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의 항소를 포기했다. 수사팀과 공판팀이 강력히 반발했다.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막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은 사의를 표했다. 어쨌든 검찰의 항소 시한은 지났다. 민간업자들은 모두 항소했다. 원심보다 피고인에게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68조의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다. 피고인들 주장과 진술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도 검찰의 반박은 제한적이다. 이 핵심에 배임죄가 있다. 다들 1심 판결이 중형이라 놀랐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공사 본부장과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에게 징역 8년씩 선고했다. 구형보다도 높았다. 나머지 3명도 징역 4~6년을 선고했다. 전원을 법정에서 구속했다. 그런데 적용된 죄목이 업무상 배임죄다. 검찰은 특경법 배임죄로 기소했다.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차이가 크다. 특경법 배임은 최대 무기징역이고 업무상 배임은 최대 10년이다. 계속 특경법 배임이라고 해왔다. 항소가 당연했다. 그런데 갑자기 포기했다. 특경법 배임을 포기한 셈이다. 이제 특경법 배임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다른 대장동 재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도 그렇다. 이 대통령 혐의 중에 ‘특경법상 배임죄’는 이미 논리를 잃었다. 야권에서 성토하는 가장 큰 맥락이다. ‘이재명 봐주기’. 물론 여권은 ‘시작부터 억지 수사’라며 맞선다. 이 싸움은 정치에 넘기자. 이보다 관심은 7천억원 환수 불가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범죄 액수를 7천886억원으로 특정했다. 이 전액을 추징해달라고 요구했다. 살폈듯이 1심 판결은 특경법 배임을 부정했다. 범죄 수익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논리로 추징금도 명하지 않았다. 추징금을 다투려면 항소심을 가야 한다. 이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추징금 0원’으로 끝낸 것이다. 그 7천억원은 업자들의 이익이 됐다. 징역 몇 년 살고 지켜낸 7천억원이다. 여기에 배임죄 폐지 논의까지 있다. 어쩌면 그 징역조차 짧아질 수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재판은 법과 양심으로 한다. 그걸 보는 국민의 기준은 상식이다. 배임이라는 ‘범죄’가 있다. ‘7천억원’이라는 수익도 있다. 유죄 땐 추징이 자연스럽다. 추징 땐 무죄가 자연스럽다. 그런데 1심 판결은 아귀가 잘 안 맞는다. ‘8년 중형’을 때리면서 ‘7천억원 추징’을 불허했다. ‘범죄 액수 특정이 어렵다’는데.... 뭔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정리가 필요했다. 다 떠나서 이런 걸 심리하는 게 2, 3심제도 아닌가. 이런 상식적 재판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검찰 빠진 피고인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 결정을 누구도 아닌 검찰이 했다. 법무부 탓하고, 대검 탓하던데.... 입만 열면 ‘검사 독립’ 외치던 검찰의 모습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3일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특별위원회’ 회의를 개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회 등과 함께 ‘65세 정년연장’ 입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함으로써 국회에서 정년 연장이 급속히 추진될 것 같다. 더구나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6일 민주노총을 찾아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국정 과제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고 밝힐 정도로 입법 추진을 약속했다.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65세 정년 연장을 연내 입법하라며 정부와 국회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도심권인 동대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대규모 전국노동자대회를 각각 개최, “정년 연장은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라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 가두 시위를 전개했다. 법정 정년 연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제21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을 보면 민주당은 ‘법정 정년 65세 단계적 연장 2025년 내 입법 및 범정부 지원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우리나라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노후 소득 공백을 줄이기 위한 정년 연장은 시대적 추세이므로 원칙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분분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까지 심화시킬 우려성이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민주당이 4월 정년연장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7개월째 뚜렷한 진전은 없었던 이유는 정년 연장 문제로 인한 각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의견을 나타내고 있을 정도로 첨예한 쟁점들이 많아 단순히 공약이라고 연내 목표로 속도전을 낼 입법사항은 아닌 것 같다. 우선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 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계는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정년 연장 입법화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시장 구조, 기업 경쟁력, 세대 간 고용 균형 등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므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축소 문제도 반드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 정년 65세 연장제도가 기대한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5년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불청객이 유난히 많다. 추위가 그랬다. 평소보다 보름 남짓 빨랐다. 그래서 벌써부터 출근길 점퍼나 패딩 차림들이 많다. 기침을 하는 이들도 눈에 많이 띈다. 추워서 그럴까. 마음도 차가워진다. 그래서 마음의 빗장도 꽁꽁 걸어 잠그는지도 모른다. 독감도 그렇다. 두 달 정도 속도를 위반했다. 질병당국에 따르면 올해 44주 차인 지난 일주일간(10월26일~11월1일) 전국 표본감시 의원 300곳을 찾은 독감 증상 환자는 외래환자 1천명당 22.8명으로 집계됐다. 일주일 전의 13.6명에서 67.6%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절기 독감 유행 기준인 9.1명의 2.5배 수준인 셈이다. 지난해 이맘때인 2024년 44주 차의 독감 증상 환자 수(1천명당 3.9명)와 비교하면 올해가 5.8배가량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는 겨울이 12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문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독감이 어린이와 청소년 등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난주 7~12세 독감 증상 환자는 외래환자 1천명당 68.4명으로 유행 기준의 7.5배에 달했다. 1~6세는 1천명당 40.6명, 13~18세는 34.4명 등으로 나타났다. 병원급 221곳의 입원환자 표본감시에서도 독감 입원환자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일주일 동안 175명이 입원해 일주일 전에 비해 78.6% 늘었다. 최근 4주 연속 증가세다. 코로나19도 늘긴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178명에서 199명으로 11.8% 증가했다. 질병당국은 본격적인 겨울철을 앞둔 지금이 호흡기 감염병을 막기 위한 예방접종 적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65세 이상과 임신부, 생후 6개월~13세 어린이는 독감 무료 접종 대상이다. 65세 이상은 코로나19 백신과 동시에 접종할 수 있다. 앞으로 부닥칠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해 만사 불여튼튼하려면 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예방이 최우선인 게 어디 독감뿐일까.
