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한국 운전면허, 원숭이도 딴다

오래전 선진 교통문화 정착 토론회에 외국 여성을 토론자로 모셨다. 가끔 TV에 나오며 한국말도 곧잘 하는 이 여성의 첫마디는 “한국의 운전면허는 머리 좋은 원숭이도 땁니다”였다. 즉, 한국의 운전면허는 운전자로 반드시 갖춰야 할 양보, 배려운전 등 매너 교육은 간과한 채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운전기술만 알려준다는 것이다. 또 이 여성은 “한국 사람은 참 친절하다. 그러나 한국의 운전자들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당황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한다. 한국서 운전하며 차로 변경을 하기 위해 깜빡이를 켜니 천천히 오던 차가 더 빨리 달려 끼어들지 못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후 “한국의 운전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사람처럼 인상을 쓰며 운전한다”, “자신은 양보받길 원하면서 자신은 또 양보하지 않는다”며 토론을 마쳤다. 일순 모두 공감하듯 고요와 정적이 흘렀다. 우리 인정 많고 심성이 선한 대한민국 국민이 왜 이렇게 조급하고 배려심이 없어진 걸까. 그 근본 원인을 급조식 13시간짜리 운전면허에서 찾고자 한다. 알다시피 한국의 운전면허는 과거 운전전문학원에서 이론 학습, 장내 기능 교육, 도로 주행 교육 등 총 60시간 교육을 받은 후 면허 취득을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들어서면서 운전면허 취득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13시간으로 급격히 줄였다. 그 결과 운전면허 취득 시 양질의 교육을 충분히 시행해 상대방을 배려하며 양보 방어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13시간만 교육하다 보니 면허 따는 기술만 알려주는 교육에 급급하다. 이웃 일본은 자동 57시간, 수동 60시간의 안전교육을 이수해야만 면허에 응시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3단계 운전면허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1단계는 심성 교육이다. 20시간 이상 운전자가 갖춰야 할 양보 배려운전하는 매너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 교통사고 현장 목격 시 부상자 대상 심폐소생술(CPR) 교육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교통사고 예방 활동을 열심히 펼쳐도 불량 운전자가 계속 나오는 구도라면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우리도 일본처럼 운전면허 취득 60시간 교육 의무화로 조속히 전환해 양질의 운전자를 지속 배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

[아침을 열면서] 존중과 통합, 이제 시작이다

뜨거웠던 선거의 시간이 지나갔다. 거리마다 걸렸던 현수막은 하나둘 내려가고 확성기의 소음도 멈췄다. 그러나 선거가 남긴 마음의 흔적까지 쉽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위한 축제여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책보다 비난이 앞섰고 토론보다 감정의 대립이 더 깊게 남았다. 가까운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고 오랜 인간관계마저 흔들리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경쟁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승자는 승리의 기쁨보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하고 패자는 결과를 인정하며 지역과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이다. 선거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방치하면 갈등은 일상이 되고 불신은 공동체를 더욱 메마르게 만든다. 서로를 향해 던졌던 날 선 말들을 이제는 거둬야 한다. 역사는 갈등보다 포용이 더 큰 힘을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넬슨 만델라는 오랜 인종 갈등 속에서도 보복이 아닌 용서를 선택했다. 자신을 억압했던 이들까지 품어 안으며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묶었다. 미국 정치사에서도 로널드 레이건과 팁 오날은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했다. 정치적 견해는 달랐지만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갈등을 넘어 통합의 길을 선택했던 순간이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보수와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모았던 경험이다. 당시 정파적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고통 분담에 동참했다. 시민은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사회 전체가 위기 극복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움직였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있었지만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려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지역 소멸의 위기, 경기 침체, 청년 문제, 기후 위기까지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갈등과 반목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경쟁의 에너지를 지역 발전과 민생 회복을 위한 힘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겨야 할 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고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 선거의 열기가 남긴 상처를 이제는 지워야 한다. 마음속에 남은 불신과 감정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지역과 대한민국은 ‘누군가 한쪽’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터’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 서로를 어떻게 품어 안느냐에서 완성된다. 이제는 승패를 넘어 존중과 포용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경기만평] 대~한민국!

