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기다림의 골든타임

‘골든타임(Golden Time)’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뜻한다. 이 시간을 놓치면 회복이 어렵거나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 말은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아침, 테니스 레슨을 마친 뒤 갑작스러운 전신 무력감과 심한 가슴 압박이 찾아왔다. 9년 전 심근경색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증상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즉시 운동을 멈추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도착해 긴급 시술을 받을 수 있었고 의료진의 도움으로 무사히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회복의 골든타임을 잘 지키기 위해 의료진의 조언을 따르며 몸과 생활을 관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골든타임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삶에는 그와 반대로 속도를 늦춰야 지켜지는 골든타임, 곧 ‘기다림의 골든타임’도 존재한다. 며칠 전 TV 프로그램에서 90년대 음악계를 풍미했던 한 가수의 일화가 소개됐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였던 ‘내 인생은 나의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였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청소년기의 정서 발달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한다. 이 시기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때로는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청소년의 외침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지나치게 억압하면 자녀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다시 회복하기까지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해진다. 성경의 역사 속에도 기다리지 못해 더 큰 것을 잃어버린 이야기들도 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불안과 압박 속에 있었다. 블레셋의 대군을 보며 병사들은 공포에 휩싸여 하나둘 흩어져 버렸고 약속한 시간이 됐는데도 제사를 집례해야 할 사무엘 선지자는 오지 않았다. 사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렸다. 그의 결정은 당시에는 불가피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로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 됐고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세웠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지킬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돌아가다 보니 기다림을 하나의 능력으로 보는 시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서두를수록 틀어지고, 기다릴수록 더 선명해지는 법이다. 건강에서도, 관계에서도,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서도 기다림이라는 골든타임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해의 문턱에 선 12월은 우리의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너무 빠르게만 달려오느라 놓친 것이 없는지, 기다려주지 못해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골든타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변곡점에 선 이 시간에, 서두름을 잠시 내려놓고 새해를 준비하기 바란다. 기다림을 잘 지킨 사람에게는 더 단단한 내일이 열릴 것이다.

[기고] 통합 30주년, 새로운 평택을 향한 과제

올해는 평택시, 평택군, 송탄시가 하나로 통합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지난 세월 동안 평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도약한 도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도농복합도시로 출발한 평택은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 평택항, 주한미군기지 이전, 고덕국제신도시 개발 등 굵직한 변화를 거치며 산업·경제·인구·문화 전반에 걸쳐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제 평택은 경기 남부를 넘어 국가경제를 이끄는 핵심 거점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산업구조 역시 획기적인 전환을 이뤘다. 1990년대 농업·전통 제조업 중심의 도시에서 오늘의 평택은 반도체·전기전자·첨단물류 등 미래산업이 주도하는 경제 구조로 재편됐다. 대규모 투자, 도시계획의 고도화, 교통망 확충을 통해 향후 30년의 성장을 약속하는 기반도 함께 갖췄다. 그러나 통합 30년의 의미는 단순한 외형적 성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통합은 행정의 통합을 넘어 남부, 북부, 서부 3개 권역이 서로 연결되고 지역 간 격차가 줄어들며 시민의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생활의 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평택은 빠르게 팽창한 만큼 신도심과 구도심, 지역 간 생활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지역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의 평택은 ‘성장의 도시’에서 ‘삶의 도시’로, ‘산업 중심도시’에서 ‘정주 중심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교육 인프라를 균형 있게 확충하고 구도심과 신도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도시 설계가 필수적이다. 남부, 북부, 서부 3개 생활권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로망 개선, 생활권 간 이동시간 단축, 대중교통 혁신 등 교통체계의 전면적 재정비가 요구된다. 산업구조 다변화 역시 더는 미룰 수 없다. 반도체 중심의 강력한 산업 기반은 평택의 축복이지만 서비스, 문화, 지식산업 등 3차 산업의 성장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균형 있게 발전할 때 도시경제는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갖출 수 있다. 반도체 외에도 청년이 머무는 문화·여가·일자리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 외형은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문화·환경·교육·복지 수준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기후·환경 문제, 학교 부족, 교육격차, 교통 불편, 문화 기반의 취약함 등은 도시가 커질수록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평택의 지난 30년이 눈부신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30년은 시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시간이 돼야 한다. 지역이 조화를 이루고 산업의 성장이 시민의 기회가 되며 생활이 연결되는 도시에서 비로소 진정한 통합이 완성된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평택이 미래 30년의 비전을 세우고 새로운 도약의 장을 열어갈 중요한 전환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교통안전관리 조직체계

