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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공보의 없는 보건소, 이제 역할을 다시 묻다

목경열 보건학박사·경기도장애인체육회 이사

목경열 보건학박사·경기도장애인체육회 이사
목경열 보건학박사·경기도장애인체육회 이사

 

4월, 농어촌 보건지소 곳곳의 진료실이 비어 있다. 매년 이맘때면 신규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들이 부임해 온 자리다. 올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신규 임용 숫자는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오랜 시간 이어온 지역 의료 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현역병보다 두 배 긴 복무 기간에도 처우 개선은 뒤따르지 않는 구조적 모순, 의대 내 여학생 비중 증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맞물리면서 특정 인력의 헌신에 기대어 위태롭게 유지해 온 농어촌 의료안전망은 이제 거대한 전환점에 서게 됐다.

 

그러나 이 위기를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만 진단하는 것은 절반의 분석에 불과하다. 보건소가 처음 설립된 1956년의 목적은 ‘진료’가 아닌 ‘공중보건’이었다. 결핵 퇴치와 예방접종 등 인프라가 전무하던 시대에 방역과 예방이 본래의 임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건소는 민간 의원과 경쟁하며 ‘저렴한 진료소’로 자리를 굳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역설적으로 보건소의 진짜 역할을 증명했다. 진료 기능에 치중한 곳보다 역학조사와 예방 체계를 탄탄히 갖춘 보건소가 위기 상황에서 훨씬 유연하고 강력하게 대응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보건소 재정립의 첫 단추는 과감한 ‘기능 전환’이어야 한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감기약 처방이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와 복합적인 돌봄 서비스다. 공보의 한 명의 청진기에 의존하기보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로 구성된 다학제팀이 주민의 건강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예방 중심 모델’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특히 3월 본격 시행된 ‘지역돌봄통합지원법’과의 유기적 결합이 핵심이다. 병원을 나선 환자가 살던 곳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보건소는 민간 의료기관과 지역 복지 시설을 잇는 행정적 연결 거점이 돼야 한다.

 

물론 진료 공백에 따른 불안은 현실적인 고통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보의의 빈자리를 공보의로만 채우겠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촉탁제도 확대와 방문 간호 서비스 강화로 공백을 메우는 한편 지역주민의 건강 지표를 분석해 고위험군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데이터 기반 스마트 보건소’로의 진화가 필수적이다. 데이터는 단순한 수치의 나열이 아니라 행정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사각지대를 밝히는 나침반이다. 표준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예측 행정은 한정된 보건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전략적인 해법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위기가 오랫동안 미뤄온 보건소 구조 개편의 결정적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보건소를 ‘잠깐 들러 약 짓는 곳’에서 ‘내 삶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설계해 주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인력난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텅 빈 진료실을 보며 한숨 짓는 행정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행정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보건 행정의 혁신은 곧 시민의 생명권과 직결되는 가장 확실한 사회안전망 구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 빈 공간을 지역주민의 존엄한 노후를 위한 새로운 건강 거점으로 채우려는 대담한 결단이 필요하다.

 

낡은 것을 버리는 리부트가 아니라 원작의 정신을 살려 오늘에 맞게 되살리는 리마스터. 이는 단순히 시스템의 외형을 바꾸는 작업을 넘어 공공보건의 근본 가치를 현대적 감각과 기술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비어가는 진료실을 주민의 삶을 지탱할 돌봄의 중심지로 다시 채우는 것이야말로 70여년 전 보건소가 처음 세워졌던 본래의 사명에 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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