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국민주권의 요체이고 모든 공권력의 어머니는 헌법이다. 모든 공권력과 헌법은 탯줄로 연결돼 잠시라도 분리되면 모든 공권력은 프랑켄슈타인이 되고 헌법이 쓸모 없어져 국민주권은 죽음을 맞는다. 모든 공권력은 크게 헌법을 입법의 형태로 구현하는 입법권, 헌법 등을 재판 형태로 구현하는 사법권, 헌법을 행정행위 등으로 구현하는 행정권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국회의원, 대통령, 시·도교육감,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은 헌법이 부여하는 권능을 헌법의 테두리내에서 국민을 위해 분야별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이들은 선출을 통해 직을 얻는 과정에서는 국민주권이 반영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권한의 범위는 헌법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지 선거에 의해 그 권한의 범위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헌법 내에서 입법권을 갖는다(헌법 제40조). 따라서 입법의 내용은 헌법에 합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효력을 잃는다(헌법 제111조). 그 과정에서 법원에 의해 위헌적 법률의 적용이 배제되기도 한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고(헌법 제101조) 법관의 자격과 법원의 조직은 국회가 법률로 정하며(헌법 제103조) 법원(법관)은 헌법과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헌법 제103조).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헌법 제66조), 국군통수권자(헌법 제74조), 헌법과 법률 소정의 공무원임면권자(헌법 제78조) 등의 지위를 갖는다. 여기에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입법권에 대한 예외적 권한으로 일정 요건하에 법률의 효력을 갖는 명령과 처분을 발할 수 있는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권(헌법 제76조)을, 사법권에 대한 예외적 권한으로서 사면권(헌법제79조)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계를 갖고 있고 위에서 열거한 권한 외에 서로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도록 장치돼 있다. 따라서 이 같은 규정에 터 잡지 않은 입법권에 의한 사법권 침해는 위헌이고 그 위헌성은 곧 국민주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다수결에 따라 제정됐다 하더라도 그 법률의 내용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그 법률은 종국적으로 무효인 것이고 그것이 국민주권인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처럼 이미 기존 검사의 기소에 의해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사건에 대해 새로이 법률을 만들어 특정인에게 검사의 권능을 부여하고 그 검사가 기존 사건의 공소를 취소할 수도 있도록 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법리에 따라 위헌적인 것으로 그 효력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국회가 만장일치로 그 법률에 찬성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국회에 대한 오작동 방지 내지 일탈 방지를 위해 사법부 및 행정부의 견제라는 제도적 장치 외에 국민의 선거를 통한 심판이란 매우 강력한 현실적인 통제책이 있지만 4년 주기 선출직인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국회의 특성상 임기 내 견제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위헌적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 관여한 국회의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자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수에 의해 의결이란 절차를 통한 집단적 의사 결정 구조라고 생각한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 다수에 의해 책임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요즘 거리에서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자주 들린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그 낙원에 대한 노래다. 가사를 듣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민통선 철책 너머의 공간이 꼭 그렇게 들리겠구나 싶어서다. 바깥에서 이 땅은 오랫동안 소문의 낙원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신비한 야생, 시간이 멈춘 평화의 정원.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닫힌 경계에는 늘 가장 화려한 상상이 덧칠해지는 법이다. 70년의 통제가 만들어낸 가장 큰 산물은 어쩌면 이 짙은 환상의 두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9년간 이 안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분명히 적어 두고 싶다. 이 땅은 결코 낭만적인 낙원이 아니다. 필자는 이 숲을 종종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번뇌시도장(煩惱試道場)’. 번뇌가 곧 수행의 재료가 되는 자리, 제약과 불편이 그대로 길이 되는 도량이라는 뜻이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 매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낙원에는 절차도, 시간표도 없다. 그러나 도장(道場)은 절차와 일몰의 시간에 묶여 있다. 