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생중계된 '목숨 건 도전'…美등반가, 맨손으로 타이베이101 정복

미국의 유명 등반가가 맨몸으로 세계 최고층 빌딩 중 하나인 대만 타이베이 101 꼭대기에 올라가는 대기록을 세웠다. 25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알렉스 혼널드(40)는 이날 오전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건 도전을 시작했고, 92분만에 높이 508m에 달하는 타이베이 101 정복에 성공했다. 이날 혼널드의 도전 전 과정은 넷플릭스를 통해 생중계됐다. 혼널드는 20대부터 실력 있는 등반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지난 2017년에는 최초로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수직 암벽인 '엘 캐피탄' 프리 솔로(안전장비 없이 혼자 등반하는 클라이밍 종류)에 성공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는 긴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미끄럼 방지를 위해 쓰는 초크가 담긴 작은 주머니만을 허리에 찬 채 지상에서 거침없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타이베이 101 외벽은 유리와 철골 구조물로 되어있는데, 그는 쉬지 않고 모서리에 튀어나온 턱과 금속 조형물, 기둥 등 손에 잡히는 것들을 붙잡고 벽을 타고 올라갔다. 건물 아래는 그의 도전을 지켜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건물 내부에서도 사람들이 창문에 바짝 붙어 그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건물 중간에 있는 발코니 공간에서 짧게 머물며 숨을 고르기도 했으며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그의 아내 새니 맥캔들리스도 빌딩 안에 마련된 장소에서 남편의 도전을 지켜봤다. 반구 모양의 타이베이 101 꼭대기에 올라간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 뒤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휴대전화로 셀카를 촬영하기도 했다. 도전에 성공한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 때문에 긴장감이 커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 이거 정말 재밌다. 이게 내가 이걸 하는 이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타이베이를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었다고도 말했다.

“피로 물든 이란”...당국 “반정부 시위로 3117명 사망” 첫 공식 집계

이란 당국이 경제난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를 3천117명으로 집계했다. AP통신은 21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IB 방송을 인용, 이란 순교자·참전용사재단(이하 재단)은 “시위로 모두 3천117명이 숨졌으며, 이들 가운데 ‘군경 순교자’ 및 ‘무고한 시민’은 2천427명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재단은 또 “숨진 2천427명은 이슬람법에 따른 순교자, 무고한 희생자이고 이들은 시위 중 총격을 받아 숨진 일반 시민”이라며 “일부는 군중 속 조직적 테러 세력에 의해 사살된 시위대이며 미국이 시위대를 지원하고 무장시켰다”라고 주장했다. 재단은 그러나 군경과 시민을 제외한 나머지 사망자에 대해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았고 증거나 세부 내용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28일 이란 현지에서 리알화 가치 폭락과 경제난 등으로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시작된 후 이란 당국이 발표한 첫 공식 사망자 집계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정확한 사망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외부 기관 추정치보다 상당히 적은 숫자다. 여기에 지난 8일부터 현지 인터넷과 통신망이 전면 차단된 만큼 실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시위 24일째인 19일까지 시위 참가자 4천251명을 포함해 모두 4천519명이 숨졌고, 여기에 포함된 군경 등 진압 인원은 197명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또 HRANA는 추가로 9천49건의 사망 사례를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노르웨이 단체 이란인권(IHR)은 시위에 가담한 시민 중 3천42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훨씬 더 많은 사망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계 중단을 선언했다. 앞서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사망자를 1만2천명으로 추산했고, 미국 CBS 방송은 최대 2만명이 죽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한 바 있다.