교통안전관리조직은 교통안전관리 직능의 한 요소이자 조직체의 구조적 측면을 취급한다는 뜻에서 가장 중요한 체계다. 능률적이면서도 유효한 관리 활동을 위해서는 안전관리에 알맞은 조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조직은 △안전관리 목적 달성의 수단일 것 △안전관리 달성에 지장이 없는 한 단순할 것 △인간을 목적 달성 수단의 요소로 인식할 것 △구성원을 능률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 △운영자에게 통제상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 △구성원 상호 간을 공식조직으로 연결할 것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유기체일 것이 요구된다. 조직이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업무 작업, 사업을 여러 사람이 협력해 하고자 할 때 마련되는 것으로 조직 편성의 효과는 단순히 사람의 능력을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효과를 얻고자 하는 데 있다. 특히 교통 운수업 같은 경우 대부분의 작업이 단독, 폐쇄적인 운전석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공동 협력 체제의 확립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교통안전관리에 관한 일도 교통안전담당자 혼자만으로는 결코 실효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체제, 편제, 조직 확립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교통안전담당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사적 관리 체계의 제도화가 요구된다. 교통안전담당자는 사업체 내 교통안전관리 업무를 실시함에 있어 소속을 불문하고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적 조직으로의 안전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사업체 내에서는 일원적 관리·통제가 하위조직까지 미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업체에 따라 인간적 조직을 지나치게 소외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뜻에서 본래 있어야 할 직제를 활용하면서도 사업체의 실태에 적합한 체계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안전관리조직의 목적은 모든 구성원의 직무와 상호관계를 정확히 규정하는 데 있다. 모든 구성원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능률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함이다. 단, 모든 사람의 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취급할 때 조직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간관계 요소를 폭넓게,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기고] 국가 공공조달 ‘방역소독’ 최저입찰가 관행, 품질·안전 위협

