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소식통

인천지역 첫 ‘3선 교육감’ 도성훈…교육 투사, 학생성공시대 완성까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그는 누구인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의 전교조 활동 모습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의 전교조 활동 모습

 

치열했던 3파전 구도의 인천시교육감 선거에서 시민들의 최종 선택은 도성훈 현 교육감이었다. 이로써 도 당선인은 민선 전환 이후 인천 최초의 ‘3선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도 당선인의 삶은 대한민국 교육 민주화의 축소판과 같다. 40여년 전 분필을 처음 쥐었던 평교사에서 300만 인천 시민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에 세 차례나 선택받기까지, 그가 걸어온 굴곡진 생애와 뚝심 있는 교육 철학을 짚어본다.

 

■ 전기도 없던 산골 마을, 400년 된 느티나무를 벗 삼아 성장하다

 

도성훈 당선인의 생애 첫 기억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석천리의 깊숙한 산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시내버스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오지였다. 천안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인 걸음으로 장장 3시간 동안 험한 산길을 헤쳐 걸어가야만 했다.

 

도 당선인은 사찰과 사당 등을 짓는 이른바 대목이던 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궁핍함을 견디지 못한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강원도 철암의 공장으로 떠나면서 어린 나이에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동네 어귀를 묵묵히 지키고 있던 400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는 부모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는 유일한 공간이자 벗이었다. 어른들이 양팔을 벌려 세 번을 둘러야 할 만큼 거대했던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는 넓은 세상을 향한 동경을 키워나갔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의 철야농성 당시 활동 모습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의 철야농성 당시 활동 모습

 

■ 엄격함과 무한한 신뢰… 교사 도성훈을 만든 부모님의 가르침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던 그가 부모님과 재회한 것은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던 조부모와 달리 다시 만난 부모님은 철부지 소년에게 한없이 엄격한 양육 방식을 택했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아들이 엇나갈까 노심초사하며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고, 아버지는 그런 훈육 방식을 묵묵히 지지하며 아들을 향한 무언의 신뢰를 보냈다. 조부모의 정서적 안정감, 어머니의 엄격한 규율, 그리고 아버지의 단단한 신뢰는 훗날 그가 40년 가까이 교육자로서의 삶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내적 자양분이 됐다.

 

1980년대 초 대한민국 전역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로 들끓던 시절에도 그는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던 낭만 가득한 대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교단에 서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할아버지의 삶이었다. 시골 마을의 훈장으로서 한학을 가르치고 올바른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던 참된 스승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 지도교수의 적극적인 추천이 더해지면서 도 당선인은 비로소 교직을 이수하고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웹_[포털]인천 첫 ‘3선 교육감’ 도성훈…교육 투사, 학생성공시대 완성까지[선택 6·3 그는 누구인가]

 

■ 낭만파 대학생, 사학 비리에 맞서는 투사로 변모하다

 

1985년 2월, 대학 졸업장을 쥔 지 불과 한 달 만에 도 당선인은 사립학교인 인천 성헌고등학교 평교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학교의 현실은 꿈꾸던 이상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성헌고는 재단 이사장 부인이 교장으로 재직하며 파행적인 학교 운영과 비리가 만연했다. 부족한 인력을 임시 강사 채용으로 돌려막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파행 행보가 거듭됐다.

 

결국 도 당선인은 1988년 1월 동료 교사 8명과 함께 유성으로 여행을 떠나 학교의 문제를 논의하고 공동 기구를 조직하기로 결의한다. 그해 8월 23일, 교사 23명이 모여 ‘평교사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고 도 당선인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재단과 첫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으나, 재단 측은 협의회 결성 자체를 문제 삼아 그를 전격 해임하는 강수를 둔다. 하지만 이 해임은 오히려 기폭제가 됐다. 청문회를 통해 교사 임용 비리 등 심각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분노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 100여 명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결국 재단은 백기를 들었다.

 

웹_[포털]인천 첫 ‘3선 교육감’ 도성훈…교육 투사, 학생성공시대 완성까지[선택 6·3 그는 누구인가]

 

■ 1천500명 대량 해고 사태와 4년 6개월의 험난한 야인 생활

 

도 당선인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성헌고 사태를 계기로 더욱 뜨거워졌다. 전국 교사협의회가 ‘교원노조건설특별위원회’를 발족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을 향한 움직임을 시작하자, 도 당선인 역시 앞장섰다. 1989년 6월 10일, 80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전교조 인천지부 결성식을 열고 정식 출범을 알렸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그는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989년 8월 1일 자로 직권면직이라는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전국 해직 교사들의 단식 농성에 동참했다.

