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는 질문이 참 많았다. 사소한 호기심이 매일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험과 취업, 성과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우리의 배움은 어느새 ‘생존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곤 했다. 안다는 즐거움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바꿔 놓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지식은 흐릿하던 세상의 해상도를 선명하게 키워준다. 길가의 들꽃 한 송이도 그 이름을 알고 나면 특별한 존재가 되듯 배움은 메마른 일상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사람 관계도 예외일 수 없다. 더군다나 속을 터놓는 사람과의 대화는 때로는 책을 읽는 즐거움이나 영화 속 이야기보다 흥미롭다. 반대로 모른다는 것은 두렵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집착은 결국 현재의 우리를 과도한 긴장 상태로 몰아넣곤 한다.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면서 이뤄낸 성장은 사실 ‘모른다’는 두려움의 문을 열고 나아갔을 때 시작됐다. 처음 걸음마를 떼던 아이는 넘어질지를 알지 못했다.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뜨던 순간도,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던 순간도 우리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모든 결말을 알고 있었다면 우리의 삶은 지독하게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른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공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세상을 향한 진짜 호기심이 시작되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겸손이 생겨난다. 삶의 경험이 쌓여도 채워지지 않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은 사람을, 지식을, 앞으로 다가올 어떤 것들을 ‘모른다’,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볼까 한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의 첫 장을 펼치며 설렜던 그 기분으로 하나하나 마주할 용기를 가져본다.
필자는 부정선거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다. 필자가 서두에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이유는 사전투표에 관한 의견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전투표는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는 제도는 아니다. 일본 역시 사전투표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번 선관위의 어처구니없는 실책으로 인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부정선거 주장 세력은 주로 사전투표 폐지를 요구한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전투표를 둘러싼 잘못된 주장이 상당수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사전투표를 통해 투표율을 높이려던 효과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득표수 오기(誤記) 등은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렸음이 분명하다.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하락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면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할 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선관위의 실책이 불러온 위기를 감안하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할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사전투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선거를 보면 선관위의 실책은 주로 사전투표 과정에서 발생했는데 이런 실책이 부정선거 주장과 연결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투표가 투표율 제고에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전투표가 부정선거론자들에게 단골 소재로 거론되는 데다 선관위 인력만으로 모든 사전투표소를 빈틈없이 관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까지 고려하면 이제는 투표율 제고만을 기준으로 제도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선거 관리의 정확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부정선거 주장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사전투표제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예컨대 본투표 기간을 이틀이나 사흘로 늘려 실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사전투표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빈 투표용지에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을 직접 적어 넣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어 사전투표를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이 거의 없는 편이다. 