행정안전부는 2021년 전국 89개 시·군·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한국고용정보원은 2022년 분석에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을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했다. 지방의 절반 가까이가 인구소멸의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 고령화, 일자리 부족이 겹치며 지역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연간 1조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해 지자체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도로와 건물을 새로 짓는 인프라 중심 사업은 단기적 효과에 그치고 지역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도는 지역’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창업’이 있다. 창업은 지역 인재가 정착할 이유를 만들고 외부 청년이 돌아오게 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단순한 지원이 아닌 창업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지역 대학, 지자체, 금융기관, 민간기업이 협력해 창업보육센터와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지방 창업을 통한 재생 모델이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털사 리모트(Tulsa Remote)’는 침체된 도시 털사에 원격근무 인재와 창업가를 유입해 2018년 이후 3천명 이상이 이주했고 잔류율 70%를 기록했다. 스페인 말라가는 한때 산업 쇠퇴 도시였으나 ‘말라가 테크파크(Málaga TechPark)’를 중심으로 700여개 기업과 2만5천명 이상을 고용하며 비(非)수도권 창업 허브로 부상했다. 국내에서도 ‘빛가람 에너지밸리(Energy Valley)’가 좋은 본보기다. 한전 본사 이전을 계기로 조성된 이 산업·창업 클러스터에는 230여개 기업이 입주해 지역 일자리와 기술 생태계를 함께 키우고 있다. 공기업과 지자체, 지역 대학, 정책금융기관이 협력한 구조적 성공 사례다. 지방소멸의 해법은 ‘지속가능한 창업 생태계’에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진정한 효과를 내려면 ‘건물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성장하는 환경’에 투자돼야 한다. 지역의 미래는 건물이 아닌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역에서 머물며 일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진짜 정책의 방향이다.
사막장미는 대표적인 다육식물 중 하나로 잎보다 줄기에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줄기 밑동 모양도 좋지만 꽃이 아름다워 분화용이나 베란다 같은 곳에 만드는 실내정원용으로 종종 이용된다. 하지만 아데니움속 식물의 수액에는 독성이 있으므로 어린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물 빠짐이 좋고 햇볕이 충분한 곳에서 잘 자란다. 밑동의 둥그런 다육성 줄기는 직경 1m까지 굵어지며 키는 2m까지 자란다. 열매는 녹색으로 지름 2.5cm 정도의 크기로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녹색을 띠는 흰색, 밝은 적색이 있으며 모양은 별 모양이며 종종 송이를 형성한다. 7도 이하로 떨어지면 동해를 입으며 15도 이상은 유지해야 정상적으로 자란다. 한여름 더위나 열에는 매우 강하다. 씨앗은 익자마자 따서 19~24도의 조건에서 뿌리면 잘 발아한다. 삽목은 꽃이 피지 않은 줄기를 잘라 심고 3개월 정도 지나면 삽수에 작은 알뿌리가 형성된다. 케냐, 탄자니아, 소말리아가 고향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샤갈의 마을에 살면 좋겠네 사시사철 마음만 먹으면 눈비도 내리고 눈비에 젖지 않는 햇살도 내려와 과수나무엔 과일이 주렁주렁 먹지 않아도 배부른 동네 곡괭이를 든 농부와 거꾸로 서서 바이얼린을 켜는 여인이 붕붕 날아다니고 순결한 염소와 파란 얼굴의 남자 눈빛으로 사랑을 속삭여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샤갈의 마을은 잠들지 않아 시간과 중력을 벗어난 상상의 자유 그침이 없네 샤갈의 마을에 살면 참 좋겠네 보기 싫은 것들 보지 않고 부당한 간섭 윤리가 망가진 것들의 허세, 뿔 달린 도깨비도 오지 않고 슬픔과 증오도 없는 그대 자비로운 마음속 포근한 눈발에 묻혀 도란도란 밤새 잠들지 않아도 오롯이 꿈들이 살아나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기청 시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77년)으로 등단. ‘현대시문학’ 편집고문 시집 ‘안개마을 입구’, ‘열락의 바다’ 외 시론집 ‘행복한 시 읽기’, 산문집 ‘불멸의 새’ 외
우리 경제시스템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 시점에서 배제할 수 없는 답은 인공지능(AI)의 쓸모를 극대화하는 방법의 발견이다.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AI 성능을 확보하려면 AI 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놀랍게도 힌트는 사람에게 있다. 복잡다단한 사회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적응하려면 인간 지능의 대규모 협력으로 진화해야 했다. 집단 지능의 출현이다. 