[사설] ‘다산’ 남양주야말로 우리 정치의 성지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그의 지역구에서 당선된 시·도의원들이 함께 했다. 김창식·김승기·이대한 도의원 당선인과 김수연·최문광·손정자 시의원 당선인이다. 김 의원이 마련한 의정 역량 강화 연수 프로그램의 첫 순서였다. “민주열사들이 지킨 민주주의 위에 우리의 의정이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일행은 경남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했다. 경기도 지역구의 보기 드문 행사다. 특별한 의미를 둘 만 하다. 이들의 행렬이 언론에서 전해졌다. 남양주 다산 문화가 떠올랐다. 이쯤에서 보태고 싶은 제언이 있다. 이날 참여한 정치인들의 소속 지역이 남양주시다. 남양주시는 다산 정약용의 도시다.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수원화성 축조에 기여했다.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남겼다. 그가 살던 여유당이 있다. 영정을 모신 문도사가 있다. 부인과 함께 잠든 합장묘가 있다. 기념관과 문화관도 있다. 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그리고 개혁가이자 정치가였다. 정치 철학도 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치의 바탕을 위민사상과 민본주의에 두고 있다. 실학이 갈 방향을 사회개혁, 경제개혁, 국방개혁에 뒀다. 학문의 목적은 나라의 부강과 일상의 실용에 있다고 정의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가치를 담고 있다. 그중에도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 총망라돼 있다. 김병주 의원은 “당선인들에게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양주야말로 더없는 배움터 아닌가. 5·18은 민주주의의 성지다. 봉하마을은 노무현 정신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남양주 여유당은 다산 정신의 현장이다. 정약용 유적 참배는 단순한 관람이 아니다. 청렴과 개혁, 실용과 민생을 다짐하는 일이다. 벼슬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겠다는 선언이다. 남양주 정치인들부터 여유당을 찾아야 한다. 경기도 정치인들이 찾고, 전국 정치인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 남양주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곳이다.

[사설] 뉴스 없는 인수위가 가장 좋은 인수위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뉴욕시장을 세 번 했다. 세 번째 당선은 무소속 상태에서 해냈다. 1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일한 것으로 유명하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을 재건했다는 평이다. 2001년 그의 인수팀이 활동했다. 민간 전문가 수백명으로 구성했다. 선거 공약보다 시정 파악에 주력했다. 미국에서 꼽히는 성공한 인수위 사례다. 우리에겐 2011년 박원순 인수위가 있다. 보궐선거라 ‘시정 점검단’ 형태였다. 대규모 인사를 자제했고 앞선 시장 사업을 인정했다. 후한 평가를 받는 인수위 조건이 있다. 전임자 비판보다 사업 계승, 공약 100개보다 핵심 과제 10개, 취임 직후 상세 계획 일정, 인사 검토 아닌 정책 준비 등이다. 큰 틀로 보면 전문성 있고 포용성 있고, 시민이 중심되는 활동이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경기도지사와 경기교육감이 바뀌었다. 31개 시장·군수 가운데 12명이 바뀌었다. 지역마다 인수위원회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추미애 도지사 당선인에는 김태년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인수위원장의 면면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당선인의 구상을 유추한다. 김태년 의원은 5선의 중진이다. 경기도 성남을 지역구로 해왔다. 추 당선인이 큰 틀의 정치와 지역 장악을 동시에 꾀한다고 보여진다. 경기도교육청에는 김상곤 전 교육감이 등장했다. 민선 경기교육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무상급식을 통해 보편적 복지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안민석 당선인이 ‘100만원 학생펀드’를 약속했다. 이 목표에 집중할 모양새다. 이쯤 되면 향후 방향은 선명해졌다. 경기도와 경기교육청의 행정이 예상된다. 이 또한 소속 공직자들에게 소중하다. 미래 4년의 방향을 준비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의 평가를 굳이 매길 필요는 없다. 앞서 살핀 좋은 인수위의 조건은 그저 조건일 뿐이다. 그 점에서 시군에서 이뤄질 인수위 인선도 마찬가지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에 따른 선택을 하면 된다. 선거 기간 확인된 시민 요구를 투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행정이 받쳐줘야 한다는 공통점은 있다. 경기도 시장·군수 19명은 연임자다. 일부에서 취임준비위원회 기구가 출범했다. 화려하고 과시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결국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초선의 인수위와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인수’보다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 ‘사업 시작’보다 ‘사업 정리’를 봐야 한다. 도시철도, 산업단지, 도시재생, 문화 인프라 등이 그런 분야다. 4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다듬어야 한다.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분야도 있을 수 있다. 인수위든, 취준위든 근본 목표는 같다. 7월1일 출발을 위한 길 닦기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20여일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집중력 있게 내실을 기하며 가야 한다. “성공한 인수위는 뉴스 없는 인수위다.” 시사하는 바가 큰 교훈이다.