독일 역시 ‘공공성은 공개성에서 비롯된다’는 원칙에 따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전자투표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결정을 내린 이후 아날로그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도 이런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투표율 제고와 투·개표의 신속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지금 상황에서는 신속성이나 투표율보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쪽을 우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에 발생한 선관위의 엄청난 실책을 완전히 ‘원상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투표를 포기하고 집이나 일터로 발길을 돌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없고 출구조사 결과 발표 이후 투표한 유권자들의 선택이 출구조사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사회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동시에 일부 세력이 부정선거를 주장할 여지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1910년 노먼 에인절은 ‘거대한 환상’에서 강대국들의 경제가 깊이 얽혀 전쟁은 이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고 훗날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4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가 틀려서가 아니다. 전쟁이 모두에게 손해라는 분석은 옳았지만 무너진 것은 ‘상호 의존이 곧 평화’라는 낙관이었다. 1996년 프리드먼이 설파한 ‘골든아치 이론’-맥도널드가 있는 두 나라는 싸우지 않는다-역시 코소보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너졌다. 경제적 상호 의존은 전쟁의 대가를 키울 뿐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연결은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가꿔야 의지할 만한 자산이 된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저물었다는 평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무는 것은 ‘시장이 알아서 세계를 엮어주고 지켜 준다’는 믿음이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의 필요성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일수록 전략적 국제 관계·연결이 더 중요하다. 연결 설계를 위해 관계를 두 층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하나는 하드파워(hard power)가 작동하는 외교·안보·경제 영역으로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할 관계다. 이제 오래된 동맹인 미국조차 관세, 투자, 비자 앞에서 치열한 협상 상대가 됐다. 한국은 동맹을 존중하는 동시에 이번 대통령 유럽 순방에서 유럽연합(EU)과 디지털 통상협정을 맺고 안보 협력을 강화했으며 K-방산은 유럽을 넘어 중동, 동남아, 남미로 파트너십을 넓힌다. 냉정하게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만만치 않은 협상을 동반하며 전략적 다각화가 중요해진 관계다. 또 하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넘어 ‘상생’으로 가는, 문화·스포츠와 교육·연구 연결이다. 진행 중인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한국, 미국, 태국 등의 다국적 케이팝 스타들이 무대를 누비고 멕시코 팬들은 2018년 월드컵의 인연(?)으로 한국인을 ‘형제’라 부른다. 또 최근 한-벨기에 정상회담에서 협력의 사례로 ‘겐트대 송도 글로벌캠퍼스’가 거론됐다. 함께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지식과 인재, 문화적 연결이라는 오래가는 자산을 남긴다. 미국 조지메이슨대, 뉴욕주립대, 유타대와 벨기에 겐트대가 모인 인천글로벌캠퍼스(IGC) 같은 모형은 지속적으로 키워가야 할 다변화된 상생 네트워크다. 그렇다면 이 두 층에 대한 설계는 무엇에 근거해야 할까. 답은 사실(fact)이다. 좋은 전략은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 위에 서며, 역사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사실의 창고다. 세계대전도, 구한말 한반도가 강대국의 셈법에 휩쓸려 버린 경험도, 최근 유럽과 중동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머릿속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이기에 오늘의 나침반이 된다. 현 국제 정세가 전례 없다는 평가도 있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달 말 조지메이슨대에서 열리는 제35회 세계사학회(WHA) 연례총회-‘닫힌 국경과 글로벌 연결: 세계화 이후의 세계적 삶’-가 단순한 학술 담론이 아닌 이유다. 세계적 역사학자들이 송도에 모여 역사적 사례에서 오늘에 맞는 ‘국제화의 길’에 대한 통찰을 제시할 것이다.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 대화의 결론은 분명하다. 연결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보면서 미래를 위한 가장 적합한 연결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일이며 문화, 교육, 경제를 잇는 국제화의 허브를 송도에서 만들어 갈 일이다.
코로나 때 일이다. 갑자기 봉쇄령이 내려지자 준비하던 전시와 강연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1년 뒤 봉쇄령이 풀렸지만, 여전히 작가들과 미술관은 관객 프로그램에 주저하고 있었다. 갇혀있는 동안 가장 큰 답답함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관계의 소중함’을 절감한 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우리에겐 어떤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어렵게 마련한 강연…. 나는 관객 노쇼를 걱정했지만, 30여 명의 관객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 나만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지…'. 그 어느 강연보다 관객과 나는 그 순간을 만끽했고, 모두가 반가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큐앤에이 시간 때, 중년의 한 관객이 던진 질문이 아직까지 머리에 남아있다. “저는 오늘 여기서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좋은데, 우리는 왜 외로울까요?”