트럼프 “유럽 8개국 관세 부과 철회”...그린란드 병합 대신 ‘북극 안보’로 선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에 2월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같이 알렸다. 그는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framework)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해결책이 실현된다면 미국과 모든 나토 회원국에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린란드에 적용되는 골든돔(미국의 차세대 공중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추가 정보가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윗코프 특사와 필요할 경우 다양한 다른 사람들이 협상을 맡을 것이며, 그들은 나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다음 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는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군사 행동 가능성까지 거론한 바 있다. 그러자 8개국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서 관세 카드를 꺼내들면서 미국과 나토 동맹국 간 '강대강 충돌' 국면이 지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소유권을 여전히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갖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날 뤼터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어느 정도 이견을 좁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윗코프 특사와 필요할 경우 다양한 다른 사람들이 협상을 맡을 것이며, 그들은 나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린란드와 관련해 골든돔(미국의 차세대 공중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추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추가 정보가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CNBC와 한 인터뷰에서도 골든돔과 광물권(mineral rights)이 그린란드 관련 합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본토를 러시아나 중국 등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려면 미사일의 경로와 가까운 그린란드를 미국이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그린란드에 매장된 다량의 광물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 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로 관측되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극 전체뿐만 아니라 그린란드와 관련해서도 무엇인가를 협력할 것인데 이건 안보와 관련됐다"면서 이 합의가 "영원히"(forever)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난 우리가 나토와 싸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병합할 생각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다둥이 아빠’되는 JD 밴스 美 부통령..."넷째 임신, 7월 득남 예정"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그의 아내 우샤 밴스 여사가 넷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밴스 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밴스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넷째 아이로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2014년 결혼한 밴스 부통령 부부는 현재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밴스 부통령은 올해 41세, 우샤 밴스 여사는 40세다. 밴스 부통령은 “우샤와 아이 모두 건강하며, 7월 말 그를 맞이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명문에는 “이처럼 설레고 분주한 시기에 우리 가족을 세심하게 돌봐준 군 의료진과, 아이들과의 행복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국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애써준 직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밴스 부통령은 2021년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출마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이후 미국의 출산율 감소에 대해 반복적으로 우려를 표명해 왔다. 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 같은 입장을 이어가며, 지난해 ‘마치 포 라이프(March for Life)’ 연설에서는 “나는 미국에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해외 순방 일정에도 우샤 밴스 여사와 자녀들을 동반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앞서 역대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인 캐롤라인 레빗도 지난달 말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알프스까지 내려왔다”...서유럽 밤하늘 물들인 ‘분홍색 오로라’ 장관

북극광(오로라)이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 벨기에와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 하늘을 수놓았다. 오로라는 보통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은 강력한 지구자기장 폭풍을 타고 남하해 곳곳에서 장관이 펼쳐졌다. 서유럽 소셜미디어(SNS) 이용자들은 이례적인 현상을 공유하며 감상평을 쏟아냈다. 그들이 공유한 사진에는 밝은 녹색, 붉은색, 분홍색의 신비한 광선으로 물든 밤하늘이 담겨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같은 날 벨기에와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뿐만 아니라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까지 오로라가 보였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전하를 띤 입자들이 지구자기장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날은 태양의 전하 입자가 대량 방출되며 강력한 지구자기장 폭풍을 촉발해 밤사이 알프스산맥 남쪽에 이르는 지역까지 오로라가 내려온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19일 저녁 발생한 지구자기장 폭풍은 최고에서 두 번째로 높은 강도인 G4등급까지 도달했다고 밝혔다. 독일 DAP통신은 “이런 강도는 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GPS 시스템 등에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패션 거장 발렌티노 가라바니 별세…향년 93세

드레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AP·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발렌티노 가라바니·지안카를로 지암메티 재단은 이날 "발렌티노는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는 길잡이이자 영감이었고 빛·창의성·비전의 진정한 원천이었다"며 그의 부고를 전했다. 그가 만든 화려한 드레스는 반세기 동안 패션쇼에서 단골로 등장할 만큼 독보적이었다. 그가 사용한 붉은 색은 그와 브랜드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시그니처로 '발렌티노 레드'라고 불린다. 그는 오트 쿠튀르(고급 여성복)로 유명했지만 논란이 되거나 너무 과시하는 듯한 스타일은 지양했다. 유명 정관계 인사와 스타 배우를 위해 만든 발렌티노의 드레스들은 매번 화제가 됐고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19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할 당시 입었던 크림색 레이스 드레스도 그의 작품이다. 이란의 마지막 국왕 샤 팔레비가 1979년 축출됐을 당시 그의 부인인 파라 디바 왕비가 이란을 탈출할 때 입은 정장도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것이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생전 그의 드레스를 즐겨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적인 여배우들도 발렌티노의 화려한 드레스를 사랑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 로마 시사회에서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깃털 장식의 드레스를 입었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오드리 헵번도 그가 만든 드레스를 좋아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그가 디자인한 흑백 가운을 입었다. 케이트 블란쳇이 2005년 여우조연상을 받을 때 입었던 노란색 드레스도 그의 작품이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그의 부고 소식에 "그는 논란의 여지 없는 우아함의 거장이자 이탈리아 오트 퀴트르의 영원한 상징"이라며 "전설을 잃었지만 그의 유산은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발렌티노는 1932년 5월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패션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품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기라로쉬 등 프랑스 디자이너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195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발렌티노 하우스를 설립하고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평생 파트너가 된 동료이자 연인 지안카를로 지암메티와 1960년 협업을 하며 전성기를 열어갔다. 발렌티노는 이후 남성복과 기성복·액세서리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1998년에 이탈리아의 한 지주회사에 브랜드를 3억 달러(약 4천421억원)에 매각한 뒤로는 디자인을 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는 2007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2016년 지암메티와 함께 자선 재단을 설립해 선행을 베풀어왔다. 장례식은 오는 23일 로마의 한 성당에서 치러진다.

정치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