손님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며칠 전 군에 명단을 보내야 하고 아침마다 자재를 실은 차들은 검문소 앞에서 긴 기다림을 거쳐야만 안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어렵사리 숲에 들어와도 해가 지면 여지없이 땅을 비워야 한다. 야간 작업으로 시간을 연장하는 도시의 방편은 여기에 없다. 안보라는 큰 틀 위에 생업이 얹혀 있기에 즉흥적인 방문도, 시간을 빚내어 쓰는 밤샘도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만남에는 며칠의 시차가 깔리고 모든 일은 오직 태양이 허락한 시간 안에서만 멈추고 또 시작된다. 낙원은 바람이 일지 않는다. 그러나 도장에서 가장 거센 바람은 자기 안에서 분다. 이 모든 마찰 앞에서 가장 자주 흔들리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욕심이다. 절차를 우회하고 싶고 시간을 압축하고 싶고 화려한 시설로 단번에 시선을 끌고 싶은 유혹. 그러나 그 조급함에 굴복하는 순간 이 땅이 70년간 품어온 결은 쉽게 파괴된다. 매일 이끼 앞에 웅크리고 앉아 스스로의 허영을 솎아내는 일이 가장 뼈아픈 작업이다. 낙원의 서사는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한다. 도장의 서사는 사람을 오래 살게 한다. 평화의 환상을 품고 온 사람은 검문소 앞에서 표정이 굳고, 들어와서도 신기루를 좇다 떠나간다. 그러나 이 땅을 기꺼이 번뇌시도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명단의 절차를 자기 박자로 들이고 일출과 일몰의 시간표를 자기 호흡의 일부로 삼으며 행정과 협상하는 매일의 일을 자기 삶의 형식으로 껴안는다. 이 땅에 들어와야 할 사람도 분명해진다. 낙원을 소비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다. 분단의 시스템과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그 마찰을 견뎌내며 삶을 일구고 마침내 그 지난한 과정을 단단한 ‘신뢰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이 한 명씩 모여 이 땅에 자리를 짓기 시작할 때 바깥의 소문 속 낙원은 비로소 숨 쉬는 도장으로 바뀌어 간다. 낙원은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분단의 시스템과 치열하게 대면하며 짓는 자리다. 9년의 도장이 이 척박한 땅 위에서 필자에게 가르쳐 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후보가 됐다. 공천관리위원회가 2일 후보로 확정했다. 함진규 전 의원과 이성배 전 MBC 아나운서를 제쳤다. 양 위원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최초로 ‘여상(女商) 출신 상무’였다. 고졸 여성으로 임원에 오른 전설로 유명하다. 이런 경력에 힘입어 2016년 민주당에 인재로 영입됐다. 21대 국회의원(민주·광주서을)을 했다. 개혁신당을 거쳐 현재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다. 경선 경쟁자들은 오랜 시간 또는 처음부터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양 위원의 민주당 이력을 문제 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원·도민의 선택은 민주당 출신 양 위원이었다. 개혁신당 후보는 조응천 전 의원이 나와 있다. “찍을 후보는 나밖에 없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 선언과 동시에 제기된 게 야권 후보 단일화다. 조 전 의원은 ‘단일화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검사 출신인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다. 비선실세 국정 농단을 견제하다가 눈 밖에 났다. 정치는 양 위원과 비슷한 시기인 2016년 민주당에서 시작했다. 2016·2020년 남양주갑에서 2선을 했다. 개혁신당으로 출마한 2024년은 낙선했다.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해서 날을 세웠다.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은어)으로 몰려 비주류로 떠밀렸다. 요즘 민주당 후보를 향해 연일 공격에 나선다. 민주당에서는 추미애 후보가 일찍 본선에 가 있다. 한준호·김동연 후보와 승부에서 결선 없이 이겼다. 민주당에서만 6선을 해온 관록을 갖고 있다. 당 대표, 법사위원장,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살아 있는 당 역사다. 경기지사 경선에서는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명픽’(이재명 대통령 지목) 한 의원과 ‘현역’ 김 지사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거뜬했다. 도민 인지도와 당원 지지로 가뿐히 경선 벽을 넘었다. 이렇게 구도는 정해졌다. 민주당 추미애, 국민의힘 양향자, 개혁신당 조응천 후보다. 모두가 민주당 출신이다. 현역 배지까지 달았던 ‘전직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다. 한때 같은 정당의 가치를 말하던 ‘식구’들이다. 도지사선거는 아홉 번 있었다. 이런 구도는 처음이다. 단순한 우연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정당보다 인물, 이념보다 경쟁력이 앞서는 흐름이 있다. 여기에 보수 정당이 자초한 필연도 있다. 키운 인재 대신 외부에서 답을 찾았다. 2022 대선이 그랬고, 2024 총선이 그랬다. 그 사이 당의 정체성은 흐려졌다. 그 흐릿함이 경기도까지 온 것이다. 1천100만명의 경기도지사선거다. 늘 정치 변화의 묵직한 축이었다. 이번에도 신호를 던지기 시작했다. 정당이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인지 묻는 신호, 그리고 미래 정치 구획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신호다.
