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용연을 중심으로 각건대, 북암문, 화홍문, 방화수류정이 어우러진 풍경일 것이다. 이 중 북수문인 화홍문은 성안으로 물을 받아들이는 수문이다. 수문, 교량, 누각이 함께 있는 한국 수문 건축의 백미(白眉)다. 현재도 사용한다.
화홍문은 장안문, 팔달문, 남수문과 함께 화성에서 가장 먼저 착공했다. 공사 중에도 백성이 성 안팎으로, 수원천 좌우로 오갈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화홍문은 물의 통로, 방어를 위한 포병 진지, 백성이 이용하는 교량, 문루에 올라 쉴 수 있는 정자 기능을 동시에 담았다.
화홍문에 가면 문루에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신발 벗는 게 귀찮겠지만 문루에 꼭 올라가 볼 것을 권한다. 남쪽 창가에서 서서 수원천 양쪽에 서 있는 버드나무를 보면 수원의 원래 이름인 유천(柳川)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북쪽 창가에 서면 용두 위에 세워진 방화수류정과 용연이 보인다.
특히 북쪽은 분합문 밖 마루에 앉아볼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한번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마루 너비는 6척으로 아파트 발코니의 1배 반이다. 밑에는 벽첩(甓堞)인데 그 위에 마루를 깐 것이다. 때로는 내부처럼, 때로는 외부처럼 쓰이는 한국 고유의 공간이다.
이 마루 양쪽 끝에 나무 판문이 하나씩 있다. 조금은 희한한 문이다. 문을 열면 문밖은 아래층 교량 바닥까지 그대로 낭떠러지다. 문을 열고 발을 디뎠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여러분도 조심하셔야 한다. 왜 이처럼 위험하고 쓸모없는 문이 있을까. 화홍문의 역할과 방어대책을 살피며 접근해보자.
수문은 화성 시설물 중 위계가 높다. 대문, 암문 다음이다. 그만큼 방어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다양한 대책을 이미 반영했다. 화홍문은 좌우로 화력이 막강한 진지를 배치했다. 방화수류정은 보병과 포병진지, 북동포루는 포병진지다. 여기에 더해 가운데는 수원천이, 우측에는 용연이 있다. 큰 내나 큰 연못도 적에게는 장애물이다. 방화수류정에는 2층에 전붕판문 16개, 1층에는 총안이 19개나 있어 대단한 병력을 보유했음을 적에게 알려준다.
화홍문 자체도 만만찮다. 누각 위에 수많은 보병이 배치된다. 전안폐판을 한 점이 증명한다. 누각 아래와 좌우에는 22개의 포혈을 설치했다. 대포와 소포를 배치한 포병진지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화홍문 전면 벽은 벽첩으로 했다. 대포를 쏘는 포루 벽체는 일반 벽의 두 배가 넘는 두꺼운 벽돌 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께가 무려 4척8촌(1.48m)이다.
이처럼 수문에는 각루, 포루, 공심돈을 좌우에 배치했고 전면은 모두 벽첩을 해 포병진지를 만들었다. 모든 홍예 수문에는 쇠살문을 설치해 전쟁 시에는 쇠살문을 닫아 수문을 폐쇄했다. 수문에 대한 방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사실은 무시무시한 전쟁 시설물이다.
이런 방어시설 중 벽첩이 발코니 양쪽에 있는 위험하고 쓸모없는 판문과 관계가 있다. 어떤 관계일까. 의궤에 벽첩에 대해 “방사하는 제도는 포루와 같다”고 설명한다. 또 “아래에는 대포 구멍 8개를, 위에는 소포 구멍 14개를 뚫었다”고 해 누각의 아래층과 좌우가 포를 쏘는 공간임을 확인해 준다.
하지만 벽첩을 포를 쏘는 포벽으로만 보면 큰 실수다. 포벽 외에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다. 어떤 역할일까. 첫째, 통로 역할이다. 도대체 벽을 어떻게 통로로 사용한단 말인가. 비밀은 포벽의 설계에 있다. 벽면은 포진지로 사용하고 윗면은 병사가 걸어 다니는 통로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의궤에도 “북쪽 판문 아래는 벽첩과 이어지게 했다”고 했다. ‘판문 아래’와 ‘벽첩’이 ‘이어지게’ 하려면 판문 아래 레벨이 벽첩 윗면 레벨과 같은 레벨이어야 한다. 이는 북쪽 마루에서 판문을 열고 벽첩 위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통로 구조라는 말이다. 무슨 통로일까.
화홍문에서 좌우에 있는 원성 내탁과 오갈 수 있는 연결 통로다. 좌측 내탁에서 화홍문 발코니를 거쳐 우측 내탁까지 갈 수도 있다. 원성의 내탁은 가능한 한 모두 연결돼야 한다. 병력과 병참의 공급망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벽이어서 통로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궤 기록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둘째, 여장 밑의 원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포벽 위에 여장을 쌓았다. 왜 포벽 위에 쌓아야 할까. 화홍문은 물 위에 지은 시설물이라 태생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성 높이만큼 여장 바닥 레벨이 낮기 때문이다. 좌우 원성과 통로 레벨을 맞추려면 원성 높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포벽 위에 여장을 세워야 한다. 포벽이 원성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벽첩은 포벽 역할은 물론이고 좌우 내탁통로, 여장 설치, 여장 뒤 병사의 활동 공간으로 쓰였다. 다목적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통로나 병사의 활동 공간으로 쓸 수 없다. 왜 그럴까. 복원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포벽의 원형은 의궤에 ‘벽첩의 높이는 5척4촌, 두께는 4척8촌’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복원 상태를 보자. 높이는 4척, 두께는 2척4촌이다. 원형보다 높이는 1척4촌(43㎝) 낮고 두께는 2척4촌(75㎝)만큼 얇게 복원했다. 역할을 생각하면 너무 잘못된 복원이다.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첫째, 통로 역할이 사라졌다. 벽첩 높이가 낮아 판문을 나서면 발 아래가 허공이다. 통로로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접근한다 해도 두께가 얇아 발을 디딜 공간이 없다. 이동은커녕 서지도 못하는 통로가 됐다. 아쉽게도 화성 내탁이 화홍문에서 끊어진 것이다. 판문도 쓸모없게 됐다.
둘째, 여장 역할이 사라졌다. 여장은 설치까지는 됐으나 기능을 할 수 없어 쓸모없는 여장이 됐다. 여장 뒤에 병사가 갈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다. 벽첩 두께가 얇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서서 총을 쏠 수 있는 폭이어야 한다.
이처럼 잘못된 복원은 원래 기능을 없앨 뿐만 아니라 후세에 한 공간의 목적을 잘못 인식시키는 문제를 남긴다. 복원은 외형보다 공간의 개념과 목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화홍문 벽첩에서 벽면은 포진지로 사용하고 윗면은 이동 통로와 여장 발판으로 사용한 정조의 공간 활용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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