. 물론 나는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한국은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건만, 내 주변엔 외로움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들 곁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주인공 황동만은 10년째 데뷔조차 못 하는, 소위 못 나가는 영화감독이다. 친구들은 그를 창피해하고, 그는 그들에게 존재감을 인지시키고 불안은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지껄인다.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혼자인 동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비호감에 가까운, 수다스럽고 불편한 모습이었지만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를 싫어하는 지인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이를 안타까워한 친구가 그를 억누르려 하자 자신을 비난한 성공한 그들에게 따지라 한다. “나 싫어하는 놈들에게 왜 내가 잘해야 하는데?”. 하긴 동만은 조금은 부끄러울 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에겐, 더없이 사랑스러운 놈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수년 전 그 관객에게 하지 못한 답을 찾은 듯했다. 동만은 ‘보여지는 나’와 ‘실제의 나’의 간극이 거의 없다. 약점인 불안조차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감추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위해 우리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와 태도, 실력을 만들어간다. 나답지 않은 일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인기인이 되어 주변에 사람이 많아져도, 우리는 왜 여전히 외로운 걸까? 그건 내면에 감춘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를 진짜 ‘나’인 줄 착각하게 되면, 진짜 ‘나’는 사라지길 바라며 외면하기 쉽다. 그렇게 내게서 외면받은 ‘나’는 외로움 속에 홀로 남겨진다. 결국 이 알 수 없는 외로움은 내가 외면해 온 ‘본래의 나’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자신감 있고 예의 바른 나도 ‘나’지만, 성급하고 인내심 적고, 욱하는 나도 ‘나’인데, 후자는 늘 감추고 억누르며 창피해하는, 황동만 같은 찌질한 아이로 취급한다. 그렇게 상처받은 자아가 삐딱하게 구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아이를 외면하지 말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바라봐주면 어떨까. 자신에게 작은 호의를 보이는 누군가에게 이 아이는 자신의 전부라도 내어줄 것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답해줄 것이다. 우리 외로움의 해결은 내 안에 외면하고 있는 ‘나’를, 내가 보살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파주 NFC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지다. 태생부터 국가대표 공식 훈련장이다. 남해 스포츠파크는 관광을 접목한 시설이다. 겨울철 훈련이 가능한 기후가 장점이다. 목포·창원 축구센터에도 지자체의 기대가 크다. 용인시축구센터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 축구 유소년 육성의 메카다. 2003년 개장 이후 그 성과가 기록으로 증명된다. 국가대표 44명을 배출했다. K리그 진출 선수도 120명 이상이다.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성공한 모델 가운데 하나다. 이 시설이 처인구 운학동으로 이전을 준비 중이다. 기존 센터는 SK하이닉스 산단에 수용됐다. 새로 마련된 부지는 7만5천524㎡, 건물 연면적은 4천617㎡다. 500억여원의 용인시 예산이 투입된다. 기존 센터가 시설 노후화와 열악한 환경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새롭게 단장할 계기가 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새 부지 인근 주민의 반대다. “교통 지옥 각성하라”, “주민 무시 센터 반대한다”.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그 속에 주민 뜻이 담겨 있다. 반대를 정리해 보자. 교통 혼잡, 소음, 야간 조명, 차량 증가, 시설 확장 가능성 등이다. 여기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교통체증이다. 선수단 버스, 학부모 차량, 대회 참가 차량 증가를 걱정한다. 여기에는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다. 살폈듯이 용인시축구센터는 유소년 육성 시설이다. 전지훈련에 수백개 팀이 몰려오는 곳이 아니다. 수십개 축구 대회가 개최되는 곳도 아니다. 기존 센터에서 축적된 교통량 경험치가 있다. 그런 통계를 토대로 논의해야 한다. 근본적 교통 대책이 선결돼야 할 필요조건임은 물론이다. 진입도로 확장, 셔틀버스 운행, 주차 공간 확보, 버스 동선 분리 등이 제시되고 토론될 수 있다. 여기에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도 필요하다. 주민 축구교실 운영, 운동장 개방, 생활체육 우선 이용권, 건강 프로그램 등이 있을 수 있다. 주변 개발에 대한 미래 청사진 토론도 필요하다. 센터 건립 이후 지역 변화를 불안해하는 걱정이 많아서다. 모두 시와 주민이 만나 토론할 문제다.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선전하고 있다. 온 국민이 다시 축구로 하나 되고 있다. 4년마다 반복되는 축구의 시간이다. 지자체가 축구와 연계하려는 노력은 이래서 계속된다. 지자체 축구센터 운영이 대표적이다. 앞서가는 지역도 있고, 모범적인 지역도 있고, 고전하는 지역도 있다. 용인시는 유소년 육성 기능이다.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렇다고 주민이 이 역할을 수긍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반문할 수 있다. 용인시도 대책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도로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센터를 잘 짓는 것도 행정이고, 반대를 설득하는 것도 행정이다. 두 행정 모두를 충족하는 용인시를 기대한다.
