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버리는 사회에서 돌려 쓰는 사회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 소비 방식이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재활용도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재활용 과정에서도 상당한 에너지 소모와 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탄소중립·순환경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쓰레기로 배출되기 전에 중고품으로 다시 사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국내 중고품 거래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중고품 시장 규모는 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4조원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이러한 성장은 모바일 앱 기반 플랫폼(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의 확산, 고물가 시대의 가성비 추구, 환경 인식 제고, MZ세대 중심 중고 거래에 대한 낙인 감소와 리셀문화의 일상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 기반 시장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고가 명품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중고 매장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이 직접 중고·리퍼브 제품을 수거·리세일하는 바이백(매입 후 재판매) 매장을 백화점 등에 여는 것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기반 중고품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중고거래 체험·교육을 지원해 더 많은 시민이 중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중고품 시장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상용품을 취급하는 오프라인 중고 매장도 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동네 단위 커뮤니티 기반 중고 매장이 곳곳에 자리잡는 것이다. 중고품 판매뿐 아니라 리필 제품 판매, 수리 카페 활동까지 병행하는 동네 제로웨이스트 문화의 ‘사랑방’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커뮤니티 기반 중고품 매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상품 공급망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시민 기부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크다. 기업의 재고 물품 소각을 금지하고 이 재고를 중고 매장에 기부·공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고물품 기부와 유통을 전담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공항 등에서 발생하는 압수 물품을 중고 매장에서 재판매하는 것도 공급망을 확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기업을 통한 재고물품 공급망을 먼저 구축한 후 시민의 중고품 기부나 위탁판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고품 매장 운영을 활성화하려면 세제 측면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고가 사치재가 아닌 일상 중고품 거래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거나 세율을 낮추는 인센티브를 검토할 만하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재사용 매장을 늘리는 것도 고용·복지·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6월3일 이후 지자체마다 새로운 단체장이 선출된다. 민생 위기, 환경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해법 중 하나로 지역 내 촘촘한 중고품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과제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버리는 사회’에서 ‘돌려 쓰는 사회’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며 중고품 생태계는 그 전환을 가장 눈앞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천 플랫폼이다.

[세상읽기] 망각과 매혹

망각의 뜻은 한번 알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으로 ‘잊다’와 유사한 의미의 과거의 사실과 생각과 판단에 관한 단어이고 매혹은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의 단어로 주로 시제별 당시의 현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하거나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어려움이나 고통 또는 좋지 않은 지난 일을 마음속에 두지 않거나 잊는 것이 정신적 건강 및 향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람이나 집단의 망각을 활용해야 하는 일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한 사람의 언행이나 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망각의 대상으로 한다면 사회의 작동 시스템에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주권자와 주권자의 위임에 따라 주권의 일부를 대신 행사하는 사람 내지 정치조직은 자신의 수임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주기적으로 점검받고 판단받은 후 추가 위임 여부를 판단받는다. 내 권한을 도맡아 대신 행사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데 있어 망각은 치명적이다. 망각의 대상이 10년 전의 일일 수도 있고 어제의 일일 수도 있으며 한 시간 전의 일일 수도 있다. 특정인을 매혹해 매혹당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 특정인의 권한을 대신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 것은 평가 대상이 아니지만 매혹의 내용이 거짓이나 과장이 있고 그 절차가 정당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후 망각 아닌 현타를 통해 뒤늦게나마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지만 망각의 늪에 빠지면 이러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망각과 매혹이 결합되면 망각과 매혹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매혹하거나 망각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지위를 그릇되게 유지시키거나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의 주권을 위임하고 수임인의 권한대위 행사의 내용과 과정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당시 현재 수임인에 의해 매혹돼 잘못된, 미진한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망각하지 않으면 그 잘못은 고쳐지고 이러한 관행이 정착되면 제도 도입 여부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활용하는 사람들, 알맹이 없는 매혹을 통해 권한을 얻던 사람들도 각성할 것이다. 망각의 활용은 선거 단위인 4년, 5년 단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망각의 활용은 매년, 매월, 매일, 매주, 매시간, 매분 작동하고 매혹은 당연히 매초마다 이뤄지고 있음을 조감해야 한다. 망각과 매혹의 진실을 매초마다 느낀다면 수임인은 주권자에게 모든 이해관계의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충실히 따를 것이다. 그러나 매혹당한 후 판단의 시점에 망각을 유도하는 또 다른 시도에 매혹되고 또 망각하고 또 매혹되고.... 이러한 과정이 이어지면 대의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수임인은 주권자인 위임인의 위임행위를 기다리지도 바라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권자의 주권 유지와 존속을 위해 각성해야 한다.