[지지대] 별것 아니다

주변에서 돈 얘기가 자주 들린다. 주식이 어쩌고, 성과급이 저쩌고, 집값이 어쩌고 하는 식이다. 누구는 득을 봤다는데 누구는 실이 너무 크단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이번 선거에서 표심이 드러났다”고 했다.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단편적인 예시이지만 경제든 정치든 이기고 지는 상반된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이 전부 달랐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며 생각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다짐이 부쩍 커졌다. 그런 시선으로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가벼운 사람과 무거운 사람, 결이 잘 맞는 사람과 전혀 안 맞는 사람. 제각각 호불호도 다르고 세상의 답도 달랐다. 결과적으로 닿은 감정은 피곤함과 씁쓸함이었다. 화려한 지표나 포장 사이에서 행복하게 활짝 웃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식이 ‘소폭’ 잘됐어도 대출 이자 갚으려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친구가 있었고, 마침내 ‘내 집’을 샀어도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골머리를 앓는 지인이 있었다. 각자의 사정 속에서 팍팍한 시기를 지나는 우리의 뒷모습은 전부 닮아 있었지만 세상은 그마저 승패의 논리로 재단하고 있었다. 서로 이긴 게임과 진 게임을 반복하면서. 요즘은 무슨 일이건 ‘별것 아니네’ 싶다. 어른들이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오락가락하는 사회에서 시시비비에 흔들릴 필요 없다. 경제·정치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수치보다 매일 아침 맞닥뜨리는 실제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유난을 떨 일도 없다. 불매에 시달릴 것 같은 커피숍도 금방 결제액이 반등했고 치솟던 코스피도 제3국의 폭탄 발언에 뚝 떨어지기 일쑤다. 이러한 마음이 무책임한 행동으로 이어져선 안 되겠지만 모쪼록 무심한 일상을 바란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하면서, 타인도 좀 그렇게 대해 주면 좋겠다 하면서.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는 자기 암시문을 되뇐 후 자라고. 문득 그 말이 떠오르는 나날이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히바 성’과 키질쿰 사막 지나... 카자흐스탄 가는 길

부하라에서 키질쿰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히바로 가야 한다. 키질쿰사막은 현지어로 ‘붉은 사막’이라는 뜻으로 면적은 30만㎢(남한의 3배)로 우즈베크와 카자흐스탄에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부하라에서 히바까지는 440㎞다. 부하라 근처 초반부 길은 포장이 잘돼 있으나 200여㎞ 지난 지점부터 도로 상태가 매우 나빠지기 시작한다. 비포장도로와 비슷한 자갈밭 길을 낮은 속도로 달린다. 가끔 화물차가 반대편 차선에서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동차의 앞을 가린다. 오후 3시 넘어 히바성에 도착했다. 히바는 인구 8만의 작은 도시다. 히바성은 칭기즈칸 침략 시 비켜간 지역이라 성이 잘 보존돼 있다. 히바는 동유럽과 가까운 작은 도시이고 성 내부의 고대 건물이 온전하게 보전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적이다. 흙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 때문에 유럽 관광객이 매우 많다. 히바 성벽도 부하라 성벽처럼 벽돌로 지어졌다. 히바 시내의 미나렛도 층층이 예쁜 타일 장식, 기하학적 곡선, 시내를 내려보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석양에 반사되는 미나렛은 종교적 분위기보다는 예술적 조각상의 느낌이 강하다. 이슬람교 발생 지역인 중동 모스크의 탑은 뾰족한 첨탑인 반면 우즈베크의 미나렛은 폭이 넓고 둥근데 미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야간에 조명을 밝힌 미나렛은 석양의 낙조와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다. 다음 날 카자흐스탄으로 출발했다. 국경을 통과해 카자흐스탄 베이네우라는 작은 도시까지 650㎞의 사막 길을 이동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카자흐스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끝없는 사막의 지평선 속으로 우리 차는 달려가고 있다. 사방에 마을, 구릉이나 언덕도 없는 뻥 뚫린 사막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황량한 사막의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다. 이곳 초원은 풀도 거의 없어 방목하는 가축도, 유목민 천막도 안 보인다. 우리는 키질쿰 사막길 650㎞를 달려 오후 6시경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했는데 ‘우즈베크 출국, 카자흐스탄 입국’ 절차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하려는 화물차들이 수 ㎞ 늘어서 있고 국경의 작은 대합실은 입국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인데 입국장 대합실 면적은 왜 이렇게 좁은지 5평(16.5㎡)도 안 되는 것 같다. 매우 협소한 대합실은 줄 서기도 없고, 새치기가 판을 쳐 무질서 자체다. 국경 도착 8시간이 지난 오전 2시가 돼서야 우리는 카자흐 국경을 통과했다. 오전 2시30분경 숙소 베이네우로 가는 중에 카자흐스탄 경찰이 차를 세우고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한다. 교통법규 위반과 관계없이 차를 세우고 못 가게 한다. 경찰에 통사정한 끝에 겨우 풀려나 오전 3시 베이네우 여관에 간신히 도착했다. 어제 오전 7시 히바를 출발, 카자흐스탄 변방의 작은 시골 도시 베이네우 여관까지 650㎞를 오는 데 20시간 걸렸다. 카자흐스탄의 면적은 세계 9위다. 넓은 영토에 석유, 희토류 등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다. 러시아 식민 지배를 250여년 받다가 소련이 해체되던 1991년 독립한 신생 국가다. 광대한 영토에 살고 있는 민족의 수도 130개가 넘는다고 한다. 대(大)분류한 종족의 수만 해도 20여개다. 유목민 종족은 자기의 ‘종족과 출신 지역’에 대한 충성이 우선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은 후순위다. 지배자는 수시로 변하지만 혈연으로 연결된 종족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다민족, 다언어에 영토가 넓은 국가의 문제점은 우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서울 출발 40일째 되는 날,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인 베이네우에서 카스피해 근처 아티라우까지 450㎞를 가야 한다. 황무지와 메마른 초원을 통과해 카스피해의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가끔 쌍봉낙타, 단봉낙타가 함께 풀을 뜯는 풍경이 펼쳐진다.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지역과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등 더운 지역에 사는 품종이고 쌍봉낙타는 고비사막 등 추운 지역에 사는 품종이다. 이곳 카자흐스탄 서쪽 변방은 두 종류의 낙타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카자흐스탄 초원길을 통과할 때 갑자기 모래 광풍이 휘몰아쳤다.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서행을 한다. 폭풍이 지나고 얼마 후 사막의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나타난다. 멀리 사막의 뭉게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빠름과 속도’에 중독돼 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치열한 문명사회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가끔 카자흐족 마을을 지나쳐 간다. 장례 풍속은 민족마다 다르지만 카자흐족의 공동묘지는 석조로 만든 화려한 건물 양식이다. 화려한 묘지 치장은 사후세계의 저택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카자흐스탄의 산업도시 아티라우에 오후 5시경 도착했다. 아티라우는 인구 16만의 도시로 카스피해 석유 채굴 때문에 생긴 도시다. 저녁식사를 위해 구글맵을 검색해 보니 아티라우에 한국 식당이 있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 3세가 운영하는 매우 작은 한국 식당을 찾았다. 중앙아시아 최서쪽 카스피해 근처에 된장, 고추장, 김치가 보존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식사 중 옆 테이블의 러시아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한다. 어머니는 고려인, 아버지는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작년에 6개월간 한국을 방문해 여행도 하고, 취업도 했다고 말한다. 한국이 좋아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삶, 오디세이] 감사일기