우리나라 방역소독업의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2조원에 육박하고 종사자들만 해도 수십만명에 달하며, 현장에서 사용하는 약제 및 서비스 등을 모두 포함하면 최소 30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 서비스 산업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주도하는 시장 특성이 있다. 그런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방역·소독 용역 입찰에서 최저가 낙찰 관행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공공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현장의 목소리다. 감염병예방법 제51조 제3항 공동주택, 숙박업소 등 여러 사람이 거주하거나 이용하는 시설을 관리·운영하는 자는 감염병 예방에 필요한 소독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제2조 및 「고등교육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학교 등도 예외는 아니고 정기적으로 4~9월에는 최소 3회(1회/2개월), 10-3월에는 최소 2회(1회/3개월) 등 소독 회수를 감염병예방법 시행규칙 제36조 4항에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방역소독이 우리 학생들의 감염병 예방과 생활환경을 책임지는 핵심 공공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낮은 가격 경쟁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에서는 방역소독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전문 사용자용 감염병 예방용 약제를 엄격한 승인기준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조달청의 최저가 중심 낙찰 구조에서는 이러한 법적 기준들이 실제 평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방역협회는 매년 방역소독업에 종사하시는 대표자와 종사자들에게 신규 및 보수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방역소독 현장에서는 대상생물에 대한 발생 현황이나 문제점 파악, 이를 통한 적합한 약제 선정 및 희석 농도 결정, 규격에 맞는 장비 사용, 협회의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미자격자 실무 투입 등으로 낮은 입찰가 수주에 따른 비용 절감을 위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공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방역소독을 위한 안전기준이 조달 단계에서 무너지는 셈이다.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업체 선정에 있어 기술평가 점수를 어느 정도 반영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낙찰을 좌우하는 것은 저가 입찰가다. 이와 같이 가격 점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구조 속에서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헐값 낙찰, 이른바 덤핑 경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정해진 작업 범위 축소를 통한 투입시간 감소로 인건비 절감, 비전문 인력 투입으로 전문성 결여, 안전관리 소홀 등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방역소독업은 공공보건 서비스로서 가격 최우선의 정책이 시행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방역소독 서비스 산업의 최일선에서 소독업체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들은 음지에서 보이지 않게 생활 방역, 감염병 상시 대응 실행, 취약 시설 환경위생 관리 등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대신해서 수행하고 있다. 정작 실무를 담당하는 방역·소독 서비스 용역 단가가 너무 낮은 단가로 운영되면 이러한 현장의 의무는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특히, 노인복지시설, 어린이집, 병원, 실내 체육시설 등은 감염 취약계층이 많은 만큼, 소독 품질 저하는 곧바로 감염병 대발생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방역소독은 단순 청소 작업이 아니라 대상생물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약제 선정, 희석 농도, 전문 장비 선정 및 적용 방법 결정, 작업자 및 환경 안전관리 등이 엄격히 요구되는 전문 기술 서비스다. 따라서 방역·소독업의 특성상 품질 평가가 가격보다 우선해야 하므로 업체의 적격심사에 대한 실효성 강화, 최저가 대신 적정가격 기준 도입, 전문 기술자의 실제 투입 확인(예; 한국방역협회 교육 이수증 현장 지참 및 확인), 현장 평가 비중 강화, 해당 용역 실행 책임자의 전문성 등에 대한 평가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서비스를 일회성으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체의 서비스 결과에 대한 기관 실무자나 관계자들의 만족도 등에 대한 사후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 이는 저가 낙찰에 따른 부실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이 반복되는 만큼, 기관의 감리·현장관리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방역소독 서비스는 국민의 건강과 환경 안전을 책임지는 감염병 예방에 필요한 최일선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공공안전 분야다. 단순히 저가 입찰에 따른 값싼 가격 경쟁만으로 낙찰을 결정하는 방식은 이러한 공공서비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정부와 공공기관 등은 방역·소독의 전문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한 조달 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설] 양평 공무원 사건, 인권위는 ‘강압 수사’ 고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론은 특검의 그것과 달랐다. 1명을 고발하고, 3명을 수사 의뢰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평군 공무원 A씨 사건이다. 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직권조사 보고서를 의결했다. 82쪽 분량에 상당히 상세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수사 과정에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고 결론 냈다. A씨를 조사한 것은 파견 경찰관 4명이다. 인권위는 4명 모두 강압 수사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조치는 가담 정도로 구분했다. 인권위는 이날 브리핑에서 ‘21장 분량의 일기 형식 유서를 확보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서는 원본 공개 여부로 논란을 빚었던 자료다. 인권위는 메모·유서에 담긴 강압 수사 주장을 전했다. “안 했다고 하는데 계속 했다고 한다”, “했다고 말해버렸다. 내가 참 바보 같다”.... 고발된 수사관(경찰)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고 했다. 휴대전화 포렌식 기록, 통화·문자 내역 조사, 주변인 진술 청취를 통해 조사하고 결론 냈다고 한다. 이날 밝힌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부분이 또 있다. A씨의 유서 처리와 부검 과정에 나타난 경찰의 부적절성이다. 경찰은 사건 직후 A씨 유서에 대한 필적 감정을 조회했다. 또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 영장도 청구했다. 인권위는 유서가 유족에게 ‘적기에 제공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헌법상 사생활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부검 실시 과정도 “유족이 (부검에) 명확히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선 특검 감찰의 면죄부 논란이 나온다. 판단과 결정에 논리적 모순은 있다. 강압 수사에 대해서는 ‘확인 안 됐다’고 하면서도 ‘수사관 파견은 취소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모순만으로 봐주기 감찰을 단정할 순 없다. ‘경찰 조사 필요성’은 특검도 요구했다. 결국 조사위 권고가 직접 영향을 줄 것은 경찰 수사다. 인권위 고발과 수사 의뢰는 법적인 강제력을 갖는다. 징계 권고도 90일 이내 ‘불수용’하지 않으면 따라야 한다. 야권의 고발과 특검의 조사 요구에 이어 인권위 고발·수사 의뢰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그만큼 향후 경찰 수사의 향배를 가늠키 어려워졌다. A씨의 죽음으로 세상이 떠안은 과제는 두 가지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수사의 진실이 하나이고, 전직 영부인 비리의 진실이 다른 하나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그가 주장한 강압 수사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가 남긴 진술은 영부인 사건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가 주장한 강압 수사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의 특검 진술은 영부인 재판에서 휴지가 될 것이다. 이 진실을 아는 A만 없다. 있어선 안 될 딱한 선택이었다.

