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회계, 금융, 의료 등 전문직 영역에서 AI는 이미 현실이 됐고, 업무의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세무업계는 협회 차원에서 AI세무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AI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영미권 대형 로펌들도 계약서 검토·판례 분석 등에 AI를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법조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AI를 활용한 법률서비스 제공 시도에 대해 징계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징계한 데 이어 광고규칙을 개정해 변호사가 소비자에게 AI를 직접 사용하게 하거나 소비자를 AI에 연결시키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이에 법무법인 대륜은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대한변호사협회의 이중적 태도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종합업무시스템 내에 ChatGPT를 제공하며 회원 변호사들의 AI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변호사가 자신의 업무를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은 수용하면서, 고객에게 AI를 제공하는 것은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다. AI를 고객에게 제공할 여력이 없는 변호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회원 변호사들의 표를 의식해 국민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변호사 이익 중심의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범용 AI를 활용해 법적인 문제에 참고하고 있다. 슈퍼로이어, 엘박스AI 같은 서비스들은 이미 변호사를 대상으로 AI 기반 법률 리서치와 문서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변호사도, 일반인도 모두 AI를 보조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AI를 활용하게 하면 징계하겠다고 한다. 왜 일반인이 직접 검증되지 않은 범용 AI를 사용하는 것은 방치하고,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가 전문화된 AI를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징계 사유가 되는가? 대한변호사협회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의 AI 활용을 제재할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막연한 규제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법조계의 신뢰를 훼손하고 변호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더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술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회피에 불과하다. 물론 AI 도입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 개인정보 보호, 책임 소재 등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기술 도입을 막을 이유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도입하기 위해 논의해야 할 과제들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에서 AI를 바라봐야 한다. AI는 법조계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 변호사의 전문성과 AI의 효율성이 결합될 때, 법률서비스의 질은 향상되고 접근성은 높아지며,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제 대한변호사협회도 변화의 흐름에 책임 있는 자세로 동참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스타 한 명의 등장은 단순한 개인 성과를 넘어 도시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의 자긍심을 키우며 미래 세대에게 귀중한 교육·문화적 자산이 된다. 엘리트 체육은 지역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도시 브랜드를 재정의하는 중요한 힘이다. 수원특례시가 이미 다양한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여온 만큼 지금 필요한 것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다. 수원특례시의회 의원으로서 엘리트 체육을 단기 성과 중심이 아닌 지속가능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우수 선수 영입에 대한 전략적 투자다. 