5월은 신록의 계절임과 동시에 가정의 달이다. 내일은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21일 부부의 날 등 여러 가지 가정과 관련된 축하 행사가 많은 달이다. 정부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 각종 기관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뿌리다. 가정의 가치와 소중함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가정이 안정되고 행복해야 국가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국가 사회 자체는 뿌리 없이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가정의 안정이 국가 사회 발전에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와 더불어 물질 중심의 이기주의적 사회 현상, 윤리적 가치관의 하락, 핸드폰과 같은 첨단 기기의 발달 등과 함께 가정의 가치가 흔들리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국가 사회 발전과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 특히 이런 가정의 가치 추락 현상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만연되고 있어 국가 사회 발전에 장애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도내에도 가정과 관련된 불행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10일 경기 시흥시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자택에서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 A씨 부부는 아들을 폭행 뒤 병원을 찾았지만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 판단에도 입원 조치를 하지 않고 귀가해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발생한 부부가 숨지고, 6명이 다친 경기 의왕시 아파트 화재 역시 유사하다. 경찰의 부검 결과 아내는 불이 나기 전 이미 숨진 것으로 파악됐으며 불이 난 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남편에게선 경제적 어려움 등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아직도 우리는 2022년 8월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생활고와 건강 문제로 어머니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뇌리에 생생하다. 이 밖에도 부모를 살해하는 등 가정 파괴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가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정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가정의 가치 중요성을 사회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도 경제와 건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복지제도’ 확대를 통해 가정의 비극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하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겉모습에만 치중하지 말라는 충고다. 속이 깊고 마음이 고와야 진정으로 예쁘다는 뜻도 담겼다. 물론 사람들에 대한 잣대다.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모양은 꼭 요강처럼 생겼다. 하지만 꽃잎은 너무 우아하고 근사하다. 한번 보면 그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쉽게 잊을 수 없을 정도다. 광릉요강꽃이 딱 그렇다. 들꽃만 관찰하는 김승기 시인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통해 이렇게 읊었다. “언제는 개불알 같다더니만/요강이라 하느냐/메마른 땅에서 살아야 하는 생명을 위한 복주머니를/세상 어지럽히는 미친년놈들의/오줌이나 받아내는 요강으로 보았느냐/모든 걸 품고 살다 보면/누린내 나는 일 어찌 없겠느냐/붉은 손수건을 흔들고 섰는 숲속의 요정/그 웃음보따리를 관상용이라고 마구잡이로 캐어 내면서도/그렇게 역겨웠더냐/목숨을 이어나가는 향기 복주머니의 꽃향이니라/온갖 몹쓸 짓을 하고서도/진한 화장으로 감추려는 사람들의/구린내보다야 향긋하지 않겠느냐.” 난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인 이 꽃은 이식과 재배 등이 쉽지 않다. 곰팡이가 뿌리에 공생해 난균근을 형성해야만 살아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국내 야생화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꽃 이름에 광릉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입술 모양 꽃잎은 요강을 닮았다. 그래서 그런 명칭이 뒤따른다. 멸종위기 1급이다. 꽃말은 숲속의 인어 또는 변덕스러운 미인이다. 그런 꽃말을 품고 있다니 반전이다. 경기, 강원, 경북 등지의 한정된 산지에 주로 자생한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줄기 끝에 2장이 부채 모양으로 마주 나는데 주름이 져 있다. 4~5월 연한 황록색 바탕에 홍자색의 맥이 있는 주머니 모양의 꽃이 핀다. 6~7월이면 씨앗이 여문다. 야생화에게 아름답고 고운 이름 지어주기운동의 일환으로 광릉복주머니꽃라는 별칭도 붙여졌다. 요즘 산림청 국립수목원을 찾으면 이 꽃들이 활짝 피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독특한 모양과 은은한 색감 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아름다움에 맨 처음 등급을 매긴 이는 누구였을까.
앤트로픽은 최근 발표한 클로드 오퍼스 4.7 모델의 품질 하락을 공식 인정했다. 그 이유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기억’이다. 치매 환자처럼 조금 전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사용자는 건망증에 걸린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대화할 때마다 이전 기억을 삭제하는 버그 때문이었다. 즉, 제품 운영 정책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정책과 기억 그리고 품질 하락과 사용자 분노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눈여겨봐야 한다. 