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시절 부당한 권력에 맞선 법조인 출신…정계 입문 후엔 제주4·3 진실 규명 이끌어 ‘촛불혁명·정권 교체’ 견인한 당대표 우뚝…낡은 지역주의 타파 외치며 ‘추다르크’ 명성도 6선된 뒤에도 법무장관·법사위원장 맡으며…검찰 개혁 완수… 이젠 경기도 미래 설계자로
추미애 경기도지사 그는 누구인가
여성 최초의 판사 출신 6선 국회의원 기록에 이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추미애가 걸어온 길은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었고 위기 속에서도 빛난 개혁의 역사였다.
부당한 요구에 맞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판사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제주4·3의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의 길에 전력한 국회의원까지 그의 도전 뒤에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변화가 뒤따랐다. 지역주의의 높은 벽 앞에서도, 검찰개혁이라는 막중한 임무 속에서도 언제나 먼저 나서 가장 어려운 과제 해결을 자처해 왔다.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의 중심에서 당을 이끌어온 그는 이제 1천420만 경기도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성장 전략인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 경기도에서 시작될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그의 발자취 속에서 엿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법과 양심 지킨 판사에서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추미애는 1958년 10월23일 경북 달성군(현 대구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경북여고를 졸업한 뒤 한양대 법학과를 나와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강직했던 성정은 판사 시절의 발자취에서 엿볼 수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에도 추미애는 권력의 요구에 고개 숙이기보다 양심과 법 원칙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무자비한 군사정권하에서도 법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는 신념 속에서 양심과 법을 지켜갔다.
1995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인재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초선 국회의원 시절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던 제주4·3의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섰다. 오랜 세월 국가 폭력의 상처 속에 놓여 있던 제주도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누구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던 진실을 정치의 영역 위로 끌어올렸다. 훗날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억울한 수형인의 재심과 명예회복, 배상·보상 문제에 관심을 쏟는 건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는 그의 오랜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 지역주의 벽을 깬 ‘추다르크’, 통합의 역사를 쓰다
추미애의 정치 인생은 지역주의의 벽을 깨고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의 길을 개척하는 ‘추다르크’의 삶 그 자체였다. 대구 출신으로 민주개혁 진영의 길을 선택한 그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를 위해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 뛰어들어 ‘유세단’을 이끌면서 얻은 별명, ‘추다르크’가 이 같은 그의 삶을 설명하기도 한다. 지역주의의 벽이 있는 곳에서 민주개혁의 깃발을 드는 것으로 표심을 호소했던 그는 지역주의의 높은 장벽 앞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다.
불리한 싸움일수록 더 당당히 맞서면서 말로만 외치는 정치 대신 몸소 실천하는 정치를 보여 왔던 추미애의 ‘추다르크’는 별명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넘어서야 할 낡은 벽 앞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부여받은 임무이기도 했다.
■ 촛불혁명에서 정권 교체까지... 최일선에 서다
민주당의 역사 속에 추미애는 언제나 중심에서 지키고 가장 앞에서 당을 이끌며 자신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이재명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의 탄생 순간에는 언제나 추미애가 중심에 서 있었다. 어려운 전장일수록 그의 역할은 더 무거워졌지만 단 한순간도 이를 피하지 않고 맞서며 민주 진영의 승리를 몸소 만들어 냈다.
2016년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촛불혁명의 거대한 민심을 정치의 변화로 만들어 냈다. 국정농단 세력을 향한 국민의 탄핵 요구를 실현시키고 헌정질서 회복과 정권 교체를 위한 길의 맨 앞에서 당을 이끌었다. 국민의 열망은 그의 열정을 타고 정권 교체의 동력이 됐고 이어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며 바야흐로 민주당 전성기를 열었다.
민심을 읽고, 민심을 실현할 줄 알았던 그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가장 유능한 정치인이자 국민의 대변인이었다.
■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검찰개혁 과업의 길에 뛰어들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압도적 승리는 곧 당 대표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일이자 그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누구보다 빛나던 순간 추미애는 오히려 누구도 이루지 못한 무거운 과업 앞에 서야 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제67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그는 모두가 가지 않으려던 길, ‘검찰개혁’에 뛰어들었다.
검찰의 권한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본래 목적에 맞춰 국민의 인권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 발현될 수 있도록 역할을 바로잡는 일, 추미애는 그 길에서 상상 이상의 저항과 공격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고독한 혼자만의 싸움이라 여겼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응원하던 국민의 열망을 꺼내 들며 온전히 고통을 감내했다.
이후 6선 국회의원이 된 추미애는 검찰개혁의 완성을 위해 법제사법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도지사로의 새로운 도전 직전까지 전력한 끝에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라는 과업을 이뤄내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 추미애의 열정이 만들 경기도의 미래
추미애가 걸어온 길에는 특유의 책임감과 오랜 시간 지켜온 신념이 뿌려져 있다. 편한 길 대신 역할이 있는 길을 택하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앞장선 길잡이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당함에 침묵하기보다 바른 길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추미애. 이제 그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자 미래인 경기도에서 새로운 내일을 그린다.
31개 시·군이 직면한 문제부터 경기 남부의 첨단산업벨트 조성, 경기 북부의 중첩규제 해소, 경기 동부의 성장동력 마련까지 그의 역할이 닿아야 할 난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추미애는 지금까지의 길 위에서처럼 이번에도 같은 답을 내놨다. ‘추미애는 해 본 사람이다. 앞으로도 해낼 사람이다’. 그는 또 어떤 도전과 책임감으로 1천420만 경기도민의 삶을 바꿔낼까.
추미애 주요 이력
■ 기본사항
-성 명: 추미애(秋美愛)
-출생일: 1958년 10월23일
-출생지: 경북 달성군(현 대구 달성군)
-가 족: 배우자와 1남2녀
■ 학력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 법정대학 법학 학사
-연세대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주요 경력 및 당무 이력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제67대 법무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대표
-제15·16·18·19·20·22대 국회의원
-제21대 대선 이재명 대통령후보 골목골목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제18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후보 국민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제16대 대선 노무현 대통령후보 국민참여운동본부장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및 총재 비서실장(김대중 대통령 당시)
-광주고등법원 판사, 춘천·인천·전주지방법원 판사
-사법연수원 14기 수료,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