경쟁력 있는 선수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우수 선수를 적기에 영입하는 것은 엘리트 체육의 핵심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직장운동경기부 운영 예산을 5억원 증액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실력 있는 선수가 뛰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투자다. 우수 인재가 수원을 선택하고 수원에서 커리어를 완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엘리트 체육의 출발점이다. 둘째, 유소년부터 키우는 수원형 성장 시스템 구축이다. 외부 영입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양성한 인재가 지역에서 성장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경남 고성군은 인구소멸지역임에도 레슬링 명문 도시로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부터 실업팀까지 일관된 육성 구조를 만든 결과다. 반면 수원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세계적인 탁구선수 신유빈은 현재 화성특례시 소속이다. 단순한 이적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수원이 키운 인재를 수원이 품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행정의 시스템 부재가 원인은 아니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셋째, 지도자와 실무진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 조성이다. 엘리트 체육은 선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실력을 끌어올리고 심리적 버팀목이 돼주는 코치진과 트레이너, 실무 스태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이 여전히 ‘보조적 존재’로 취급된다. 선수뿐 아니라 현장을 움직이는 인력의 처우와 성장을 지원하는 행정으로 전환해야 엘리트 체육은 비로소 사람 중심의 정책이 된다. 이 세 가지 과제는 수원시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육청, 체육회, 지방정부가 함께 전략을 세우고 제도·예산을 통합적으로 조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관 간 장벽을 허물어야 진정한 지역 체육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필자는 수원시의원으로서 이 생태계 구축의 최전선에 서겠다. 단순히 예산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정책 설계와 제도 개선,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에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엘리트 체육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함께 키우고 자랑해야 할 자산이다. 우리 아이들이 수원에서 운동을 시작해 국가대표가 되고, 다시 수원에서 후배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끝까지 뛰겠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계 기업과의 소송에서 이겼다. 론스타가 정부에 제기했던 4천억원 소송이다. 국가분쟁해결절차(ISDS) 취소위원회의 결정이다. 정부는 지출한 소송비용 73억원까지 돌려받게 됐다. 소송 평가로 따지면 일방적 승소다. 우리에게 ‘먹튀’의 대표적인 사례로 익숙한 론스타다. 많은 국민을 허탈하게 했던 국익 침탈의 당사자다. 이들로부터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것이다. 국무총리가 긴급 회견으로 발표했다. 모두 고생한 결과다. 공(功)은 대한민국 정부 모두의 것이다. 특히 법무부 담당자들의 노고가 컸을 것이다. 일부 정치권은 공적 다툼을 시작했다. 예상 못한 건 아니다. 다 부질없는 경쟁이다. 국정은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나. 모든 게 연속이고 종합이다. 그래서 더 보이는 아쉬움이 있다. 20일째 진행 중인 소송 정쟁이 있다.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의 항소 포기다. 중형과 무죄가 혼재된 1심 선고에 검찰이 승복했다. 여론이 주목한 건 범죄수익금 환수 문제다. 7천여억원이 날아갔다. 정확히 보면 ‘7천여억원 환수 기회’가 사라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후 여론을 분노케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일부 피고인의 재산권 행사 착수다. 검찰의 압류 해제 신청 등 재산 지키기를 보란듯이 시전했다. 이를 접하는 서민 정서가 어떻겠나. 허탈과 분노로 치닫고 있다. 국민 눈높이는 국정 평가의 기준이다. 그 높이는 현상과 기억으로 정해진다. 항소 포기가 불과 20여일 전이다. 그 불편한 현상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업무다. 정치적 공방은 따질 필요 없다. ‘7천800억원’ 여론이 법무부 검찰을 향하고 있다. 이런 때 나온 론스타 승소 소식이다. 분명 법무부의 공이다. 그럼에도 ‘7천억’과 ‘4천억’을 연결하는 게 국민의 시선이다. 