요즘 인천시민들이 식당에서 e음카드를 서로 꺼내려 한다. 20%를 돌려주는 캐시백 영향일 것이다. 이전 5%, 10%에서 지난달부터 푸짐해졌다. 월 사용 한도액도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늘었다.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로 더 연장된다. 8월부터 3개월 더 이어진다. 한도액도 100만원으로 뛴다. 선거 한참 이전, 박찬대 민주당 예비후보가 먼저 꺼냈다. 당선되면 ‘민생회복 100일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e음카드 혜택이나 산후조리비 지원 확대 등이다. 유정복 예비후보도 가만 있을 수 없게 됐다. 당장 ‘5~7월 캐시백 20%’ 시행에 들어갔다. 선거도 끝나고 이제 실증과 실천의 시간이다. 그런데 인천시 곳간을 들여다보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박찬대 당선인의 ‘민생회복 100일 프로젝트’에는 3천억원 정도 필요하다. 당초 박 당선인은 지방채 발행 없이 하겠다고 했다. 불용·이월 예산 구조조정과 하나금융 본사 이전에 따른 세수 1천억원 등의 방안이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보통교부세 증액도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인천시 가용 재원은 1천500억원 안팎이라고 한다. 세외수입, 국고보조금, 예비비 등을 합친 금액이다. 하나금융 본사 이전에 따른 취득세, 지방세 등은 이미 올해 예산에 반영한 상황이다. 인천은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어 반도체 세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인천시가 하반기 추가 편성해야 할 군·구 재정교부금이나 버스준공영제 지원금 등도 수천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민선 8기의 현금성 복지사업도 인천시 재정을 옥죄는 상황이다. 천원유니버스, 청라하늘대교 통행료 감면 등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방세 수입 증가도 기대난이다. 인천시는 우선 연내 집행이 어려운 토지보상비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인천시 안팎에서는 민선 8기 사업의 조정과 지방채 발행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반기 예정의 75세 이상 무료 승차권 지급이나 타 시·도민 대상 여객선 운임 지원 사업 등이 조정 대상이다.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지방채 발행 없는 추경’을 강조했다. 그러니 취임 초부터 지방채 카드를 꺼내 들기도 쉽지 않다. 처음부터 두 마리 토끼 잡기 과제다. 공약도, 재정건전성도 지켜내야 한다. 당선인의 정치력과 대정부 협상력에 거는 기대감도 있다. 결국 국비 확보와 불요불급 예산 구조조정이 해결책일 것이다. 그나저나 11월 이후 캐시백이 확 줄어들 것도 문제다. 사정도 모르는 소시민은 그냥 ‘20% 유지’를 바랄 테니까.
6·3 지방선거에서 사상 초유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 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출국 금지 조처가 내려지는 등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서울시장선거에서 시작된 논란은 수도권은 물론이고 타 시·도로 번져 나갔고 경기도교육감선거의 경우 성남은 아예 후보별 개표 결과가 반대로 입력되는가 하면 광주에서는 중복 입력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단체장과 시·도교육감선거에서 발생한 오류들이 선거 당락을 뒤집을 정도까진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일부 국민이 출구조사 결과가 도출된 이후 투표에 참여하게 돼 참정권을 침해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검경 합동 수사와 국정조사 과정에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견제받지 않는 조직과 권한이 어디까지 부패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사건을 계기로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갖게 됐다. 헌법, 권력기관의 대표격인 ‘5부 요인’이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관리위원장인 이유도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를 관리하는 헌법기관으로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선관위는 ‘가족회사’ 논란이 일 정도로 불투명한 채용 구조, 대형 선거마다 반복되는 무더기 휴직 논란, 지자체 공무원 간 갈등을 반복하며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샀다. 무소속 한동훈 국회의원이 당선 직후 ‘선관위 직원의 선거철 휴가·휴직 제한법’ 발의를 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그간 착실하게 쌓인 선관위의 나태함과 무능은 헌정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대규모 참정권 침해 사건을 일으켰다. 선거가 신뢰를 잃으면 민주주의의 근간 훼손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에 대한 ‘해체 수준의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지난 5월의 봄밤, 화성행궁광장은 수천개의 연등으로 물들었다. 그날의 광장은 단지 부처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의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서로의 다름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공감의 장(場)이 됐다. 연등회는 본래 부처의 탄생을 기리는 불교의 전통 의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연등회는 종교 내부의 행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두의 소망과 위로를 담는 상징이 됐다. 사람들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지친 삶을 위로받으며 저마다의 마음을 담아 등을 밝힌다. 그렇게 연등의 불빛은 시대를 지나며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문화적 풍경으로 확장돼 왔다. 종교는 인간에게 숭고한 가치와 삶의 위안을 전한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 다른 신념 사이에서 이해보다 경계가 앞서는 순간을 낳기도 하며 쉽게 넘나들지 못하는 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난 수원 연등회에서 펼쳐진 ‘종교 간 화합의 무대’는 그 자체로 깊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다름의 경계, 그 너머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설명보다 먼저 감정에 닿는다. 