[경기만평] 세번째...

[사설] 단일화∙비방에 허송 평택乙, 부끄러운 줄 알라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단일화 싸움이었다. 선두권이 김용남(민주)·유의동(국힘)·조국(혁신) 후보다. 한국리서치의 지난달 24~27일 여론조사가 22%, 20%, 24%다. 그리고 김재연(진보·5%)·황교안(자유·7%) 후보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수치다. 선두권에서 단일화를 잡아내는 후보가 이긴다. 민주 진영 조합은 김용남·조국이다. 보수 진영의 그림은 유의동·황교안 단일화다. 여론 분포가 절묘하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진다. 모두의 승리공식이다. 단일화 가능성이 컸던 쪽은 민주 진영이다. 김·조 단일화는 후보 공천 직후부터 화두였다. 둘의 선거운동도 이런 흐름을 타고 왔다. 예의의 시간, 대결의 시간, 그리고 충돌의 시간이다. 작금의 상황은 상당히 악화됐다. 서로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31일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조 후보를 직격했다. “(조 후보가) 왜 민주당 가면을 쓰고 선거를 하느냐”(조승래 사무총장). 그러자 조 후보도 ‘민주당이 소리(小利)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반면, 보수 진영 분위기는 달랐다. 국민의힘이 ‘단일화 기대’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희한한 변수가 등장했다. 지방에서 시작된 ‘선거 여왕 캠페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남·충청·강원을 돌았다. 보수 결집을 지원하는 유세다. 그런데 이게 평택을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황 후보가 ‘박근혜 탄핵 배신자’ 프레임으로 키웠다. 자신은 ‘의리의 정치인’으로, 유 후보는 ‘배신의 정치인’으로 몰았다. 그동안 없던 현수막이 평택 거리에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총리 황교안-박근혜 대통령 탄핵 유의동’. 황 후보의 이 현수막이 준 메시지가 크다. 보수 단일화도 끝났다는 분석이다. 통상 단일화 분수령은 사전투표일이다. 이번에는 29일이었다. 하루 전인 28일을 단일화 시한으로 봤다. 평택을의 모든 후보가 이날을 넘겼다. 여기에 본투표일을 앞두고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상대에 대해 격해진 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유세도 평택을에서 내분 요소로 뒤바뀌었다. 후보 단일화는 정치 공학이다. 이를 쫓는 모습이 좋을 건 없다. 그 거래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 평택을이다. 각자 이익을 위한 극단의 정치다. 민주 진영은 평택 출신 아닌 2인이 그렇게 싸웠다. 보수 진영은 평택에 오지도 않은 박 전 대통령으로 싸운다. 비(非)평택 정치인 논란이 있었다. 평택 정치인의 무기력도 빈축을 샀다. 그 우려가 결국은 ‘나만 살자’는 난장 구도로 끝나가고 있다. 평택이 없었던 평택을 선거, 유권자가 어떻게 봤다고 생각하나. 전쟁통 기지촌이 서해안 국제도시로 컸다. 자동차 도시를 넘어 반도체 메카로 컸다. 역사마다 선배 평택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사설] 온갖 ‘센터 신설’ 교육 공약... 겉치레보다 기본에 집중해야