공교롭게 이어지는 이름까지 있다. 박영수 국정농단 특검이다. 2006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문제를 감사원이 지목했다. 자기가본비율(6.16%)을 지나치게 낮게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의 부실 과장, 정부의 검증 없는 인용을 찾아냈다. 대검 중수부가 이를 넘겨받아 수사했다. 당시 중수부장이 박 전 특검이다. ‘불법 매각’ 결론을 내면서도 ‘금융당국 책임’은 가리지 못했다. 하필 그가 대장동 사건과는 ‘50억 클럽’으로 연결됐다. 이런데 굳이 총리가 긴급 발표까지 해야 했나. 정확한 결정문도 도착하지 않았다는데. 굳이 ‘내가 했다’며 공적 과시를 해야 했나. 가볍디 가벼운 전직 장관 언사다. 국가 손익조차 달달한 선거 소재로 채용하는 현실 정치의 모습이 안타깝다.
인천 일부 새마을금고가 자본잠식 위기라고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 실패로 부실채권이 쌓인 탓이다. 이들 부실 채권을 메우려 적립금을 소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익잉여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다. 이대로면 올 하반기 자본잠식이 불가피해 조합원 피해가 우려된다. 올 상반기 인천 새마을금고 정기공시를 보면 2곳 금고의 총자본(자본합계)이 대폭 줄었다. 관교문학새마을금고와 도화3동새마을금고다. 2024년 상반기 관교문학금고의 자본은 39억원이었다. 올 상반기는 9억원에 불과했다. 1년 만에 76%나 급감한 것이다. 주로 부동산 PF 대출 부실채권 때문이다. 도화3동금고는 2024년 상반기 자본이 31억원이었다. 올 상반기에는 9억원으로 떨어졌다. 1년 만에 3분의 1로 토막난 것이다. 미추홀구에 있는 이 금고는 전세사기 사태가 부실채권을 키웠다고 한다. 현재 이들 금고는 그간 벌어놓은 적립금으로 부실채권 매각 손실을 메우고 있다. 이 때문에 관교문학금고의 올 상반기 이익잉여금은 마이너스 51억원이었다. 도화3동금고의 이익잉여금도 마이너스 20억원에 이른다. 금융권에서는 이 추세라면 두 곳 금고의 자본이 올 하반기 ‘0원’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부실채권을 계속 매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부실채권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관교문학금고가 15.4%, 도화3동금고가 17.5%다. 인천 전체 새마을금고 평균치(10.3%)를 크게 웃돈다. 두 곳 금고가 자본잠식에 빠지면 9천여 조합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적립금을 모두 소진하면 조합원 출자금까지 손실 보전에 쓰이기 때문이다. 이들 금고 경영부실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다. 그런데도 경영 개선은 지지부진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2020년부터 이들 금고에 경영 개선을 요구해 왔다. 4월에는 경영실태평가 종합4등급(취약)에 따른 경영개선조치를 통보하기도 했다. 위험자산 처분과 분사무소 폐쇄, 불필요한 예산 감축 등이다. 다음 단계는 사실상의 업무 중단인 경영개선명령이나 통폐합, 청산 등이다. 새마을금고는 여느 시중 금융기관들과는 다르다. 1960년대부터 서민, 소상공인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외환위기 때도 신인도 1위를 자랑했다. 자본잠식 사태는 개별 금고의 문제를 넘어 새마을금고 전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고위험 고수익의 PF 대출 늪에 빠진 것부터가 문제다. 처음처럼, 서민금융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조수석에서 하는 말이다. “앞차와 너무 가깝다.” “속도가 너무 빨라.” K가 앉으면 이런 말을 한다. “속도가 너무 느려.” “다른 차가 끼어들잖아요.” 그제는 내가 말을 바꿔봤다. “내 속도의 기준이 60대였다.” “너는 그냥 20대 속도로 달려라.” 스물 아홉 K가 의외라는 표정이다. “내 입장에서 말해주시니깐 좋아요.” 아들의 칭찬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우쭐대며 부탁 하나를 던졌다. “평소보다 2m만 거리 두자. ‘효도 거리’.” 잘 안다. 녀석은 따르지 않을 거다. 나도 저 땐 막 달렸다. 그게 20대 속도였다. 이제는 못한다. 인정하고 말고 없다. 세상이 고령 운전자 능력을 정의했다. 하나, 시력이 저하된다. 야간 시야 감소, 사물 인지 저하, 주변 시야 축소.... 둘, 청력이 저하된다. 경고음 지각 지연, 후방 접근 차량 인지 지연.... 셋, 운동 능력이 저하된다. 반응 속도 저하, 손발 조작 능력 둔화, 목 허리 회전 제한.... ‘나는 괜찮다’고 토 달아야 부질없다. 브레이크 반응 속도(Reaction Time)라는 게 있다. 유사시 생명을 좌우하는 반응 속도다. 20~50대 평균이 0.7~1.0초다. 65세 평균은 1.2~1.5초다. 0.5초 차이다. 좀 소름 돋게 설명해보자. 시속 60㎞에서 이 차이면 8m를 더 가야 한다. 그 8m 안에 장애물은 그냥 치고 간다. 혹시 그 장애물이 사람이라면.... 그 기준 나이가 가차 없다. 65세. 나라가 65세 되면 면허증도 반납하라고 한다. 10만원 교통카드와 바꾼다. 괜히 에둘렀다. 하려는 말은 급발진이다. ‘고령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 정말 듣기 싫다.’ 