교리와 문자는 달라도 하나의 노래는 사람들을 같은 호흡 안으로 이끈다.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간 종교적 차이는 잠시 뒤로 물러나고 인간 본연의 감정과 공감의 마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말과 논리는 때때로 사람을 구분 짓지만 음악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게 만든다. 엄숙한 법요식이 끝난 후 각 종교단체의 축하 무대가 차례로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화합’의 순간이 펼쳐졌다. 개신교 목사, 천주교 신부, 성공회 사제와 신도들 그리고 불교의 스님들이 나란히 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각 종교를 상징하는 각기 다른 복식을 하고 환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한 무대 위에 나란히 선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묵직한 감동을 전했다. 서로 다른 색의 등불들이 하나의 풍경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들이 함께 부른 노래는 밴드 ‘다섯손가락’의 ‘풍선’이었다. 찬송가도, 성가도, 찬불가도 아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중가요였다.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첫 소절이 시작되자 광장에 모인 시민과 신도들은 어느새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던 보이지 않는 경계는 서서히 사라졌고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 또한 하나의 노래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무대 위, 각기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호흡을 나누며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갔다. 그것은 이해와 공감이 만들어낸 화합의 무대였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소리를 조율하는 일, 다름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리는 일. 음악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화합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날의 무대는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뒤 각 종교 지도자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시민과 신도들을 향해 허리 숙여 깊은 인사를 건넸다. 광장에는 긴 박수가 이어졌다. 그 박수는 단지 무대에 대한 환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노래 안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다름의 경계보다 따뜻한 공감이 앞설 수 있다는 희망의 박수가 아니었을까. 5월의 찬란했던 봄밤, 수원을 밝혔던 연등의 물결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서로 다른 색깔의 마음들이 하나의 노래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반짝였던 순간을. 반야의 불빛 아래서 모두 함께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꿨던 그 순간을.
매년 6월은 푸릇푸릇함과 함께 경건함이 느껴지는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호국 보훈의 달’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물줄기가 위태롭게 흔들리던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기꺼이 ‘지키는 선택’을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몰아치는 바람 앞에 온몸으로 맞섰던 독립유공자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청춘을 바친 호국영웅들, 그리고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며 이 땅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민주열사가 바로 그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세워진 위대한 유산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무다. 6월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하지만 보훈은 일 년 중 단 한 달만 기억하고 지나가는 가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보훈이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훈의 가치가 미래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 보훈은 자칫 무겁고 딱딱한 교과서 속 이야기로만 느껴질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우는 역사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며 스스로 깨닫는 체험형 보훈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국가보훈부는 일상 속 보훈문화 확산과 국가유공자 예우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경기남부보훈지청은 6월26일 오후 5시 수원 화성행궁광장에서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독립, 호국, 민주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메모리얼 테마파크: 기억의 광장’ 행사를 진행한다. 이 행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며진다.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흥미진진한 체험을 통해 보훈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기획됐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게임과 활동을 통해 교과서 밖의 생생한 역사를 만나고 어른들은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분 좋은 초여름의 주말 길목,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보훈의 의미를 미래로 잇는 뜻깊은 동행에 참여하기를 소망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