서비스 운영 회사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대목은 자율에이전트 서비스나 자율 연구실의 성공이 장시간 기억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충격을 안겨준 클로드 미토스도 약 24시간 동안 장시간 맥락을 유지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문샷AI의 키미 K2.6도 최대 5일간 약 300개의 하위 에이전트가 약 4천개 작업을 병렬로 동시에 동작한다. 기억과 시간 그리고 자율에이전트의 함수 관계를 깊이 고찰할 때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많은 자율에이전트를 우리는 왜 온전히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실생활에 접목이 더디기 때문이 아닐까. 즉, 에이전트가 실물경제 안으로 너무 느리게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이겠지. 그런 면에서 보면 최근 앤트로픽의 파일럿 실험인 프로젝트 딜은 가히 에이전트 경제의 서막이라 부를 만하다. 꼬마가 좋아해서 최근에 샀던 검은색 모자의 재구매, 과외 선생님이 선호하는 작은 크기의 탄산수 한 박스, 왼쪽 버튼 클릭과 드래그가 잘 안 되는 부정적인 마우스 사용 경험을 불식시킬 대체재, ‘삑삑’ 소리만 요란하고 청소를 잘 못하는 진공청소기의 대안, 세탁기 녹물 제거 필터 등. 우리는 늘 이상하게 필요한 것이 끝도 없이 생긴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성비를 챙길 에너지는 부족하다. 후회하고 심리적으로 타협하기 일쑤다. 이때 절대 지치지 않고 내 호주머니 사정과 기대 이상의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거래의 달인이 도와준다면 우리 인생의 서사는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나만의 AI에이전트가 나를 대신해 쇼핑몰의 AI에이전트와 거래를 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실험에서는 186건의 계약 체결로 4천달러(약 591만원)의 자율 거래가 성립됐다. 거래의 만족도는 높았으며 46%가 AI에이전트에게 거래 위임을 희망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반려견 산책시키기 미션은 강력한 신뢰자본이 필요한 거래였으나 성공했다. 다만 나를 대신하는 AI에이전트의 성능이 쇼핑몰의 AI에이전트보다 떨어지면 거래의 효능은 보장받기 힘들 수도 있다. 역시 공짜는 없다. 커머스와 자율에이전트의 미래를 조망할 때다. 혹시 자율에이전트의 본격적인 개화는 스마트폰에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폰은 에이전트가 사용하고 사람은 지휘하는 모습일까. 수많은 앱이 즐비한 폰에서 에이전트가 열일하는 업무 처리 현황을 보여주는 대시보드와 마이크만 있는 폰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오픈AI가 AI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조너선 아이브의 전략적 행보로 보이는데 왠지 스티브 잡스가 지향하던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폰에 당신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 에이전트의 편향과 할루시네이션을 제대로 제어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더 가까이 지내는 것. 주권과 인권을 지켜내는 것. 생명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1시간 이내에 10㎞ 뛰면서 나를 사랑하는 것.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이다. 아카시아 나무도 실은 아까시나무라 불러야 옳다. 봄 내내 산불 때문에 입산을 통제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까시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해제된다. 이때가 산야의 모든 생명이 생장이 가장 왕성할 때로 이제 불이 난다 해도 번지지 않을 만큼 식물의 몸에 수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비옥하게 하는 콩과식물이다. 어디서든 잘 자라지만 흙속에 질소까지 공급해주니 척박한 땅에 심어도 좋을 것 같다. 정원용으로 심을 때는 뿌리의 발달이 왕성하므로 관리가 필요하다. 5~6월 연한 홍색으로 피며 가지에 붉은 털과 같은 가시가 밀생한다. 아까시나무는 큰키나무이지만 꽃아까시나무는 키가 작은 나무다. 농촌진흥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있겠지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바람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있겠지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달이 뜨고, 별이 빛나고, 우주는 크고 광활하겠지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윤수천 시인 아동문학가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수상 1976년 동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최근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는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에서 전력 수급의 안정은 더 이상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전력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금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회 논의에서도 2028년까지 약 73조원 규모의 전력망 투자와 재원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고 있다. 송전탑과 송전선로 설치를 둘러싼 주민 반발과 입지 갈등으로 주요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같은 핵심 사업조차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전력망 확충이 단순한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하다. 