[사설] 롯데 대형 개발사업 ‘하세월’...공익 가치 훼손이다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 재개발은 인천 다운타운의 리모델링 사업이다. 송도국제도시 ‘롯데몰 송도’도 송도의 핵심 상업 시설 개발이다. 두 곳 모두 롯데그룹 사업이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십수 년씩 미뤄지며 표류 중이다. 대규모 개발 부지들이 기약 없이 도심 속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 등 사업의 공익적 가치 훼손이다. 롯데는 2013년 남동구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 부지를 인천시로부터 사들였다. 13만6천㎡(4만1천여평) 규모다. 복합쇼핑몰·백화점, 문화·업무·주거 시설을 결합한 도심형 복합문화공간 개발을 위해서다. ‘제2 롯폰기힐스’라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계속 사업을 미루고 있다. 10년 이상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과거 시민들로 붐비던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낡아 무너질 지경이다. 롯데는 2023년 뒤늦게 사업계획을 수정했다. 문화 및 상업시설을 대거 제외했다. 대신 아파트(999가구)와 오피스텔(1천314가구) 중심의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아직 농산물시장 건물 철거도 않고 있다. 당장 내년에 시작해도 2031년 이후에나 준공이 가능하다. 당초 2018년 준공에서 무려 13년이나 늦어지는 셈이다. ‘롯데몰 송도’ 사업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이 부지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으로부터 조성원가로 공급받았다. 테마파크, 리조트, 쇼핑몰 등 송도의 핵심 상업 시설 조성 사업이다. 그러나 2008년 착공신고 이후 무려 17년째 ‘공사 중’이다. 롯데는 2013년 롯데마트, 2019년 오피스텔만 먼저 지었다. 그러나 쇼핑몰은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계획변경만 거듭했다. 이 때문에 준공 기한도 네 차례나 연장했다. 5월부터는 하도급 업체와의 공사비 갈등으로 아예 공사가 멈춰섰다. 현재 공정은 37%다. 롯데의 네 번째 약속인 2026년 말 준공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지역 안팎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한다. 사업 취지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면 부지를 환수하는 등이다. 그렇다고 기업의 사업성 검토나 수익성 추구를 무턱대고 탓할 수만도 없다. 최근 롯데가 안팎으로 경영 사정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롯데 측도 내년부터 공사를 본격화할 계획임을 밝혔다. 물론 의도적으로 사업을 지연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공공의 자산을 좋은 조건에 취득하면 그만한 책임도 따른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공익적 가치 실현이다. 롯데는 더 늦기 전에 지역사회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지지대] 언어의 품격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는 2005년 펴낸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거짓말은 개소리보다 더 나쁘고 악의가 있다고 인식된다. 개소리는 비교적 가볍고 덜 나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거짓말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게 진짜인지 판별해 보려는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동반되지만 개소리는 본질이 어떠한지에 무관심하다. 거짓도, 진실도 그 어느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싸지른다’. 말은 그 시대의 거울이자 척도다. 불안을 뒤로한 채 모두가 희망을 갈구하며 맞이했던 2025년은 어떠한 말이 우리 사회에 오갔나 생각해본다. 품격과 신뢰의 언어 대신 막말과 혐오, 비난의 말이 우선 떠오른다. 국회와 거리, 뉴스, 유튜브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그야말로 날뛰었다. 정치인의 입에선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선동의 언어와 막말이 정치 언어로 연일 등장했다. 주어와 목적어를 감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 문구, 어디서 왔는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 특정 국가를 앞세운 혐오의 제목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뉴스, 거리를 넘어 일상을 파고들었다. 진심과 품격, 신뢰가 사라진 언어엔 소통 대신 분열과 낙인을 남겼다. 그 낙인은 주로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게 집중됐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를 하는 자는 애초에 진실에 관심이 없다. 거짓말은 진실이 드러나면 힘을 잃지만 개소리는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어진다.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다. 올해의 끝자락엔 ‘실체 없는 말들’이 사라지기를. 품격 있고 정제된 정치의 언어가 사회에 자리 잡기를. 무엇보다 개소리가 넘쳐나는 시대를 우리가 무심히 넘기지 않기를.