억울한 측면을 안다. ‘급발진 주장’ 통계다. 2014~2024년 6월까지 456건이다. 거기 연령대 분포가 이렇다. 20대 1.8%, 30대 7.6%, 40대 20.2%, 50대 27.3%, 60대 30.8%, 70대 11.6%, 80대 0.8%다. 50세 이하가 56.8%다. 60대 이상은 43.2%다. 젊은 층의 급발진 주장이 더 많다. 세상은 고령자 급발진 주장이 전부처럼 말하는데. 억울해 할 수 있다. ‘60, 70대가 봉이냐.’ 그런데 여기엔 착시가 있다. 운전면허 소지자 비중을 보면 달라진다. 60대 이상이 32%다. 50대 이하는 68%다. 50대 이하가 60대 이상의 두 배다. 그런데 급발진 주장은 비슷하다. 무슨 얘긴가. 60대 이상의 급발진 주장율이 두 배인 거다. ‘60·70대 운전자’로 시작하는 ‘급발진 주장’ 보도가 괜한 게 아니다. 여기에 일부 대형 사고가 남겨 놓은 선입견도 있다. 부천제일시장 시민 21명 사상 질주(67세), 서울시청역 행인 9명 사망 역주행(69세).... 대형 사고 때마다 ‘고령 운전자’의 일성이 있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앞서 본 396건을 다 조사했다. 단 한 건도 급발진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일단 ‘급발진’을 던지고 보는 것이다. 이래서 얻어지는 게 뭐가 있다고. 본인은 감옥 가고 패가망신한다. 여기에 애먼 고령자들에까지 멍애를 씌운다. 사고 때마다 고령자 운전자 옥죄는 대책이 강화된다. 고령자 면허 갱신 단축(3년), 고령 운전자 교육 신설(1시간).... 그래서 듣고 싶지 않다. 전부터 쓰려고 했다. 그런데 못 썼다. 고령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써도 될 나이가 됐다. 이렇게 결론 내려 했다. ‘운전대를 놓자. 그것도 고령의 멋이다.’ 그러나. 이렇게 못 쓸 현실을 본다. 운전이 생계인 고령 운전자다. 그들은 운전해야 산다. 폐지 모아야 살고, 용달 몰아야 산다. 이런 고령 빈곤에 손도 못 대는 나라다. 어떻게 ‘운전대 놓자’고 제안하겠나. 오늘 결론은 그냥 열어 두고 끝내자. 主筆 김종구
우리나라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13년간 벌여 왔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승소했다. 당초 판정에서 인정됐던 우리나라의 배상 책임이 모두 소멸됐다는 내용으로, 현재 환율 기준 약 4천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이 ‘없던 일’이 됐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라고 말했다. 그의 발표 내용처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부터 한미중일 정상외교, 관세 협상 타결에 이은 쾌거”가 맞다. 이는 단순한 승소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경제적 손실을 잠재우는 동시에 재정건전성과 주권 회복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잘한 일은 잘한 일이고, 축하할 일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론스타 사태에서 보듯 한국 경제 구조의 취약성과 경제 교육 미흡이라는 문제가 잔존한다는 점에서 경계의 시선을 더하고 싶다. 론스타 사태처럼 국제투자자가 매각 지연, 절차 모호성 등을 이유로 ISDS에 나서는 건 우리나라 분쟁 대응의 구조적 허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된 소송 대응에 막대한 역량을 장기간 투입했고 전문 전략과 일관된 시스템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또 다른 ‘제2의 론스타’ 분쟁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더욱 단단하고 안전한 사회망이 요구된다. 또 외국계 사모펀드와의 소송이 반복되는 가운데 국민의 금융·투자에 대한 이해 수준도 중요하다. 국민의 이해 정도가 낮으면 여론은 단순한 ‘공격자—피해자’ 구도로 편향될 수 있다. 정책 결정자도 감정적 상황에 휘둘릴 수 있고, 이는 정책을 설계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번 건과 같은 상황에서 대중의 정책 이해와 사회적 수용력도 더 넉넉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승소는 끝이 아니라 점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투자분쟁은 제도와 교육, 정책 일관성이 함께 작동할 때 최소화된다. 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그저 분쟁의 승패에 머물고 말 게 아니라 경제 체계의 안정성을 쌓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레인스쿨 콘테스트’와 ‘국제 레인캠프’를 마치고 돌아왔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학생들이 빗물을 주제로 영상·포스터·발표 경연을 펼치는 현장은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빗물을 모아 정화하고 이를 스토리와 미디어로 표현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국적과 언어를 넘어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바로 ‘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경기도가 떠올랐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다문화 가족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결혼이민자, 외국인 근로자, 이주민 자녀까지 포함하면 70만명이 넘고 다문화 학생은 이미 1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상당수가 메콩지역 출신으로 모두 비와 함께 살아온 ‘몬순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같은 교실에서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서로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레인스쿨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빗물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이다. 말이 조금 서툴러도 눈과 손으로 배우는 활동이기에 다문화 학생들에게 특히 큰 힘을 발휘한다. 빗물 실험, 영상 촬영, 포스터 제작 같은 참여형 수업은 언어 부담이 적고 재미가 있어 몰입도가 높다. 이 즐거움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세우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한다. 다문화 학생들이 이런 활동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하다. 고향의 빗물 이야기와 전통 춤·노래를 발표에 담을 수 있고 한국 학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문화적 코드여서 쉽게 어울릴 수 있다. 무엇보다 영상과 정보기술(IT) 활용은 어른들보다 오히려 학생들이 더 능숙하다. 스마트폰 촬영, 쇼츠 편집, 포스터 디자인은 이들의 강점이다. 참가자들이 만들어낼 스토리와 작품은 기존의 교육 방식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다. 다문화 학부모 역시 이러한 활동을 환영할 것이다. 아이가 언어 부담 없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것이고 자신의 문화가 존중받는 경험을 하며 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도 커질 것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활동만큼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은 없다. 우리도 레인스쿨을 시작하자. 몬순의 경험을 가진 다양한 가족이 모여 사는 경기도는 이 프로그램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지역이다. 비가 새로운 연결의 언어가 되고 학생들의 이야기가 솟아오르는 경기도를 기대한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제11대 경기도의회 후반기 농정해양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경기도 농어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농업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이며 농촌은 생명과 먹거리를 책임지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농촌의 가치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지원을 넘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고민 속에서 주목하게 된 것이 ‘워케이션(Workation)’이다. 일과 휴식을 병행하며 자연 속에서 업무에 집중하는 새로운 일의 방식이다. 원격근무가 일상화된 지금, 워케이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지역에 새로운 사람과 자원을 불러들이는 정책적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농어촌은 바로 이 변화의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농어촌은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을 넘어 쾌적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업무가 가능한 장소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 위주의 단기 체류에 머물고 있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제는 머물고 일하며 쉼이 공존하는 농어촌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천의 산수유마을은 농촌 숙박공간에서 업무와 여가를 병행하는 체류형 워케이션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경기도는 ‘체험휴양마을 활성화 사업’에 선정된 10개 농어촌 마을에 마을당 최대 5천500만원을 지원,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해 도시민 유입과 지역 소득 창출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경기도 농어촌 일휴양연계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조례안은 농어촌형 워케이션의 기반을 구축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근거를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 경기도 전역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전략적 정책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어촌 워케이션은 도시민에게는 쉼과 영감을, 농촌에는 활력과 지속가능성을 제공하는 상생 모델이다.