일종의 병렬 처리의 효능과 닮아 있다. AI에게 우리와 같은 도전적인 환경을 조성해 자기복제로 자기 개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흐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그 길을 제대로 가보지 않았다. 30만장 이상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이렇게 써야 우리의 생존에 유리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8년 전에 등장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대상으로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쥐어짜는 최신 연구 프레임을 유지한 채 가능할까. 천문학적으로 돈 먹는 하마에 비유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성능의 한계가 뚜렷이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으로 된 투명 감옥에 갇혔지만 애써 외면하는 형국이랄까. 맘바(Mamba), 액체신경망(LNN), 디퓨전 응용 방식, 뉴런 아키텍처처럼 대체 아키텍처를 제시하는, 미약하지만 이제 시작한 역사에 우리도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불가능해 보일수록 기회라고 생각하는 지혜로운 낙관주의자가 될 시점이다. 6월 매사추세츠공대(MIT) 임프로버블 AI랩에서 대형언어모델(LLM)이 사람 개입 없이 스스로 코드를 작성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연구 결과와 소스를 공개했다. 알파고처럼 우리가 안다고 착각한 정석이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과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오픈AI와 구글이 좋은 성적을 거둔 기술적 맥락과 유사하다. 사람처럼 자기 개선을 시작한 AI는 우리의 제조·서비스·문화·국방 역량과 결합해 혁신적인 수출상품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AI가 매일 자기 행동을 주체적으로 수정해 끊임없이 좋아지도록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즉, AI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추론할 수 있도록 메타러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누적된 지식과 전략을 인류에게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공유 형식은 AI가 만든 위키피디아 정도면 괜찮아 보인다. 또 이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사항은 AI의 오작동과 비정렬 행동(우리의 의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기만하며 인간의 부적절한 요청에 협조하는 위협적인 동작)이다. 8월 앤트로픽은 이를 위해 페트리 솔루션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두 개의 AI에이전트가 LLM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한다. 이 역시 사람의 개입은 없다. 우리의 미래는 AI가 AI를 감독하고 우리와 협력하는 시대다. 우리가 추구할 AX(AI로 전화) 전략의 기본 토대로 간주해야 한다. AI의 쓸모를 매일 극대화하는 구조를 지난달 오픈AI가 발표했다. 우리와 대화하는 순간순간에도 사람처럼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존에는 사전 학습 단계와 서비스 단계인 추론을 분리했고 자원 대부분을 사전 학습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제는 실시간으로 사용자 반응을 학습한다. 서비스 단계는 사전 학습 단계에 비해 소량의 저사양 GPU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우리의 국가AI 전략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오히려 서비스 단계에서 대량의 최신 고사양 GPU가 필요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이면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업체가 신축하는 많은 데이터센터마다 100만장 이상의 GPU가 탑재될 것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만의 AI반도체를 확보하는 데 서둘러야 한다. 지금의 이 시기를 테스트-타임 컴퓨트(test-time compute)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국가 단위에서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제작비가 3천만원인데 수조 속에서 사람이 사는 장면을 찍으려면? 수중촬영팀과 장비가 필요한데... 이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대학원 시절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가장 자주 듣고, 했던 말이다. 시나리오 속 한 장면이 현실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끝자리에 ‘0’ 하나가 필요했다. 우리는 “발품 팔러 가자”는 자조 섞인 말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창작의 의도보다 숫자의 한계가 먼저 우리를 가로막던 시절이었다. 요즘 들어 그때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필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경기도 문화의 얼굴이자 가장 유망한 브랜드로 성장시킬 분야라 믿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볼수록 제도와 구조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통합 운영의 현실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분리 독립’의 필요성을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경기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향한 애정 어린 과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경기도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개관한 경기도박물관과 2006년 문을 연 경기도미술관은 도 직영 사업소로 시작했지만 2008년 이후 순차적으로 8개 기관이 경기문화재단으로 위탁됐다. 8개의 도립 박물관·미술관을 동시에 위탁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서 경기도가 유일하다. 