[세상읽기] 종묘 앞 140m의 욕망

도시의 성숙은 마천루를 얼마나 빨리 쌓아 올렸는가로 증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지키고 어디를 비워둘지를 아는 ‘절제의 미학’, 그 고요한 멈춤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은 드러난다. 최근 종묘 앞 완충구역에 140m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이 서울을 흔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 구역의 재개발 여부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도시 문명이 앞으로 어떤 질서와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할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종묘는 조선의 국가 질서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한국 도시문명의 기원을 담은 심장부다. 유네스코가 이를 “국가의 세계관과 도시 구조가 통합된 예외적 사례”로 평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전(正殿)의 낮은 지붕선 위로 펼쳐진 하 늘은 500년 동안 한번도 흔들리지 않은 도시의 윤리적 경계이며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해 온 드문 기록이다. 이런 종묘의 완충구역에서 고도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이 오래된 경계를 단순한 개발 지표로 환산하겠다는 선언이자 도시가 스스로 세운 금도(禁度)를 시장 논리로 덮어 버리려는 위험한 시도다. 그러나 종묘 보존 논쟁에서 토지주와 상인의 절박함을 ‘탐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문화재가 밥 먹여 주느냐”는 항변은 생존이 걸린 이들의 거친 외침이 아니라 수십년간 낙후를 감내해 온 도시 내부의 깊은 균열을 드러낸다. 문제는 욕망의 존재가 아니라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낡은 이분법만으로 도시의 시간을 끊어내는 방식은 이미 세계 도시들에서 유효한 해법이 아니다. 뉴욕은 같은 갈등에 ‘제3의 길’로 응답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상부의 개발하지 않은 공중권(Air Rights)을 떼어내 인근 개발지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용적이양제(TDR)는 도시가 채택한 가장 창의적인 제도 중 하나다. 역사적 건물은 그대로 남기고 소유주는 개발 이익을 보상받으며 도시는 시간의 기억을 지켰다.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우회시키는 방식으로 도시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문명적 해결 방식이었다. 경관은 단순한 ‘뷰(View)’가 아니다. 공동체가 축적한 시간이며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공공적 자산이다. 파리가 에펠탑 주변을 비워 두고 런던이 템스강 스카이라인을 관리하며 도쿄가 황궁 주변의 조망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관광 수입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도시의 자존심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판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 결정이 수도권 전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 1천400만명의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을 이루는 경기도는 서울의 도시계획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왔다. 종묘 앞을 140m 건물로 가리는 순간 경기도가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주변의 경관축을 지켜낼 명분은 급격히 줄어든다. “서울도 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논리가 퍼지는 순간 수도권의 고유한 풍광과 역사적 결은 도미노처럼 흔들릴 것이다.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기억을 지운 자리에 아무리 웅장한 마천루를 세운들 그것은 결국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도시의 정체성은 스카이라인의 높이가 아니라 스스로 넘지 않으려는 선(線)에서 드러난다. 문명은 빠르게 건물을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긴 시간에 책임을 지는 태도로 완성된다. 종묘의 하늘을 가리려는 140m의 욕망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더 크고 높은 빌딩 숲인가, 아니면 500년의 시간을 품은 고요한 하늘인가. 그 선택이 곧 우리의 도시 문명이 지닌 ‘격(格)’을 결정할 것이다.

[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다케이치 오판과 트럼프 日 패싱

다케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7일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현직 총리가 대만 문제에 ‘존립위기 사태’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적 파장에 대한 야당의 질의에 대해 다케이치 총리는 이 발언을 “특별히 철회하거나 취소할 생각은 없다”고 답변했다. 중국 정부는 이 발언을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일 4개 정치 문서 정신의 위반으로 규정하면서 다케이치 총리를 맹렬히 비판했다.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소셜미디어에서 다케이치 총리의 “그 더러운 목을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라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동시에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限韓令)과 유사한 한일령(限日令)을 발동해 경제·인적 교류를 차단하고 있다. 이달 일본행 노선 5천548편 중 16%인 904편의 운항 중단이 결정됐으며 일본 영화 상영과 음악 공연 등이 예고 없이 취소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중일 갈등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다케이치 총리에게 우호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문제가 있다”는 답변보다 두 배 많았다. 특히 보수층과 청년층에서 대중(對中) 강경론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일본의 군사동맹국인 미국의 반응은 다케이치 총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르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시진핑 주석과 통화한 후 다케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문제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다음 날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을 무시했다는 저팬 패싱(Japan Passing)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일본보다 경쟁국 중국에 더 경도된 이유는 경제에 있다. 관세전쟁 이후 악화된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중국과 갈등이 격화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관세를 낮출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대두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농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정치적 고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17일 한국이 중국·러시아, 대만해협·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시사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오판했던 다케이치 총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전략적 유연성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사정에 따라 동맹국과 협의 없이 전략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섣불리 나설 필요는 없다. 중국이 한한령을 부과했을 때 미국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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