전국이 공약 현수막의 시간이다. 곳곳에서 KTX역을 신설하겠다고 한다. 고속철도가 지하철로 전락할 판이다. ‘단일화’에 목을 매던 교육감선거도 공약이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인천시교육감 후보 공약은 서로 닮아 보인다. 저마다 온갖 센터·진흥원 등 기구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간 기구 모자라 교육이 어려웠나. 3명 후보 모두 새로운 기관·센터 설립을 앞세운다. 다양한 교육 현안의 해결책이라는 설명이다. 도성훈 후보는 긴 이름의 ‘5개 권역별 인공지능(AI) 융합교육센터’ 신설을 내걸었다. ‘직업교육지원센터’도 추가했다. 이대형 후보는 ‘미래 AI 교육원’을 신설하고 ‘체육 통합 운영본부’를 발족한다. 임병구 후보는 ‘학생성장연구센터’와 ‘직업교육진흥원’을 세우겠다고 한다. 우선 방만한 기구 신설이 교육 재정을 흔들까 걱정이다. 센터 한 곳 생기면 기관장 및 직원 인건비가 고정적으로 들어간다. 시설 임대료, 사업비까지 연간 최소 수십억원이다. 이미 인천시교육청은 그간 직속 기관을 많이 늘려 왔다. 도서관을 제외하고도 AI융합교육원, 난정평화교육원 등 10개나 된다. 지난해 이들 기관의 유지·운영비로 156억원이 들어갔다. 규모가 작은 각종 센터도 이미 76곳에 이른다. 파견 교사를 포함해 이곳 직원만도 425명에 이른다. 효율성 검증과 통폐합이 필요한 판에 오히려 행정 조직을 키우려 하니 걱정이다. 현재 인천시교육청의 주 재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이 교부금도 국세 수입 감소 등으로 3년 연속 줄고 있다. 지난해엔 1천70억원 감소했다. 기구 신설로 고정비 지출이 늘면 학교 현장에 쓸 돈을 줄여야 한다. 필수 교수학습 지원비나 노후 시설 개선비 등이다. 기구 중복 문제도 있다. 공약에 내건 기구들 업무도 이미 기존 센터 등이 맡고 있다. AI, 직업교육, 체육 관련 업무도 인천시교육청 본청이나 각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담당하고 있다. 확실한 업무 차별성도 없이 센터 간판만 새로 내걸면 행정 라인만 비대해질 뿐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산정방식 변경 등으로 앞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세수만 계속 늘어나 ‘흥청망청’ 비판이 많았다. 행정 조직은 스스로 몸집을 키운다. 파킨슨의 법칙이다. 관청이 비대해지면 시민들 짐만 늘어난다. 기관 늘리기 위주의 교육감 공약은 정치판 흉내 내기다. 교육은 우리 사회 기본을 지켜 나가는 중대 과업이다. ‘튼튼한 몸, 올바른 인성의 아이들로 키우겠다’ 약속이면 된다. 겉치레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지대] 여자축구

국내에서 여자축구가 공식 대회에 첫선을 보인 건 1949년 열린 전국여자체육대회였다. 전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며 긴 침체기를 겪다 1985년 한국여자축구단이 발족한다. 대한축구협회 직할팀이었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 3년 후 여자축구 대표팀이 구성됐지만 시선은 싸늘했다. 무관심과 무지원이라는 열악한 환경 아래 선수들을 향한 여론의 조롱과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축구에 뛰어드는 선수들은 줄줄이 등장했다. 이들은 2003년 미국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이뤄내며 자신을 증명했다. 2010년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선 급기야 우승을 차지한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차지한 유일한 우승이다.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선 준우승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나왔다. 지소연(수원FC위민), 조소현(핼리팩스 타이즈 FC), 이금민(버밍엄 시티) 등 걸출한 선수들이 등장했다. 그 앞선 선배들이 황무지를 개척했다면 이들 역시 자갈길을 걸으며 길을 내왔다. 고군분투하며 길을 개척해 온 시간은 꽤 흘렀지만 이들이 수십년간 해 온 발언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가 개최된 5월은 한국여자 축구에 유례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수원FC위민과 북한의 내고향축구단의 4강전이 열린 수원종합운동장은 폭우에도 응원단과 취재진으로 가득찼다. “여자축구 경기에 관중이 이렇게 많이 오고 기자들도 많이 온 것은 처음이다. 여자축구가 재밌고 관중이 운동장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내고향축구단과의 경기에서 패한 직후 수원FC 위민의 박길영 감독이 말했다. 때마침 남자축구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인 월드컵의 계절이다. 여자축구 대표팀은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1일 괌으로 떠났다. WK리그 경기를 향한 응원과 기대, 저변 확대와 선수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포함된 지속적인 관심을 아우르는 이 당부의 말이 이제는 정말 실현돼야 하지 않을까.