문제는 이 통합 운영이 효율을 앞세운 구조 속에서 각 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연간 예산은 총액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예술인 지원, 생활문화, 예술교육, 복합문화공간, 박물관, 미술관 운영까지 모두 소화해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수준 높은 전시를 기획하려 해도 예산은 늘 ‘분배의 논리’에 갇힌다. 작품 구입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전시는 소규모로 축소된다. 좋은 기획안이 나와도 초기 기획이 실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홍보와 마케팅 인력, 예산 또한 중앙의 뮤지엄들과 비교할 수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에 비유하면 정확하다. 기획력이나 열정의 차이가 아니라 구조와 자원의 차이가 만든 격차다. 세계적 관심을 모으는 K-굿즈의 흐름 속에서도 경기도 뮤지엄이 그 대열에 서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예산의 제약이 곧 기획의 제약으로, 다시 도민의 문화 향유 기회의 한계로 이어진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 친구가 부모님이 해외에서 사온 과자를 친구들에게 두 개씩 나눠 주다 마지막 친구에게 “엇, 하나만 남았네”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분배의 강박이 누군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박물관·미술관 운영도 그와 다르지 않다. 정해진 틀 안의 통합 운영만으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이제는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적 효율이 아닌 문화적 창의성을 중심에 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장소 중 박물관과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은 도시의 품격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의 얼굴이다. 경기도립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도민의 자부심이자 경기도의 대표 브랜드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분배식 예산 중심의 운영’을 반복할 것인가, ‘창의와 자율의 문화기관’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동두천시의회가 한목소리로 들고일어났다. 걸산동 주민 통행 제한에 대한 규탄이다. 주한미군을 겨냥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거칠다. ‘내 집에 가는 길을, 너희들이 뭔데 가로막아’, ‘통행권 보장 없이 한미 동맹도 없다’, ‘왜 미군 허락을 받아야 하나’. 성명서도 나왔다. “용산—케이시 기지사령부가 훈훈한 한미 상호 우호와 신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운동권의 시위 현장 구호가 아니다. 시의회 본회의장에 붙은 문구와 시의회의 성명서다. 미군에 막힌 걸산동 주민들의 통행권 문제다. 마을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 둘러싸였다.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부대를 통과하면 10분에 오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을 1시간가량 돌아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이런 상황을 헤아려 온 게 통행증 발급이다. 마을버스 이용에도 이 통행증이 있어야 했다. 6·25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이렇게 지냈다. 주민은 미군을 인정한 것이었고 미군은 주민을 헤아린 것이었다. 이랬던 ‘70년 길’이 막힌 게 2022년이다. 새로 전입한 주민에게 통행증이 나오지 않았다. 알려진 이유는 ‘군사 보안’이다. 주민들이 따지고 들기에도 애매하다. 신규 전입 주민들이 임도로 1시간을 돌아 통행하고 있다. 동두천시가 나섰다. 실무자 회의도 하고, 협조 공문도 보내고, 기지사령관 면담도 했다. 패스를 계속 발급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전부 무시됐다. 최근 신규 전입 주민 4명도 거부됐다. 통행증 발급 불가를 확정한 셈이다. ‘군사 보안’의 내용까지 따지고 들 수는 없다. 우리도 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은 있다. 동두천 미군 부대(캠프 케이시)는 거대한 규모였다. 5개 미군 부대 군인 1만5천명, 군무원 2천800명 등 1만7천85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하 재배치로 빠졌다. 그런데 군사 보안을 더 강화하며 통행을 막는다. 이해할 수 있겠나. 70년 발행하던 통행증을 부대가 축소된 상황에서 거꾸로 막아 버린 이유가 뭔가. 동두천은 주한미군과 함께 살아온 지역이다. 미군에 대한 지역민의 정서도 친화적이다. 그런 동두천에 반미 구호가 넘치고 있다. 시의회 본회의장까지 치고 들어왔다. 안 그래도 반환기지 활용이 시원치 않은 동두천이다. 상권이 쇠퇴하고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걸산동 갈등’에 반미 구호가 붙는 정서적 배경이다. 반향이 커질 수도 있다. 빨리 풀고 가야 한다. 시, 시의회 노력만으로는 벅차 보인다. 정부가 나서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