전시 괴물정원은 동화책 읽기에서 시작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혁신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관람객들이 AI와 XR 기술을 통해 기억과 지식을 확장하는 새로운 경험과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서 존재와 연결의 의미를 탐구한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 수원시립미술관의 풍성한 식탁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행궁 광장에 자리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아트스페이스광교를 비롯해 만석공원에 자리한 ‘수원시립만석전시관’과 파장동의 ‘수원시립북수원전시관’을 포함해 4개의 공간이 있다. 정조 시대 농사를 위해 조성한 인공 저수지인 만석거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조성한 만석공원에 자리 잡은 만석전시관에서는 ‘그린그린 뮤지엄: 별가루 신비정원’이 열리고 있다.
‘그린그린’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무언가를 ‘그리다’는 상상 및 표현의 의미와 자연의 색을 떠올리게 하는 ‘초록(Green)’이다.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에서 열리는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와 2026년 상반기 기획전 ‘입는 존재’도 흥미로운 전시다. ‘입는 존재’는 관람객 자신이 무엇을 입으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둘러싼 기준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전시실을 나서는 순간까지 질문을 던진다.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에서 관람시간을 1시간 연장해 오후 6시까지 입장할 수 있고 4월1일부터 매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선언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언제 찾아도 기분 좋은 영혼의 샘터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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