[문화산책] 퐁피두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세계적인 미술관 분관이 여러 개 밀려올 기세다. 우선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르주 퐁피두 국립예술문화센터(퐁피두센터) 분관이 다음 달 정식으로 문을 연다. ‘퐁피두센터 한화’다. 63빌딩 별관 전체를 리모델링해 1천653㎡(500평)의 대형 전시관 2개를 갖춘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됐다. 스페인 말라가와 중국 상하이에 이은 퐁피두의 세 번째 글로벌 분관이다. 퐁피두센터는 비단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도 세워질 가능성이 있다. 부산시는 총사업비 1천99억원을 투입해 이기대공원에 퐁피두의 분관을 2031년 개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세간의 논란은 뜨겁다. 퐁피두센터에 지급하는 브랜드 로열티 65억원을 포함해 총지출액이 126억원으로 해마다 76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협상 과정과 시의회 심의가 비공개로 이뤄졌다는 지적까지 더해지며 실행이 일단 연기됐지만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퐁피두센터 제2 한국 분관’으로 불러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2023년경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해 사전타당성조사 용역을 실시하기도 했다. 루브르도 언젠간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때도 퐁피두센터가 함께 거론됐다. 퐁피두센터는 4억6천만유로로 추정되는 건물 보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브랜드 라이선싱 전략을 추진해 왔다고 전해진다. 1977년 개관하다 보니 건물이 낡은 탓이다. 전체 보수 비용 중 약 2억8천만유로는 프랑스 정부가 부담하지만 나머지는 퐁피두의 몫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묘책이 해외 분관 운영이고 그 타깃 중 하나가 사우디와 우리다. 퐁피두의 입장에서 한국은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스페인 북부의 쇠락한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를 통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변한 이른바 ‘빌바오 효과’가 국가지질공원이자 도시자연공원인 이기대공원에도 적용될지는 지자체가 잘 판단할 문제다. 같은 예산을 작가 지원과 생활문화에 투자할 경우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최종 판단은 기업이나 지자체의 몫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는 언제까지 세계 유명 미술관을 유치하는 데만 이렇게 논란을 벌일 것인가에 있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적인 미술관 분관이 들어서는 건 국제 문화 교류의 한 측면으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니까 논의의 초점은 해외 미술관이 국내에 들어오는 만큼 혹은 일부라도 우리의 미술관 분관을 해외에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이미 분관 유치를 위한 지자체 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퐁피두 분관을 2개 유치하면 우리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한 개쯤은 프랑스에 낼 수 있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렵다면 루브르와 바티칸에 이어 방문객 수 세계 3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의 성지’로 부상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분관은 어떨까. 언제까지 우리는 예술 수입국에 머물러야 할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횡설수설이다.

[천자춘추] 미디어 규제 완화, 선언보다 속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미디어 산업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정부는 지상파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의 낡은 규제를 손보겠다고 밝혔고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역차별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해 방송의 날을 전후해 제시된 청사진 역시 규제 혁신을 통해 국내 미디어 산업을 글로벌 무대의 주역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현장의 체감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토론회와 정책 발표는 이어졌지만 실제 변화는 미미하다. 미디어 환경은 실시간으로 바뀌는데 규제 개선 속도는 여전히 행정 절차와 부처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낡은 규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려면 국회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최민희 의원이 방송광고 종류를 단순화하고 규제 방식을 전환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입법 움직임도 시작됐다. 그러나 극심한 여야 대립 속에서 관련 법안이 언제 시장에 적용될지는 불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시행령 개정마저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방송법은 광고 허용 범위와 편성 비율 등 핵심 규제 상당 부분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중간광고 완화나 광고총량 확대 등은 법 개정 없이도 즉시 추진 가능한 영역이다. 최근 의결 기구도 정상화됐다. 이제는 지체됐던 실무 규제 완화에 전력 질주해야 한다. 의결 기구가 정상화된 지금이야말로 하위 법령 개정은 물론이고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규제 완화가 행정의 관성에 묶여 있는 사이 국내 미디어 기업은 글로벌 플랫폼과 비대칭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 생태계가 흔들리면 콘텐츠 제작 기반도 약해진다. 한류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결국 해외 플랫폼 중심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미디어 분야에도 유연한 규제 실험이 필요하다. 정부가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업그레이드 규제 샌드박스’를 추진하는 만큼 미디어 산업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부는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시행령 정비, 하위 규정 개정, 샌드박스 우선 적용 등은 지금 당장 착수 가능한 것들이다. 현장이 체감하는 변화는 선언문이 아니라 그 실행의 속도에서 나온다.