전력망은 국가 전체를 위한 공공 인프라이지만 그 부담은 특정 지역과 주민에게 집중된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마을과 토지 소유주는 재산권 제약과 생활환경 변화, 심리적 부담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면 보상은 일회성에 그치거나 체감도가 낮다. “왜 우리 지역, 내 토지만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희생에 대한 보상’에서 ‘이익의 공유’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갈등을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이해를 함께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 대안으로 ‘전력사업 기여참여 특례 제도’를 제안한다. 현재 제도는 345kV급 이상 송전선로에 대해서만 일정한 특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이하 송전선로가 지나는 선하지 부지와 송전탑 설치로 재산권에 영향을 받는 토지 역시 동일한 부담을 지고 있다. 이들 토지주에게도 전력사업 참여 시 ‘계통 접속 우선권’ 등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 해당 토지주나 인근 주민이 태양광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분산형 전원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인허가 절차를 완화하고 전력 계통 접속을 우선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토지주를 단순한 보상 대상이 아닌 에너지 생산의 주체로 인정할 때 갈등은 줄어들고 수용성은 높아질 수 있다. ‘주민 참여형 수익 공유 모델’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전력망 사업에 지역주민이 일정 지분으로 참여하거나 수익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갈등을 줄이고 사업 추진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갈등으로 인한 지연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선제적 인센티브는 오히려 효율적인 선택이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전력 수급의 불안은 커지고 산업 경쟁력은 약화된다. 그로 인한 손실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전력망은 국가 경제의 혈관이다. 그러나 그 혈관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 삶을 배제한 채 추진하는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전력망 갈등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희생이 아니라 참여로, 배제가 아니라 공유로 풀어야 한다. 토지주와 지역주민을 주체로 세울 때 해법은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그 지점에 답이 있다. 전력망 확충을 ‘희생’이 아닌 ‘상생’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선택이다.
예술가에겐 ‘떠돌이’, ‘불안’, ‘외로움’과 같은 말이 자주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정착할 곳을 찾아 황무지와 같이 경제적, 지리적으로 인기 없는 곳들을 떠돈다. 그러다 예술가들이 정착해 볼거리가 생기면 지역에 활력이 돌고 축제가 만들어지고, 머지않아 별다방이 들어온다. 그렇게 별이 뜨면, 예술가들은 짐을 싸서 다른 황무지를 찾아야 한다. 과거 홍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근처 상수동으로, 연남동으로, 망원동으로 계속해서 북으로, 외곽으로 향한 것처럼. 이런 어려움을 알기에 여러 문화예술 재단들은 작업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으며(이를 레지던시라고 한다), 나 역시 지난 25년간 국내외 여러 작업실을 떠돌았다. 주로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 골칫거리 건물이 우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뭐,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공간이라도 오래만 유지해준다면 말이다. 해외의 경우는 지방이라면 경치가 훌륭한 곳에 좋은 시설을 갖추거나, 지역 한가운데에서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 많았다. 10년 전 다녀온 네덜란드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이 편안한 마음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판단 아래, 성과에 대한 어떠한 압박도 없이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레지던시는 소외된 곳, 섬과 같은 곳에 많다. 수원의 레지던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곳은 시민농장 안에 넓은 잔디밭엔 양귀비가 피고, 연꽃과 코스모스, 갈대가 계절을 알린다. 주민들은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텃밭 주인들이 애지중지한 밭에서 열매가 익어가는 걸 작업실 창문으로 볼 수 있었다. 작가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는데, 나는 그 원인이 이러한 환경에 있다고 믿는다. 내가 경험한 국내 레지던시 중, 처음으로 인간으로 존중받은 환경이랄까. 그리고 2~3년 전, 이곳에도 어김없이 별이 떴다. 별이 뜨고 얼마 뒤, 시민들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은 시민농장과 작업실이 첨단 산업단지로 바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경쟁력·미래 먹거리 등 성과 중심의 말들만 난무하는 가운데, 그 어디에도 사람을 위한 것이 없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에서 자연을 밀어내고 ‘기업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려 한다. 안타깝게도 울창했던 아름드리 나무도, 연꽃을 향해 날아들던 백로도, 오랜만에 존중받았던 예술가도 올해가 마지막일 듯싶다. 별이 떴으니, 시민과 예술가는 이제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