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산업과 문화, 자연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경기도에서 농어촌 워케이션은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일과 쉼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사람과 마을이 함께 성장하는 변화가 시작된다. 경기도 농어촌이 그 중심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지역의 적극적인 참여가 함께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극장 산업의 침체는 팬데믹 이후 변화한 관객성과 밀접하다. 팬데믹 동안 OTT에서 장르성이 뚜렷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한 관객은 더 이상 극장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돈과 시간을 들여 외출할 만큼 확신이 드는 작품이 아니라면 발걸음은 집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 클릭 한 번으로 시청을 시작하고 재미가 없으면 바로 멈춘다. 편리하지만 공허한 풍경이다. 그래서 화제도 빠르게 불붙고 금세 꺼져 버린다. 이 환경을 위기로 보는 시각이 크지만 또 다른 변화를 품고 있다. 극장의 필연적 쇠퇴 속에서도 관객은 더 신중하게 영화를 고르고 더 깊게 작품을 만난다. 유행 따라 소비하던 방식은 힘을 잃고 영화를 하나의 세계로 대하는 시네필의 태도가 새로 부상하고 있다. 2025년은 독립예술영화가 작품성과 관객 동원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만든 해처럼 보인다. 계절마다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을 품은 영화들이 극장을 지켜냈다. 올해 큰 울림을 준 작품들은 ‘아침바다 갈매기는’(박이웅), ‘여름이 지나가면’(장병기), ‘3670’(박준호), ‘3학년 2학기’(이란희), ‘세계의 주인’(윤가은), ‘사람과 고기’(양종현) 등이다. 이 영화들은 사회적 소수자와 노동계급을 중심에 놓고 현실의 문제를 진지한 리얼리즘으로 응시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젊은 어부를 위해 침묵을 택하는 괴팍한 노인을 따라간다. 양희경·윤주상 등 중견 배우들의 앙상블, 이주 외국인 여성과 청년 노동자의 삶이 교차하며 바닷가 마을의 비극과 이웃의 연대가 잔향을 남긴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소년들이 겪은 한여름 해프닝을 통해 ‘어른의 규칙 밖’에서 벌어지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10대 소년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3670’은 탈북한 게이 청년이 정체성을 찾아 게인 친구들과 만나다가 고립및 상처와 맞닥뜨리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어디에나 살고 있을 이웃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3학년 2학기’는 특성화고 실습생의 노동 현실을 조용히 파고든다. 대졸 중심의 고용 구조에 가려진 청소년 노동 문제를 진지하게 드러낸다. 올해의 영화로 불릴 만한 ‘세계의 주인’은 피해자다움의 허구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큰 상처를 겪은 여고생이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를 스스로 증명해 내는 기특한 영화다. ‘사람과 고기’는 박근형, 장용, 예수정 등 노년 배우들의 힘으로 빛을 발한다. 평생 열심히 살았으나 고기 한 점 맘 편히 먹지 못하는 노년이 된 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은 웃음과 슬픔이 묘하게 섞인 해방감을 안긴다. 이 여섯 편의 영화는 스펙터클보다 인물의 심리와 관계를 좇으며 도파민 소비에 길든 감각을 향해 거꾸로 나아간다. 여백을 남기고 인위적 연출을 줄였으며 절제된 대사와 현장 사운드, 침묵의 리듬을 내세운다. 로컬의 감각도 핵심이다. 지역 소도시, 공장, 학교, 바다, 골목 같은 장소가 익숙하면서도 갇힌 공간처럼 그려지고 그 안에 삶의 무게가 켜켜이 자리 잡는다. 교훈보다 체험과 공감을 중시하는 내러티브다. 천만 관객 영화는 신화가 됐고 중심이 흔들리자 작은 영화들이 균열을 만들고 있다. 한국 영화는 플랫폼 시대에 더 작고, 더 느리고, 더 일상적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산업은 위축됐지만 감각은 깊어졌고 영화의 폭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쇠퇴가 아니라 조용한 반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