[경기시론]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 이제부터 시작

4월23일,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념비적인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바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이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명확하다.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존엄과 평등을 누려야 할 ‘권리주체’로 바라보겠다는 선언이다. 돌이켜보면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으로 출발한 우리나라 장애인 법제는 오랫동안 시혜성 지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환경의 장벽으로 정의한 이번 법안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그러나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장애인의 삶이 마법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법이 통과됐으니 이제 바로 적용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안 통과는 종착지가 아니라 이제 막 출발선을 끊은 것에 가깝다. 이번 법 역시 앞으로 약 2년간의 촘촘한 준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왜 법이 통과되고도 이토록 긴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를 ‘집을 짓는 과정’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할 과제는 ‘설계도’에 구체적인 살을 붙이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제정하는 일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은 큰 틀의 원칙과 방향성만을 제시하는 일종의 설계도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자립을 지원할지, 전달 체계는 어떻게 개편할지 등의 세부적인 알맹이는 하위 규정에 담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공청회, 부처 간 협의, 법제처 심사 등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설계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벽돌을 어떻게 쌓을지 세부 지침이 없다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위 법령이 마련되면 다음으로는 ‘자재와 인력’을 확보하는 예산 편성 및 인프라 구축 단계가 이어진다. 법에 명시된 권리를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결국 예산과 조직이다. 기존 한국장애인개발원을 ‘한국장애인권리보장원’으로 개편하고 시설 거주 장애인의 소규모 자립 공간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면 예산이 적재적소에 편성돼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 서비스가 실현되는 진짜 무대는 결국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의 장애인 지원 체계가 어떻게 바뀌는지, 관련 지역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는지 지켜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의 외형과 기둥을 세웠다면 마지막으로 ‘기존 가구 배치’를 조정하는 후속 입법과 법령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새로운 법이 들어오면 기존에 존재하던 다른 법들과의 교통 정리가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이번 권리보장법 제정에 발맞춰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을 전부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7년간 수십 차례 고쳐 쓰며 복잡해진 기존 법령과 새로운 법이 충돌하지 않도록 법 체계를 매끄럽게 다듬어야만 행정적 혼선을 막을 수 있다. 결국 법의 국회 통과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설계도를 이제 막 완성한 출발점이다. 앞으로 남은 2년은 이 설계도 위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살기 좋은 집을 만드는 작업의 시간이다. 아무리 정교한 설계도도 그 집에 실제로 살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결국 빈집이 될 뿐이다. 법은 글자로 존재할 때가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선언한 ‘권리의 주체’라는 가치가 2년 뒤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의 꼼꼼한 행정력은 물론이고 지자체의 예산 편성을 감시하는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고] 기후위기 시대, 바다 안전의 기준도 달라져야

여름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다를 찾는다. 갯벌 체험과 낚시, 수상레저와 캠핑까지 해양활동은 이제 특별한 취미가 아닌 일상 속 여가문화가 됐다. 그러나 바다를 둘러싼 환경은 과거와 분명 달라지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와 이상 기후가 반복되면서 바다의 위험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지성 돌풍과 풍랑, 짙은 안개 등 급격한 기상 변화로 인한 해양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평온하던 바다가 순식간에 위험한 상황으로 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연안활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갯바위 고립, 해루질 사고, 소형 선박 표류 같은 사고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문제는 많은 사고가 거대한 재난보다 순간적인 방심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잠깐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안일함, 기상정보를 확인하지 않는 습관, 위험구역 출입에 대한 경각심 부족이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의 경험과 관행만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재난 대응 방식도 사후 수습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얼마나 빨리 구조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정부 역시 재난안전관리 체계의 고도화와 예방 중심 안전정책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단속이나 계도 수준을 넘어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촘촘한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국민의 안전의식이 함께하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안전은 특정 기관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면 자연스럽게 안전벨트를 착용하듯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수칙 준수가 생활 속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또 출조 전 물때와 기상 정보를 확인하고 반드시 2인 이상 함께 움직이며 야간에는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장비를 갖춰야 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고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반대로 말하면 작은 실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전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 실천에서 완성된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며 바다 역시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공간 중 하나다. 변화한 환경에 맞춰 우리의 안전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바다를 찾는 모두가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을 생활화할 때 비로소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의 바다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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