4년 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일을 헤아려 감사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감사일기의 제목은 ‘153감사 일기’다.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텅 빈 배로 아침을 맞아 뭍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셔서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가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된 기적의 숫자가 153이다. 내가 의미하는 153감사 일기는 “1은 매일 감사일기를 쓰자. 5는 매일 다섯 가지 감사일기를 쓰자. 3은 세심하게 살펴보면 감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감사의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뜬 것, 함께 밥을 먹을 가족이 있는 것, 아픈 곳 없이 걸을 수 있는 것, 누군가의 안부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은 소소한 일들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앙인의 습관처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일기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조금씩 바꿔 놓았다. 우리는 감사할 일이 생기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선택에 더 가까웠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사람은 부족한 것을 세고, 어떤 사람은 주어진 것을 센다. 불평은 결핍을 확대하지만 감사는 은혜를 발견하게 한다. 감사는 환경이 좋아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감사보다 걱정이 더 익숙한 시대다. 뉴스에는 불안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사람들은 미래를 염려한다. 손안의 휴대전화는 가깝고 먼 세상 모든 소식을 전해주지만 정작 내 곁에 있는 행복은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어느새 없는 것에 집중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감사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을 적다 보면 힘들었던 순간 속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우연히 만난 반가운 사람, 평범하게 지나간 하루의 무사함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수원 역시 감사할 이유가 많은 도시다. 세계적인 기업이 뿌리 내린 산업도시이면서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다. 주말이면 화성행궁과 행리단길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공원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익숙해 보이지 않을 뿐 우리 곁에는 감사할 풍경들이 참 많다. 도시의 가치는 높은 건물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일상에 있다. 신앙은 결국 감사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오늘도 생명을 주셨고, 사랑할 사람을 주셨으며, 다시 시작할 내일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감사는 현실을 바꾸는 마법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을 바꾸는 은혜다. 감사하는 사람은 같은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같은 문제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감사일기를 한 줄만 써 봤으면 좋겠다. 단 한 줄의 감사가 하루를 바꾸고, 하루의 감사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경기만평] '개혁TF'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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