 

해직 교사로서의 삶은 무려 4년 6개월이나 이어졌다. 경제적인 궁핍함 탓에 명절이나 어머니 생신에도 고향 집에 빈손으로 가야 했고 안쓰러워하는 어머니가 오히려 점퍼를 사 입혀 돌려보냈을 때 그는 참담함에 가슴을 치며 아파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인

 

■ 마침내 돌아온 학교… 참교육과 학교 혁신의 마중물이 되다

 

1992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해직 교사 복직의 길이 열렸다. 도 당선인은 1994년 3월 신규 특별채용 형식으로 관교중학교에 부임하며 분필을 다시 쥐게 됐다. 원상 복직이 아닌 신규 채용 형식이었고 전교조는 여전히 불법이었기에 시선은 차가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후 1999년 전국 최초의 여자공업고등학교인 인천여자공업고등학교 재직 시절 전교조가 합법 노조로 인정받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이후 도 당선인은 1년 6개월간 인천지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이듬해 선거를 통해 제11대 인천지부장에 당선됐다. 12대 지부장까지 연임하는 동안 교육 시장 개방 저지,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 등 아이들의 보편적 권리와 행복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2016년에는 동암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해 진정한 학교 혁신을 증명했다. 체벌과 욕설이 난무하던 공간을 소통과 칭찬이 넘치는 민주적인 배움터로 탈바꿈시켰고, 이 성과는 ‘2017 대한민국 참봉사대상’ 참교육공헌부문 대상 등의 영예로 이어졌다.

 

웹_[포털]인천 첫 ‘3선 교육감’ 도성훈…교육 투사, 학생성공시대 완성까지[선택 6·3 그는 누구인가]

 

■ 비리 의혹과 특수교사 순직… 위기 속 도약의 시험대

 

2022년 선거에서 승리해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게 된 도 당선인의 4년 역시 굴곡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굵직한 과제들이 잇따라 터졌다.

 

특히 전자칠판 보급 사업을 추진하던 중 현역 인천시의원과 일선 학교 관계자들이 뇌물 수수 혐의로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급 계획은 전면 중단됐고, 이는 교육청의 도덕성에 뼈아픈 타격을 입혔다.

 

무엇보다 지역 교육계에 남긴 가장 큰 상처는 특수 교사의 안타까운 순직이었다. 미추홀구의 한 특수 교사가 과로를 호소하다 세상을 떠나면서 인천 특수교육 시스템이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 유가족과의 소통 부족으로 ‘불통 행정’이라는 매서운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 당선인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밀어붙였다. 인공지능(AI) 교육에 대비해 초등학교 4학년 이상 학생들에게 스마트 기기를 무상 보급했고, ‘읽걷쓰(읽기·걷기·쓰기)’ 정책을 AI와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99.1%라는 압도적인 공약 이행률로 정책 수행 능력을 입증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등굣길에서 안전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도성훈 학생성공캠프 제공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등굣길에서 안전 캠페인을 하고 있다. 도성훈 학생성공캠프 제공

 

■ '학생성공시대' 완성을 향한 세 번째 도전

 

도 당선인의 3기 핵심 과제는 ‘학생성공시대 완성’이다. 읽걷쓰와 AI를 결합한 ‘읽걷쓰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5개 권역에 AI융합교육센터를 신설해 지역 편차 없는 미래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인천은 수도권의 주변부가 아니라 미래 교육의 퍼스트 무버”라고 강조한다. 공약이행률 99.1%로 지켜온 약속처럼, 세 번째 임기에도 말이 아닌 성과로 시민 앞에 서겠다는 것이 도 당선인의 다짐이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선생님이 존경받고 부모님이 안심하는 학교.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드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명이다.

 

도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의 재신임을 받은 것을 바탕으로, 무너진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천 교육의 질적 도약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도성훈 주요 이력

 

■ 학력

-부평남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력

-성헌고등학교(현 인제고등학교) 교사

-관교중학교 교사

-부개고등학교 교사

-인천여자공업고등학교(현 인천뷰티예술고등학교) 교사

-동인천고등학교 교사

-동암중학교 교장

-인천시교육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